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꼬마 Mar 05. 2024

28. 법정에서 설명할 수 있게.

'증인'으로 재판에 서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진단명 하나, 진단서 한 줄, 그 모든 것을 법정에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던 날이 있었다. 


전문의 시험 1차를 치고, 2차 시험을 기다리던 어느 날. 의국에서 시험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파견 갔던 병원의 행정실에서 전화가 왔다. 법정에 출두하라고 뭐가 왔단다. 


아니 제가요? 제가 소송에 걸렸나요? 


법정이라고 하는 단어부터 무섭기 시작했는데, 내가 당사자는 아니고 예전에 봤던 환자에 대해서 피해자 측 증인으로 나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어떤 환자였더라.. 몇 달이나 지난 일이다보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의무기록을 검색해보니 바로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내가 진료 보면서도 엄청 화가 많이 났던 환자였구나. 그 때의 분노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데이트 폭력 건. 어떤 미친놈이 여자친구를 이렇게 만들었나. 그래도 한 때 사랑하던 사람한테. 이 새낀 사람새끼도 아니라는 욕을 아랫년차 전공의랑 인턴이랑 담당 간호사랑 내내 하면서 봤던 그 환자였다.


출두하기로 했다. 당시의 백업교수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정말 감사히도 함께 나가주시겠다고 했다. 원래도 든든하고 멋진 분이셨지만 이 날은 정말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내 잘못은 없다고 해도 법정에 선다는 것은 무섭지 않나.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병원에 오면 이런 기분일까? 칙칙한 건물,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바쁘게 저마다 자신의 일들을 하고 있었다. 


재판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가만, 가해자와 내가 마주치는 상황이 되면 나의 신변 보호는 어떻게 하나, 그걸 걱정하던 차에 다행히 담당 공무원분께서 챙겨주셨다. 피고인과 가림막을 친 상태로 있게 해줄 수도 있고, 아니면 나가 있게 해줄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럼 나가 있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내가 입장하는 위치와 그가 퇴장하는 위치가 다르고,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해 주었다. 다행이다. 


법정에 들어섰다. 이름을 말하고, 당시 진료를 본 의사라고 밝혔다. 검사 측에서 내 진단서를 OHP 필름같은 것에 띄워서 나오게 했다. 내가 쓴 진단서 한 줄 한 줄과 진단명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을 요구했다. 처음에 약간 당황스러웠다. 타박상을 타박상이라고 하지 뭐라고 한담. 상세불명은 왜 상세불명인지까지 말해야 하나? 얕은 손상은 얕은 손상이지, 꿰맨 상처가 있거나 한 건 아니니까 그런 건데, 그런 것도 다 말해야 하나?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설명을 했다. 둔기에 맞은 하지의 상처라 타박상이고, 꿰매지 않은 상처라 얕은 손상이라고 진단명을 붙였으며, 상세 불명이라는 진단명은 흔히 붙는 것인데 위치가 두루뭉술할 경우에 붙인다, 그런 식으로. 한 줄 한 줄에 대해서 당시 진료 기록에 따르면 어디를 맞았고 어디를 다쳤고, 이에 검사하여 특이소견이 없이 이에 진단명을 그리 붙였노라고. 


여기서 더 당황스러운 질문이 들어왔다. 피고인 측 변호사의 질문이었다.(이하 변)


변 : 타박상을 엑스레이로 진단합니까?


나 : 아니요. 엑스레이로 진단하는 것은 아니고,


변 : (말을 끊으며) 그럼 진단에 필요없는 검사를 과잉으로 한 것이 아닙니까? 

타박상을 의심했다면서요?


나 : 충분히 골절이 생길 수 있는 기전이기에 배제하기 위해 촬영했습니다. 


변 : 결국 진단한 건 타박상 아닙니까?


나 : 골절이 아님을 배제했기에 타박상이라는 진단명이 붙었습니다. 


변 : 아니 아까 타박상을 엑스레이로 진단하는 건 아니라면서요?


나: (와, 이걸 어떻게 더 말해줘야 하는 거지?)


의료인이 아닌 사람에게 내 진단서의 의미와, 그것을 진단하기 위해서 한 검사가 어떤 것인지, 왜 그 검사를 했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새삼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변호인 측에서 하는 말은 정말이지, 앞뒤 순서가 다른 이야기를 왜 내가 하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들었고. 아마 그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 지치고 진 빠지게 말꼬리나 잡으려는.  


이런 식의 아무 의미 없는 대화가 진단명 하나 하나를 붙들고 계속 오갔다. 판사 측에서도 안면부 골절은 씨티로만 진단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의가 있었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검사라는 답변을 했다. 변호사 측에서는 급기야 나의 전문의 자격 여부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전문의가 아니기에 나의 진단 내용에 하자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의도였던 것 같았다. 귀가 잘 안 들리셨는지 내가 전문의가 아니라는 답변을 강조하고 싶은 의도였는지 했던 말을 여러 번 재확인하시기에, 마지막에는 좀 짜증이 났는데 판사 측에서 저 분 귀 잘 안 들리신다고, 중재하고 마무리하고 내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진단명을 쓸 때 고민을 한번쯤은 더  하고, 진단서를 쓸 때도 내가 쓴 말에 대해서 한 줄 한 줄을 누군가, 그것도 의료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 날이었다. 증언은 삼십분 남짓 했던 것 같은데, 끝나고나니 꽤나 진이 빠졌다. 생각도 못한 질문들을 받고, 생각도 못한 반응을 보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진단명 아무렇게나 넣는 꼴을 절대 보지 못한다. 법정 가서 너 왜 이 진단명 썼는지 말할 수 있냐고, 그러면 쓰라는 이야기를 전공의들 백업근무 하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다. 내가 임마, 다 해 봐서 안다고, 거기서 네가 해명 못하면 그대로 당하는거야! 그리고 법정은, 정말 다시는 서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땅땅. 

작가의 이전글 27. 모니터 뒤의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