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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Feb 08. 2023

순해도 너무 순한 아이

시은아 시은아 (1)

처음 내 아이의 ‘이상’을 인지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의 "순해도 너무 순해!"라는 감탄이 마음에 걸렸고, 엄마를 찾지 않고 구석에서 책을 보는 아이의 모습이 편하지 않았다.


함박눈이 많이도 내렸던 1월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아이를 선생님이 불렀다.

“시은아, 잘 가.”

아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걸었다. 아이의 얼굴에는 표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뒤에 나오는 다른 아이, 우리 셋째보다 몇 개월은 늦은 아이가 선생님께 혀 짧은 소리로 인사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아이를 유모차에 급히 태우고 작은 오빠를 데리러 가기 바빴다. 그날은 아이를 앞서 세우고 몇 걸음 뒤에 가며 계속 말을 걸었다.

“우리, 눈놀이 하고 갈까?”

“시은아, 눈 밟으니 어때.”

“눈 정말 많이 왔다, 그지.”


앞에 가는 아이에게 전혀 반응이 없었다. 아이가 말이 늦는다고만 생각했다. 셋째라 조바심이 없었고 잘 놀고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아이에게 크게 불안함도, 걱정도 없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내가 두 사춘기 오빠들 핑계로 나의 귀한 막내를 너무 혼자 둔 것일까. 아이가 하려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챙겨주었고, 많이 놀아주지도 못했다. 두 돌의 호명반응. 그것이 ‘0’이라는 것도 그 날에서야 깨달았다.


다시 되돌려 생각해보니 21개월 이후 아이는 발달하지 않고 있었고, 정지 또는 퇴보 하고 있었다. 두 단어까지 붙여 말하던 단어가 다시 한 단어가 되었고 오빠와 노는 것에 관심이 줄고, 혼자 책보기를 좋아했다.


내가 감지한 부정의 신호는 이렇다.

폭발적인 언어 발달의 시기에 발달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한 언어.

(자주 말하는 단어 10개 이하)

호명반응 0.

위로 올라가려는 행동.

혼자 노는 것.

장난감을 뺏겨도, 전혀 울지 않는 것.

희노애락의 반응이 급격히 저조해진 것.


그래도 내가 붙잡 긍정의 신호. 

책을 무심히 넘기지 않는다. 그림을 천천히 보고, 감상하는듯 보인다.

가끔이지만 상상놀이를 한다. 인형 미끄럼틀 태우기 등.

엄마 살림에 참견을 한다. 빨래를 개려고 한다거나, 쌀을 담으려고 한다거나.

간혹 장난감 정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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