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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y 12. 2024

아부다비에서 온 편지(15)

개똥 밟고 든 생각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아부다비.

아침에 과일을 사러 1층 웨이트로스에 가는 길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터덜터덜 마트로 향하고 있는데 갑자기 물크덩 뭔가가 발바닥에 느껴졌다.

슬리퍼 밑바닥 너머 느껴지는 이 이상한 느낌은 뭘까? 바나나 껍질이라도 밟은 느낌이었다.

 ’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하며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발바닥을 확인했다.

'으악, 개똥이다.'

슬리퍼 바닥에 온통 개똥 범벅이었다.

순간 혼잣말이 나왔다. “아... 이게 뭐야. 개똥!”

근처 풀밭에 가서 신발 바닥을 비벼 닦아냈다.

아침 일찍 개똥을 밟는 기분이란...


그리고는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똥을 밟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었다.

오로빌에 있을 적에 나는 자주 맨발이었다. 아침 밭일을 할 때에도 그랬다. 농장의 소들이 싼 응가 옆을 지나기도 하고 또 소들의 응가가 뿌려진 밭 위를 걸으며 잡초를 뽑기도 했다.

늦은 밤 생태화장실까지 가기 무서워하는 아이들은 농장 여기저기에서 응가를 하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아침에 황금똥을 싸던 도나가 나를 보고 씩 웃던 모습이. 우리의 똥도 동물의 똥도 농장에서는 좋은 역할을 했다.

가끔 똥에 관한 이야기 한마디만 해도 아이들은 까르르 넘어갔다.

맨발로 텃밧을 누비던 그 때.


며칠 전 아이들과 산책 중에 큰일을 보고 싶었던 나. 주변엔 눈 씻고 둘러봐도 화장실이라곤 없었다.

둘째 은유에게 “엄마 응가 마렵다 은유야 어떡하지?”했더니, “옆에 풀밭에 싸.”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야, 어떻게 저기 싸냐?”했더니 다시 은유가 하는 말 “엄마, 오로빌 기억 안 나? 나보고 응가를 자연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잖아.”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그땐 그랬는데 말이야... “ 이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여긴 도시라 안된다고 해야 하나?

나는 변명할 사이도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고 냅다 뛰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잡초 뽑아 소들에게 먹이로..

똥 이야기가 길어졌다.

개똥 밟고 소환된 똥에 대한 추억.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린 건가? 그때 자연스러웠던 동물의 똥, 우리의 똥.

아부다비에 오니 왜 다시 멀리해야 할 그 무엇이 되어버렸을까?

수세식 변기에 익숙해진 우리는 똥을 쓸모없는, 그냥 버려지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살게 된듯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은 늘 그렇듯 모든 것에 의미를 두고 쓸모를 찾아간다.

새삼 똥이 나에게 주는 교훈.

‘어딜 가도 똥은 똥이지. 밟았다고 너무 짜증 내지 마. 그냥 네 몸에서 나왔을 뿐이야.’

오로빌. 늘 우리와 함께 한 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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