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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Feb 23. 2023

선생님으로 불리는 나이라니

내가 동기들보다 두 살이나 많은 나이로 대학을 다닐 때, 나는 나의 나이가 부끄러웠다. 내가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스물 두 살의 아가씨가 세상의 고독을 다 짊어진 표정을 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도 작가들이 그들의 청춘을 회고한 책들을 보면 비슷하게 어리석고 암울했던 것 같아 청춘이란 원래 그런 것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사투리도 나의 고독에 한몫했다. 예쁜 동기들이 어느 날 강의실 한 쪽에 모여 미팅 후일담을 이야기하는데, 한 아이가 “왠일이니, 양말보고 양발이래더라.”라며 깔깔거리길래, 난 절대 이들 앞에서 입을 열지 않아야지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지지배들이 어쩌면 옷은 그렇게 잘 입는지. 사실 상경 후 나에게는 계절에 대한 문화충격이 있었는데, 서울에는 봄과 가을이 존재(!)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공평한 길이를 가진다니,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봄에는 도대체 어떤 옷을 입고 가을에는 도대체 무엇을 입는단 말인가. 대구는 끔찍하게 더운 여름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찬 바람이 불었고 눈도 한 번 안와 겨울이 맞는가 싶으면 어느새 땀이 비질비질 났다. 봄, 가을 옷 따위는 필요 없었다. 태어나서 스무 해 동안 몸에 벤 이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지 봄, 가을 옷은 돈이 아까워 잘 살 수가 없고, (사실 어떻게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청춘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그 계절만 다가오면 철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우중충한 빛깔로 다녔다.


나이 얘기로 돌아와서 아무튼 나는 사투리도 쓰고 옷도 촌스럽게 입는데, 나이까지 많은 것을 동기들이 알게 되면 나를 더 무시할 것 같아 그냥 내가 무시하는 편을 택했다. 나는 강의실에 가장 늦게 와서 수업을 듣고, 끝나면 가장 먼저 일어나 바쁜 척하며 나갔다. 실상 할 일도 없으면서.


나는 올 봄, 다시 1학년이 된다. 두 살이 많은 나이가 아니라 무려 스무 살이 많은 나이로. 이제 두어 살쯤은 감추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수 있는 시절도 지나버렸다. 스무 살의 나이차는 아무리 좋은 화장품과 멋진 패션으로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출 수 없는 정도가 되니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것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모든 것들은 멀리서 보면 아주 약간씩 차이나는 것들이라 실은 전혀 부끄럽지 않아도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톡방에 초대한 조교가 나를 소개했다.

“이번 학기에 신입생으로 들어오신 ○지예 선생님이십니다. 모두 환영해 주세요.”

젊은이들이 나를 예의바르게 환영해주었다. 나는 ‘안녕하세요’를 정말 ‘선생님’처럼 해야 되나, 아니면 내가 평소에 친구들에게 하듯 깜찍하게 해야 하나 짧은 순간 고민하다가 그냥 평범하게 ‘안녕하세요’와 간단한 웃음 표시를 했다. 첫 인상이 중요한데. 사실 나 실제로 만나면 그렇게 선생님까지는 아니야,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단톡방에 있는 동기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니 다들 참 어리다. 이제 나는 그들의 젊음이 참 예쁘고 흐뭇한 나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 그런데 당연한 일이지만 개강일이 봄이다. 아직 추운 봄.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몇십 년고민하던 것이 올해에도 여전히 고민거리다. 찾아와 준 봄에게는 살짝 미안하겠지만 그냥 몇 주만 두꺼운 겨울외투를 입기로 했다. 나는 이제 찬 바람이 불면 뼈가 시린 나이거든.

내 머리에 생기기 시작한 흰 머리만 에서 눈에 띄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난 맨 앞 줄, 제일 중간 자리에 앉아야지. 아줌마의 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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