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걔? 애개!

점 하나의 차이에 우주를 담기.

by 나비구르미

“어머, 애 하나에 개까지? 쯧쯔, 이제 너로 사는 인생은 끝이라 봐야지. 완전 종쳤어!”


네, 그렇습니다. 저는 서른여덟 살의 ‘애개맘’입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온 역사 있는 삶의 주인이라 생각했는데, 서른일곱 살에야 겨우 전업주부에 애 하나 개 하나의 엄마란 이름을 직업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멍멍이는 올해 여섯 살, 아가는 태어난 지 이제 겨우 8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직 애개맘으로서도 사회 초년생이자 신입사원인 셈입니다.

사람들 말처럼 제겐 '애걔걔' 할 만한, 개미 코딱지만 한 시간도 겨우 날까 말까 할 만큼 여유가 없습니다. 애도 개도 잠시 맡길 데조차 없는 데다 여태껏 내세울 직업도 없었다 보니, 돈이 되는 확실한 일을 하지 않을 바면 이제와 뭘 한다고 말하는 게 눈치 보일 상황입니다. 여전히 꿈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아직은 가능성의 영역에 있는 재주 많은 사람이라 여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마음속에만 있는 말입니다. 다들 그렇죠. 내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어떤 사람인지, 이 나이쯤 되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결과로 말해야지 결과로, 당신의 명함 혹은 자산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면 당신의 인생은 백지의 이력서처럼 텅 빈 배 위, 쓸어내면 겨우 묻어나는 먼지만큼 가볍게 치부되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겐 마이크가 없었습니다. 목소리가 잘린 것처럼 입술만 달싹일 뿐. 네, 그게 이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룰인가 보다, 나조차 그러려니 여겼습니다.

하지만, 내세울 것 없는 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마이크가 없고 목소리가 없다고 할 말까지 없을까요. 그럴수록 청개구리처럼 말들이 더 자라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삶은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처럼 끝없이 꽉꽉 들어찬 이야기보따리이고, 이게 또 무척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성공이나 실패, 그 어떤 말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도무지 이야기로 늘어놓지 않고선 정의되지도 요약되지도 않을 저만의 이야기는 지금도 쓰여지고 있는 중입니다.

네, 저는 애걔걔 할 만한 시간의 소유자이지만 한편으론 애도 개도 있으며 게다가 저 자신이기도 한, 거의 무한한 시간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시간이란 절대적인 동시에 상대적이기도 해서, 누군가에겐 개미 코딱지만 한 시간도 누군가에겐 영원처럼 길게 느껴질 수 있는 법이니까요. 게다가 아이나 개를 키우는 일은 대부분의 집안일이 유지를 지향하는 것과는 다르게 변화를 지향하는, 창조적 시간을 통과하는 일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매일매일 성장하거나 변화하고, 특히 아이는 잠깐 눈 돌린 틈에도 자라니까요. 가끔은 눈 돌린 그 틈에서만 성장하는 게 아닐까 싶도록 퍽 낯설기도. 그러니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들과 함께, 엄마 역시 부지런히 성장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게 나로도 엄마로도 멈추지 않고 어떤 모양으로건 성장해 나가기. 그렇다면 제 시간은 심지어 성장까지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를 담고 있겠군요!



"작은 것들이 모여 태산이 되는 수가 있느니라."


할머니께선 제게 자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설사 작은 것들이 모여 대단한 것이 될 수 있다고 한들 과연 한 인간의 생애 안에 그 대단한 결과물을 볼 수 있을지,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티끌이 쌓여 산이 되는 광경을 본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요. 내가 없는 나의 결과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결과주의적 관점으로만 할머니의 말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란 것도 산 중의 태산처럼 언제나 거대하고 눈에 번쩍 띄는 것이어야 했을 테죠.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불쑥 종이뭉치 하나를 내미셨습니다. 저와 오빠가 쓰다 만 노트 속지들을 잘라다가 실로 꿰매 만든, 할머니 말로 '잡책'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잡책 첫 페이지에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큼지막하게.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한국전쟁을 통과해온 뼈아픈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학교를 다닌다거나 글자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사신 분이었습니다.

