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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돌 기자 Mar 18. 2022

엄마와 선물 교환

나는 술을, 엄마는 농산물 꾸러미를

우리 엄마는 옛날 사람이다. 대학을 나왔지만, 꿈이 현모양처였고 아이들을 바르고 잘 길러내는 것이 엄마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와 달리 나는 어릴 때부터 어딘가 빼뚜름한 구석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엄마 말씀을 잘 안 듣고(?) 반항하기 일쑤였으며 사사로운 일탈을 저질렀고 그러다가 많이 맞기도 했다. 사춘기 시절 엄마와 너무 자주 다툰 탓에 '나는 꼭 서울 올라가서 살아야지'라는 결심을 가지고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었다. 어렸을 때는 절대 엄마랑은 안 살 거라며 악다구니를 쓴 적도 있다.

그러나 여느 딸들이 그렇듯, 철이 들면 엄마와 화해의 시간이 다가온다. 괜히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썼던 버르장머리 없던 시절에 대한 후회다. 엄마 말에 따르면 대학 가서 나는 제법 철이 들었고, 엄마가 하는 말은 웬만하면 어기지 않으려는 딸이 되었다.


최근 엄마랑 선물을 주고 받았다. 엄마는 내가 기자가 된 것이 퍽 자랑스러운 분이셨고, 회사 동료들에게 딸이 술 기사를 연재하니 좋은 술을 선별해 보내줄 거라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회식날을 콕 지정해 나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엔 "혹시 술 골라서 보냈니?"라며 답지 않은 재촉 문자도 보내셨다.


ⓒ 엄마에게 보낸 술과 편지

고민하다 엄마에게 보낸 술은 경기 김포 <문배술>과 충남 홍성 용봉주조의 <용봉소주>다. 도수가 25도로 같은 점, 그리고 엄마가 용띠라는 점 때문에 골라서 보냈다. 나는 이전에도 엄마에게 술을 보내준 적이 있는데, 알겠지만 어른들은 술에 관한 옛 이야기를 함께 해드리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크면서 부쩍 줄어든 사랑한다는 표현을 넣어서 편지를 썼다. 사실, 사랑한다는 말은 하기 낯부끄럽기도 해서 몇번을 지웠다가 썼는지 모른다. 당연히 엄마는 너무나 좋아하셨다. 엄마는 답장으로 "술 받았당. 편지도 감동인데? 고마워"라고 보내오셨다.


그리고 다음날인가, 엄마가 나에게 답례를 보냈다. 타지 생활하고 있는 딸이 혹시라도 굶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보낸 소포였다.

ⓒ 엄마가 보내준 농산물 꾸러미

한 눈에 알겠지만, 엄마가 농산물 시장을 가서 하나하나 눈으로 보면서 정성스럽게 고른 신선한 농산물이다.

고구마, 양배추, 대파, 무, 참외, 청경채, 양파, 애호박, 파프리카, 오렌지, 당근, 체리 등등. 얼마 전에 달걀 장조림을 먹고 싶다고 말한 걸 잊지 않고 알차게 싸주신 거 하며, 채소가 먹다 시들새라 다양하게 소분해서 보내줬다. 예쁘게 영근 파프리카는 색깔별로 보냈다. 거기다 나는 청국장을 정말 좋아하는데, 바로 끓여먹을 수 있게 대파와 무를 손질해서 보내줬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집표 김치도 같이.

언젠가 기사를 보다가,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반찬을 도저히 못 먹을 거 같아서 그대로 얼려뒀다가 먹은 사연을 본 적이 있었다. 사실 지금의 내가 있기에, 나의 혀, 내 입맛,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8할이 엄마가 알려준 것들이다. 우리 엄마도 나만큼이나 사랑한다는 표현에 서툴지만 농산물 꾸러미를 통해서 엄마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어른이 되니까 가까운 사람을 챙기기가 더 어렵다는 걸 느낀다.

부모님은 우리가 어릴 때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서 또박또박 써온 편지를 받아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가 자라 품안을 벗어나면 허탈함을 많이 느낀다고들 한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향한 대화도 줄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잘 하지 않는다. 60이 넘고 70이 넘었어도, 부모 눈에 자식은 영원히 애기란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이더라도 오늘만큼은 자기만의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사랑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보내보는 건 어떨까. 아마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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