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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05. 2023

오늘을 배웅하고 내일을 마중하는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는 용기


유난스러운 바람이 창가에 부딪치는 밤. 잠에서 깨버린 스스로를 탓하며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고요를 즐기는 것도 잠시, 조금 후면 피곤에 찌들 모습을 상상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습니다.


고요한 밤에 문득 창밖을 바라보면 무엇하나 움직이지 않는 경치에 세상이 멈춰버린 듯, 그런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현실을 떠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지만 잠시 후 날이 밝으면 치열한 현실과 마주하겠죠. 느리게 오길 고대하던 어제의 '내일'이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마중온 순간. 감정을 추스르고 어른다움을 스스로 되뇌며 마음을 다독여봅니다.


30대를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하루의 무게가 벅찰 때가 있습니다. 마음의 공간에도 평수라는 게 존재하는 듯, 한없이 넓디넓은 30~40평의 방을 가진 호탕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작은 중얼거림과 눈빛에도 괜스레 우울해지는 내 마음은 한 평 반짜리 원룸과도 같이 비좁기만 하네요. 이런 작은 공간을 언제 크게 넓힐 수 있을지 고민하는 차 은근 한숨이 새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인내가 있어야 열매가 있다는 말을 하죠. 견딤도 있어야 쓰임이 있다고. 내 경우에는 인내하다 상해버린, 견디다 못해 녹슬어 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것도 잠시, 이런 걱정도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다른 이에게 쉽게 얘기하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모든 순간에 길이 있다는 믿음이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때때로 길이 없는 선택의 순간도 있진 않을까


어떤 일이든지 시작이 어렵기 때문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발을 내딛기가 어려운 그 처음. 그 설렘이 시간이 지날 때마다 피로감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한 뼘이라는 내 시작에 비해 다른 이들의 도약은 저 멀리 100m 이상을 날아가 보일 때, 지금 내 선택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 의심하게 되죠. 끊임없는 노력이 중요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도 필요하다는 말도 듣게 됩니다. 하지만 돌이키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을 지금의 선택으로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주변 이들의 말이나 책의 감동적인 한 구절이 가볍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길이 보이지 않는 선택의 순간이 있습니다. 신의 한 수는커녕 악수(惡手)밖에 둘 수 없는 날. 시야에 들지 않는 깜깜한 사각지대. 이렇게 인생의 기로에서는 꽤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낯선 도로에서 첫 주행연습을 했던 긴장감처럼 목적지를 향해 멀리 보라는 선생님의 이야기도 잊게 되죠. 분명 안내판도 있고, 좌·우로 회전할 수 있는 교차로도 많은데 왜 이리 운전은 어려운지. 초보의 딱지를 떼기까지의 몇 년의 시간 동안 나는 우회할 수 있는 기회를 몇 번을 날렸을까.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누군가의 목적지가 확실하다면 그것만큼 대단한 일은 없을 겁니다. 삶의 초행길에서 매 순간의 귀중한 선택을 단호히 할 수 있다는 건 제겐 참 어려운 일이죠.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날이 갈수록 없어지는 세상. 그런 곳에서 취향은커녕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것도 은근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시간들도 왠지 아까워서 내린 선택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 '일단 열심히 살자'였던 것 같아요. 길이 보이진 않으니까 생각하다 지치는 것보다는 일단 뭐라도 하면서 생각하자는 것이었죠. 헛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한걸음 내딛을 수 있는 순간을 만들자. 적어도 아무것도 안 했다고 후회하지 않게.


세상이 마음처럼 쉽지 않은 매일. 불안함 속에서 겪는 일들은 왜 이리 어려운 건지. 그러던 중 내게 다가왔던 기쁨은 '우연'처럼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불안 속에서 계획되지 않았던 누군가의 '진심', '칭찬' 한마디. 그런 짧은 순간이 마음에서 아직도 빛나는 이유는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겠죠.



매 인생의 1년, 20살, 30살은
누구나에게 처음이니까


때때로 인생에서 목표가 없을 때, 나만의 고민으로 혼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의 인생은 초행길이니까. 인생에서 나오는 갈림길에 정답을 찾을 리가 없겠죠.(있다면 알고 싶네요). 사회에서의 귀천은 없다고도 하는데 내 인생은 왜 이리 낮아 보이는지.


버거운 현실에서 찾아올 '우연'을 위해 하루에 한 번은 조금 내딛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조금이나마 기억해야 할 게 있다면 '여전히 내 시간의 초침은 가고 있다'가 아닐까.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사는 데 재미를 느끼기보다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인생의 한복판에서 서 있는 나의 위치가 남보다 낮을 때 한숨 쉬고 돌아서지 않길. 광활한 바다의 깊음은 세상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의 길이에서 나오니까. 나의 '낮음'은 누구보다 '깊음'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임을 스스로 되내어 보곤 합니다. 그런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한 한걸음을 오늘 하루에도 내디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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