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니면 안 돼. 꼭 엄마여야 된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습니다. 운동회 날이었고, 트랙에서 '엄마와의 달리기' 종목이 막 시작되려던 차였습니다. 키순으로 가장 작은 1조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출발선 주변으로 웅성임이 일었고, 시작은 한동안 지연되었습니다. 궁금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고, 엄마와 나란히 선 아이들과 인파 사이로 한 아이가 홀로 서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 곁에 선 선생 하나가 아이에게 엄마를 모셔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혼자 뛰면 안 될까요?"
"안 된다. 엄마와의 달리긴데 엄마랑 뛰어야지."
"전, 엄마가 없는데요."
"그럼 엄마처럼 보이는 누구라도, 고모든 이모든 동네 아줌마든 누구든 같이 뛰어야 돼. 혼자는 안 돼."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입을 꽉 물고 서 있다 다시 선생에게 혼자 뛰게 해달라고 사정하길 반복했고, 요지부동으로 선 선생 앞에서 결국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출발은 계속 지연되었고, 아이는 죄인이 된 것처럼, 그리고 구경거리가 된 것처럼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모든 시선들을 피할 수 없이 온몸으로 받아내며 울었습니다. 울음은 점점 커져 결국 꺼억꺼억 소리가 운동장 사각지대까지 골고루 닿도록 울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아이를 도닥여주지도, 가까이 가 위로를 건네지도 않았습니다.
계속 시작이 지연되자 다른 선생들이 나와 학부모들이 선 쪽을 향해 누구라도 이 아이와 같이 뛰어줄 분 없느냐고 연거푸 소리쳤고, 한참 후에야 한 아주머니가 나서 아이 곁에 가 섰습니다. 아이 손을 잡으며 괜찮다고, 아줌마가 같이 뛰어 줄게, 하고 말하며.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못한 채 급히 울린 출발 총성에 떠밀리듯, 처음 본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달렸습니다. 길어야 1분 남짓 됐을 시간, 10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를 달리며 아이는 처음으로 엄마가 없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실감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 의해서. 그리고 평생 의문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 자신에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남에게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 되어야 했는지.
'엄마', 그 이름의 좁디좁은 품
제 손을 잡고 함께 뛰어준 이름 모를 아주머니처럼, 살아가며 몇 번쯤 그렇듯 선의의 온기가 담긴 손으로 제 손을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 사람들은 제게 '엄마 없는 아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곤 상황이 좋을 땐 연민의 뜻으로, 상황이나 기분이 나쁠 땐 비난의 뜻으로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네, 살면서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런 일들은 엄마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제가 한 일들일뿐입니다. 엄마가 있는 사람들도 실수나 잘못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엄마 있는 아이'라서 그렇다는 말은 하지 않으니, 그것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제게도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네, 보통 부모님이 돌봐줄 여건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할머니나 할아버지 손에 맡겨지는 경우가 있고, 그런 경우 조부모를 특별히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으리라 짐작하실 겁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엄마'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전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와 자식 사이의 사랑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제가 살며 사람들을 통해 느끼고 여러 매체들을 통해 경험한 엄마란 이름의 존재는 할머니와 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엄마의 대체자도 아니었고, 그냥 제게 사랑을 주고 제 곁을 지켜준 엄마라는 이름, 그 자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제게 어른으로의 책임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그 사실은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할머니가 제게 주신 가없는 사랑과, 제가 할머니를 향해 가졌던 애틋한 마음과, 그 사이에 웃고 울고 투닥거리고 삐치기도 하며 지냈던 모든 순간들. 할머니가 계셨기에 저는 사람들이 말하는 '엄마 없는 아이'였으나 충분히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엄마들보다 세대차이가 조금 더 나고 그래서 시대를 읽는 눈이 다르다 보니 할머니로선 미처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저를 사랑해주셨습니다. 글자를 몰라 공부를 봐주실 순 없었지만 제가 밤새 과제나 공부를 하면 함께 밤을 지새우며 제 곁을 지켜주셨고, 제가 아플 때 그 어두운 시골길을 헤쳐 밤이건 새벽이건 어떻게든 약을 구해오셨습니다. 잘하면 저토록 기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날아갈 듯 기뻐하셨고, 못해도 그만도 충분히 잘한 거라며 외려 상을 주시듯 제 기를 살려주려 애쓰셨습니다. 물론 잘못했을 땐 눈물 쏙 빠지도록 무섭게 혼내셨음은 물론입니다.
단지 엄마와 할머니라는 호칭만으로 존재를 있다 없다고 판단하는 건 참 이상한 일입니다. 엄마라고 다 좋은 엄마가 아님에도 '엄마'라는 이름에는 온갖 아름답고 그지없는 사랑의 이미지를 붙이면서도, 정작 그 이름의 품은 이보다 더 좁을 수 없도록 협소하게 재단하니 말입니다. 제겐 엄마가 없다는 결핍이 거의 없었습니다. 작년 출산을 앞두고,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말해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잠시 실감한 적이 있었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는 할머니가 제게 보여주셨던 사랑의 모습들을 염두에 두고 그 마음들을 헤아려보려 노력하며 엄마로서의 마음을 다졌습니다.