기역니은도 모르는 할머니는 무작정 제가 써준 자신의 이름을 잡책에 쓰고 또 쓰셨습니다. 거의 그렸다고 보는 게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다고 글자를 알게 되는 것도 아닌데, 조금은 쓸데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골이라 온갖 농사일로 바쁜 데다 집에는 온갖 가축들이 돌봐주길 기다리고 있고, 엄마 없는 손주 놈들까지 돌보느라고 할머니는 눈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그런 바쁜 와중에 개미 오줌만 한 짬을 내어 겨우 한 일이 단 세 글자를 쓰고 또 쓰는 일이라니. 그때 할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애걔, 겨우? 하는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 태산처럼 큰 게 되는 거라고.

"거짓말."

"봐라. 엊그제까지는 제 이름도 못 쓰는 노인네였는데, 오늘은 자기 이름은 쓸 줄 아는 노인네가 되지 않았냐. 별거 아닌 게 별거가 되는 게 별거겠느냐. 하루하루 그렇게 살면서 모으고 모으다 보니 팔십도 금방 오더라."

할머니는 이름을 쓸 수 있게 된 걸 진심으로 기뻐하셨습니다. 평생 당신의 이름을 앞에 두고도 그게 이름인지조차 모르고 살았던, 할머니의 삶은 그 순간 아주 큰 폭의 변화를 맞이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단한 결과란 결국 일평생을 살아낸 한 사람의 인생, 그 모든 과정 자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슬며시 고개를 듭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던 노인이 자기 이름을 쓸 수 있게 된 그 별거 아닌 변화보다 더 값지고 의미 있는 변화를 저 스스로 만들어낸 적이 있었는지, 한 걸음도 없이 결승선 통과만을 꿈꿔온 건 아닌지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마음을 흘려보내지 않고 꾹꾹 눌러 담아 글로 소리치는 일. 그 울림이 어디까지 닿을지, 두고 보자고요."


글을 쓰겠다고 뒤늦게 학교를 다니다 취직과는 멀어진 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어느새 저는 제가 결정한 적도 없는 전업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가족을 챙기고 살림을 잘 꾸리는 것이 저의 오직 단 하나의 소명이라는 듯 대하는 사람들 속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자꾸 위축되는 자신을 보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주부에겐 주부라는 직업이 전부가 되어야 한다 여기는 걸까요. 출근이 있으면 퇴근이 있고, 직장의 김 대리가 퇴근하고도 김 대리인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꿈꾸는 일은 직업이 될 수 없는 걸까요.

그래서 무작정, 할머니의 말처럼 매일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해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순간순간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말이지요. 그런 일들은 어쩌면 어떤 가치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부질없이 날리는 먼지처럼 치부될고 말지 모릅니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요. 선이란 것도 영원히 같은 선은 아니어서, 하다 보면 풍선 부풀듯 슬그머니 부피를 늘리며 다른 자리들을 침범할지 모를 일입니다.

제 노력이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그럴듯한 명함이 되진 못할지라도, 적어도 어제와 다른 나를 만날 입구 정도만 될 수 있다면 그만으로도 퍽 근사한 일이 아닐까요? 행복이란 게 뭔지는 정확히 몰라도, 누군가가 그토록 꿈꾸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듯 다 다른 모양일 텐데, 꼭 누군가를 설득시키고 납득시키는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을 테지요. 네, 저는 원래부터 고집불통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텐데, 누가 뭐라건 어차피 제가 생각한 대로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네. 그래서 저는 쓰기로 했습니다.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들과 말들을 가득 담아, 어딘지 모를 이 '어쨌든' 공간 안에, 지금을 영원히 여기 가두면서도 또한 무한히 존재하도록 하는 기록의 행위를, 꿈의 행위를 하기로 말입니다. 마이크가 주어지지 않아도, 사실 전 목청이 워낙 튼튼해서 얼마든지 소리칠 수 있거든요. 설사 들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들릴 때까지 외치고 또 외칠 마르지 않는 마음이 여기, 있습니다.

그 울림이 당신에게 닿아 당신의 마이크가, 마음의 확성기가 되어 어디선가 다시 울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나 자신까지 나를 모르고 까먹게 되지 않도록, 끝까지 외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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