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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응급실

나의 하나님이여, 자식들을 지켜주소서

by 정이음

자정을 넘은 시각, 응급실로 향한다. 초저녁부터 아프다는 아이를 어쩌지 못하고 지켜보다가 결국, 여기저기 응급실에 아이를 받아줄 수 있는지 물은 후에야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도심의 도로에는 얼마간의 차들이 불을 밝히며 오늘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일의 삶을 맛보고 있다. 약간은 차갑지만 상쾌한 새벽의 맛. 미리 맛본 오늘이 눈을 치뜨고 내게 종 주먹을 들이대다가 나를 천천히 위로한다.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한 번 와 본 적이 있던 응급실에 간단한 수속을 하고 자리를 배정받는다. 링거주사액이 어서 아들의 고통을 걷어가기를 빌며 간이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아들의 고통이 병원만 오면, 진통제만 아들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씻은 듯이 사라질 거라 믿었다. 병원을, 진통제를 믿었다.


아들의 고통을 대신할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간다. 삼십 분이 흐른다. 아들이 아픈 것이 내 죄인 것 만 같아, 내 죄를 대신하는 것만 같아, 아들에게는 보이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흩트리며 눈물이 눈가를 적신다. 아들이 보기 전에 얼른 눈물자국을 지워야 한다. 아들은 팔을 눈 위에 올려둔 채, 여전히 고통스러워한다. 한 시간쯤 지나자 아들의 숨소리가 평화로워진다. 고통이 물러간 아들의 입술이 일그러져있다.


자정 넘은 시간, 응급실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내 옆 침대에는 할머니가 지켜주는 사람 없이 혼자 누워 있다. 입을 가린 마스크는 거칠거칠 보풀이 일고 삐뚜름하게 걸쳐져 있다. 손에는 구형 휴대폰이 쥐어져 있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엿보인다. 할머니는 머리를 위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아래쪽으로 향했다가, 둔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만히 있지 못한다. 할머니의 뒤척임을 따라 링거바늘도 이쪽저쪽으로 아슬아슬하게 쫓아다닌다. 할머니가 폴더폰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이마를 덮고 있는 아들의 팔을 내려준다. 잠깐, 빛 때문에 찡그리던 아들이 다시 잠에 든다.


나이 든 노부부가 서로를 의지한 채 응급실로 들어온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할아버지의 동공이 풀려있다. 마지막 남은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 앞에 서서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이마를 짚어본다. 뒤를 이어 코를 집게로 집은 사내가 들어온다. 피 섞인 침을 들고 온 검은 비닐봉지 안에 연신 뱉어 낸다. 사내는 코맹맹이 소리로 코피가 멈추지 않는다고 간호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빈자리가 없으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간호사는 신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섞여 나오는 자리로 황급히 달려간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은 삼십은 넘었을 것 같은 남자가 삐쩍 마르고 작아진 몸에 대여섯 개의 링거바늘을 꽂고 누워 있다. 남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를 붙잡고 서 있는 나이 든, 아버지인 듯한 남자는 부끄럼 없이 소리 내어 울고 있다. 아들의 고통 앞에 체면은 내던져진 지 오래인 아버지를 향해 아들의 신음소리는 그치지 않고, 더욱더 세차게 달려들고, 응급실 안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의 아픔도 잊은 채 일제히 그들을 향해 있다.


의사는 여기에서는 더 이상 해 줄게 없다고 한다.


내 아들의 고통과 내 고통에 눈멀고 귀 닫았던 내 눈과 귀에 그제야 타인의 고통이 보이고,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와 있었던 그들 부자의 눈물 앞에서 나는 잠시 내 고통을 잊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또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큰 병원으로 이송할 것을 요청하는 의사의 권고대로 아버지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세 명의 간호사가 환자 곁에서 피봉지를 매달고 이송준비를 한다. 구급대원 셋이 와서 침대에 누운 환자를 들어 올려 구급차 침대로 옮겨 싣고 출입문 쪽으로 밀어둔다. 내 눈이 그 침대를 따라가서 같이 멈춘다.


나는 청년(그래 청년이 맞을 것 같다)을 가까운, 바로 코앞에서 마주한다. 아이울음 같은 신음소리를 멈추지 않던 청년이 자신의 고통을 잠시 내려놓고, 나와 아들을 번갈아 본다. 나와 마주친 순연한 청년의 눈빛 사이로 잠시 미소가 어른거리는 것을 본 것 같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청년과 아버지가 서둘러 구급차에 몸을 실으며, 내 눈물을 거두어 더 큰 병으로 떠나고, 나는 고통을 유보하고 잠에서 깬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새벽의 거리로 나선다.


사월이 왔고, 벚꽃이 피려 한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는 눈을 파내고 싶은 날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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