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넘은 남자들 여섯 명의 독서회 친구들이 원주 집을 방문했다. 서울에서 집사람이 이것저것 장을 봐주고 옆집 아주머니가 반찬을 이것저것 챙겨주어서 무사히 친구들과 바비큐를 해 먹고 좁은 집에서 부딪기며 자고 갔다. 친구들이 가고 난 후 마당에 널브러진 바비큐 장비들과 어지러운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고 차려먹기도 귀찮고 해서 혼자서 집 앞에 있는 예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맛있게 구워진 샌드위치와 커피, 샐러드를 입에 넣었는데 갑자기, 느닷없이 방울토마토 터지 듯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래, 이런 게 행복이지!!!
그동안 너무 커다란 행복만 추구했던 것 같다는 반성이 뒤따르고, 그래도 보람된 일을 해야지 요즘처럼 잘 먹고 잘 노는 것에만 행복해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의문도 마음이 한 구석에서 일어났다. 큰 일은 이루기 어렵고 작은 일은 보람이 없으니 행복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회사 일을 하면 작은 일이 수없이 밀려오는 업무와 커다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업무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은 일을 하루하루 해치우고 나가는 영업부서의 일이 성공확률이 낮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획부서의 일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영업부서의 일은 나중에 돌아보면 뭔가 흔적이 남는데 프로젝트는 실패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도 큰 일은 성공하면 인생에 훈장을 하나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도 가끔 몇 안 되는 성공스토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의 난도는 프로젝트가 더 힘들고 고민도 더 많은 것 같고 영업에서 일할 때가 기획에서 일할 때 보다 더 행복했다.
리더의 직급에 있을 때는 주로 기획부서에서 일을 했고 힘들어하는 부하직원들에게 이렇게 격려했다. 작은 돌을 100개 움직이는 사람은 많지만 작은 돌 100개의 무게인 큰 바위를 움직이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우리는 큰 돌을 움직이는 사람들이고 힘을 쓰다가 꿈적하지 않는 바위를 만나도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힘쓰는 법을 배웠으니 언젠가 큰 돌을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그래도 큰 일만 하면 힘들다. 작은 돌로 시작해서 돌을 움직이는 힘을 키우는 것이 좋다. 물론 재능이 있으면 처음부터 큰 돌을 움직이는 일을 해 보는 것도 괜찮다. 어떤 일을 하는 부서가 더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딸아이가 취직을 했을 때 나는 기획부서보다는 실무일을 하는 곳에 가는 것을 추천했다. 내가 보기에 우리 딸아이는 그쪽이 더 적성에 맞는 듯해서. 그래서 이제 한 삼 년 지났는데 적당한 시기에 기획부서에 가보라고 추천한다. 아니면 MBA를 가보든가. 딸아이는 전혀 생각이 없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대화를 하고 서로 믿고 신뢰하는 관계를 가지면 행복하다. 꿈을 갖고 무언가를 이루고 회사나 사회에 보람된 일을 하는 것도 행복하다. 작은 행복과 큰 행복을 골고루 추구했어야 했는데 우리 세대는 일만 중시하고 다른 것을 너무 가벼이 여겼다. 지금 젊은 세대가 소확행을 중시하는 것은 현명하지만 삶의 보람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조금 불만이다. 우리 세대는 개도국에서 태어났고 성장의 흐름을 탔지만 우리 아이들은 선진국에 태어나서 현상유지도 만만치 않아 보이긴 하다. 절대적으로 비교해 보면 요즘 젊은 친구들이 우리 젊을 때보다 훨씬 멋있고 재능도 있고 잘 배웠다.
행복은 어디에든 있다. 이젠 은퇴도 얼마 안 남았고 작고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도 되겠다.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기는 하다.
하나 더.
집사람 없이 손님을 치르니 집사람의 고마움을 알았다. 그동안 부부동반으로 손님을 모실 때는 같이 했는데 혼자서 하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밖에서 일만 하고 은퇴할 때 다 고위직에 있어서 입으로만 일하던 남자들이 집안에 가득하니 약간 무서워지기도 했다. 그래도 먼 곳까지 와 주어서 고맙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와라. 그때는 물론 바비큐는 안 하고 밖에서 먹는 것으로 하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