외려 제 스스로가 아니라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 의해, 저는 엄마가 없다는 결핍을 강제로 부여받곤 했습니다. 제가 괜찮다고 해도 자신들이 알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판단하려 했습니다. 네, 물론 그 사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저를 챙겨준 어른들과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 마음들 덕분에 따뜻했던 시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자주 저를 평가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추억과 사랑의 경험으로 할머니와의 일들을 말해도, 누군가에겐 단지 할머니 손에 자란 불쌍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말로 들릴 뿐이었습니다. 그런 말들로부터 어느 날은 의심이 피어나기도 했습니다. 정말 다른 것인가? 답은 하나였습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 저의 할머니와 누군가의 엄마를 비교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중요한 건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저를 낳지도 않은 사람이 제게 그토록 큰 사랑을 줄 수 있었다는, 그 놀라운 사실이 아닐까요. 그건 더욱 감사해야 하는 마음이지, 불쌍해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기준이나 통념이 어떠하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시간의 경험은 단 한 번만 주어지는 것이고 그것만이 유일한 그 사람의 진실일 뿐입니다. 그 자신이 사랑받았다 여긴다면 그건 누가 주었고 어떤 종류의 사랑이었건 더없이 소중하고 더없이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인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 그 경험의 무게를 비교할 수 있는 저울
저는 가끔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 손에 자랐다며 그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건 부모의 존재 유무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받았음에도 결핍 있는 아이라는 것부터 먼저 찾아내 콕콕 찔렸겠구나, 남들이 알 수 없는 좋은 기억들이 있음에도 없는 것에만 천착하도록 부추김 받았겠구나, 그런 생각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마음조차 편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말들에 굴하지 않고 지금의 소중한 사랑의 관계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어떤 사랑이건, 완벽한 사랑이란 아마 없을 겁니다. 누구의 마음도 딱 제 마음 같지는 않으니까요. 지나고 나면 그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가를 실감하게 되지만, 당시엔 마음에 들지 않거나 때론 화가 날 때도 많은 게, 어쩌면 사랑의 속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간혹 할머니의 꿈을 꿉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약간의 치매 증세가 있으셨는데, 어느 날 장에 나가 저를 주려 한다며 옷가지를 몇 개 사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옷들은 초등학생이나 입을 만한 사이즈였고, 고모는 할머니께 이제 다 커서 이런 옷은 못 입어 엄마, 하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한참 옷들을 손으로 매만지시다가
"그랬나. 언제 그렇게 커버렸다냐. 우리 OO가, 그렇게 많이 컸더냐?"
그렇게 한참을 되뇌셨다고, 고모는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제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제 옷을 세탁해서 그 투박하지만 따스한 손으로 마치 제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듯 매만지며 개켜 주셨는데, 이상하게 다림질을 하지 않아도 그 옷들에는 주름이 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할머니는 사정상 고모댁에서 지내게 되시면서 함께 살던 집으로부터 멀어졌고, 그렇게 왕래가 뜸해지고 제가 제 일에 골몰하는 동안 할머니는 가파르게 하늘의 시간에 가까워지셨습니다. 아직도 저는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을 듯 무겁고, 그저 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돌려드리지 못한 시간에 대한 후회로 가슴이 저밉니다. 참 무심하고 나쁜 자식이었고, 이제 그 사실을 변화시킬 기회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벌을 받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미처 제게 전하지 못했던 그 옷들을 뒷짐 진 손에 쥐시고, 꿈속 제 유년의 골목을 아직도 종종 서성이십니다.
사랑받고 사랑할 기회가 있었고 사랑받을 수 있어서, 그 당시에는 정확히 알지 못했고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정말 감사했고 지금도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마음의 바탕이 있기에 지금의 제가 있고, 부족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엄마가 되어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누가 뭐라건, 그 말들을 피할 수 없이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당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저는 그저 때때로 할머니를 생각하고 문득 꿈으로 조우하기도 하며, 그리고 자주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험의 무게를 비교할 수 있는 저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경험이 어떻건, 그게 당신의 경험을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말할 때 화가 나거나 슬플 때가 있겠지만, 중요한 건 내게 무엇이 없느냐가 아니라 내게 무엇이 있는지를, 그 마음을 스스로 귀하게 여길 수 있다면 훨씬 더 행복한 삶이 되리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런 생각 이전에 제 경험을 침범해오는 날 선 말들에 화가 날 때가 아직은 더 많지만 말입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을 바꿀 수 없다면 제 마음을 달리 먹는 것이 훨씬 쉬운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도중에 있달까요.
어떤 저이건, 늘 사랑해주셨고 사랑하셨을 할머니,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역시 할머니를,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합니다. 그러니 이제 어버이날, 홀로 카네이션을 달지 않은 모습으로 저를 찾아오셔도 울지 않고 대신 꼭 안아드릴 테니, 가벼운 걸음으로 또 저를 다녀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