내가 알던 꼬마 이야기
누구나 다 마음속에 꼬마가 있다
내가 알던 한 꼬마가 있었다. 꼬마의 부모는 맞벌이였다. 아버지는 쇠를 녹여 금형, 사출을 하는 사람이고, 어머니는 지하공장에서 게임기 납땜을 하는 사람이다. 반지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먹고살기 위해 참 애쓰던, 그 시절에는 으레 다들 그랬었다.
꼬마는 집에서 더 어린 남동생과 부모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배고픈 동생에게 점심,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 밥솥에서 밥을 푸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서 밥상을 차렸다. 꼬마의 나이는 6살이었다. 게임기 공장에 다니는 어머니가 가져온 게임기로 게임을 하고, 책을 읽고, 티비를 보면서 동생을 돌봤다.
부모님이 직장에서 늦으시면 꼬마의 동생은 꼬마의 찌찌를 물고 잠들었다. 아마도 부모에 대한 애착의 결핍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엄마아빠 보고 싶다고 울고 떼쓸 법도 하지만, 만약에 그렇게 하면 부모들의 가슴이 더 아플 것이란 걸 꼬마는 그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다. 일찍 철이 들어야만 덜 슬플 수 있었다.
꼬마가 10살이 되던 해에 처음 들어본 도시로 이사를 했다. 이사 가기 전 학교에서 간신히 친구가 된 아이들 앞에서 전학을 가게 됐다고 말하면서,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꼬마는 엉엉 울었다. 집에서는 꼬마가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울면, 동생도 따라 울걸 알기에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눈물이다. 형아는 울면 안 된다.
꼬마의 부모는 둘 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 온 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새벽에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왔다. 꼬마의 집은 그 전보다도 더 좁은 단칸방이 됐다. 그래도 꼬마는 부모들과 같은 방에서 잘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장사가 힘들었던 탓인지 꼬마의 부모는 매일 부부싸움을 했다. 꼬마는 동생과 이불속에 숨어 귀를 막고 싸움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학교에서 꼬마는 왕따였다. 아마도 철이 일찍 들어버린 탓에 또래 아이들과 무언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또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또 헤어질까 봐 꼬마는 두려웠던 이유도 있었을지 모른다. 꼬마는 친구들에게 마음을 주기 쉽지 않다 보니 아예 마음을 닫는 게 편해졌다.
꼬마는 커서 어른이 되었다. 옛날 꼬마 때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추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꼬마는 어렸을 때처럼 아마 누군가에게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 사람들을 대할 때 상처받지 않게 거리를 뒀다.
그래서 꼬마는 여전히 외로웠다. 아마도 어릴 적 상처들을 한 번도 누구에게 보이지 않고 혼자 덮어 뒀으리라. 꼬마는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실은 아직도 꼬마인 주제에, 어른이니까 그런 상처쯤은 버티는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 꼬마는 지금도 외로울까? 아직도 마음을 꽁꽁 닫아놓고 있을까? 아직도 형아처럼 울지 않을까? 아직도 어른인 척, 무뎌진 척하고 있을까? 내 생각에 그 꼬마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싶어서 애정을 갈구하는 6살짜리 꼬마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