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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인철 Jan 27. 2024

2024년 1월의 단상

한 달을 돌아보며 한 해를 겨냥해 본다

이사

돌아보면 나는 그런대로 운이 좋다. 적당한 나이에 회사가 나가 달라고 했고 막연히 놀기 그래서 회사의 사업장을 임차해서 운영하고 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 수 있는 사업장이었고 회사인간으로 살면서 소원했던 고등학교와 대학의 친구들과 어울려서 신나게 놀았다. 사업을 하면서 노래, 합창, 골프, 독서모임, 글쓰기, 사이버대학, 한국어교사, 전원주택 등 이것저것 힘껏 벌려보았다. 그동안 미안했던 친구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합창단 총무와 단장, 고등학교 동기회 총무, 골프모임 총무 등 감투 아닌 감투도 많이 썼다. 합창단 단장은 못 내려놨지만 다른 것은 임기를 잘 마쳤고 그렇게 봉사했던 게 마음 한편으론 뿌듯하고 친구들 만나기도 좋아졌다.


집사람이 그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응원해 주고 따라 주었던 것이 고맙다. 넓은 집으로 옮겨서 서재를 갖고 싶다는 로망을 받아주어 세 식구 잘 지내던 집을 세를 주고 큰 평수의 아파트로 옮겼다. 그 사이에 시골에 전원주택을 하나 장만하고 주말마다 놀러 가서 큰 집은 비어 있기 일쑤였다. 4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전세가 빠지지 않아서 매일 집을 보여주고 보증금 받을 걱정을 할 때는 스트레스가 높았다. 이삿짐을 싸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집사람은 성질내지 않고 주섬주섬 이사일을 챙겼다. 내게는 성질을 내지 않는데 친구들과 통화하면서 내 욕을 하는 소리는 자주 들었다.


“있는 집 놔두고 이렇게 이사를 자꾸 하게 해서 미안하네.”  미안하다는 말은 별로 안 하지만 이번엔 왠지 이렇게 말했다. 약해진 거다.

“내 친구는 이사하는 게 좋다더라. 지난번에 이사할 때도 남편이 미안하다고 해서 ‘그러니까 여태까지 집 장만도 못하고 맨날 이사 짐 싸게 만들어’하고 말하려는 걸 꾹 참았다네. 그래도 우린 집도 있는데. 이번엔 이삿짐도 같이 싸고 하니 좋네. 맨날 내가 혼자 이사했지 언제 이사같이 해본 적 있나?” 집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겁난다. 진짜로 화나면 화내지 않는 법이다. 아마도 이 건은 십 년 이상은 우려먹을 것 같다. 

     

                 *                          *                            *


강아지

코로나가 한창이던 초기, 세 식구가 모여서 매일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유래가 없었던 기간에 코로나 베이비를 하나 분양받았다. 가족이 마음을 정한 후 거의 일주일 동안은 매일 저녁을 후다닥 먹고 나서 펫 숍에 가서 강아지 구경을 하러 다녔다. 마침내 데려오고 싶은 푸들 강아지를 발견했다. 목욕을 시켜준다 길래 기다리면서 숍에 있는 다른 강아지를 보는데, 갑자가 가족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 마침내 강아지를 바꿔 달라고 했다. 마티즈와 푸들 믹스인 말티프 수컷. 미안해서 목욕하러 간 놈이 오기 전에 목욕도 안 시키고 납치해 왔다. 마음을 바꾼 이유는 단 한 가지. 훨씬 잘 생겼다.


하지만 성격은 살아봐야만 아는 것. ‘다 함께 우리’라는 숭고한 뜻을 지닌 ‘다울’이라고 내가 이름을 붙여준 우리 집 강아지는 성질이 더러웠다. 안아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어렸을 때 병원에서 주사 맞을 때 트라우마 같은 것이 남았는지 모른다. 먹는 것이 제일 우선순위가 높다. 밥그릇이 채워져 있으면 주인도 물 태세로 으르렁거린다. 터그를 하면 절대 놓지 않는다. 산책을 가기 위해 옷을 입히면 으르렁거리고 입질을 한다. 목욕을 시키고 털을 말리는 것은 거의 전쟁이다. 집에 있을 때는 거의 소파 밑에 들어가 있다. 교류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이 오면 목청껏 짖는다. 사람들 사귀는 게 어렵다. 그래도 용서가 되는 것은 예쁘고 귀엽게 생겨서다. 가끔 귀여운 짓을 하면 너무 이쁘고 식구들이 왔다 갔다 할 때 거실에서 눈만 굴리는 모습도 귀엽다. 다른 집 강아지처럼 집에 가면 현관에 제일 먼저 뛰어나와서 꼬리를 흔들며 짓는다. 그냥 그런 건 아니고 그 동작의 다음에는 늘 간식이 있다.


나는 다울이가 성질대로 사는 찐 사내 같은 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본성대로 살면 주위의 사람들은 힘들어 할 수 있다. 성질대로 살아도 좋지만 나름 용서가 되는 면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쁜 남자는 기본적으로 잘 생기고 멋있어야 한다. 나도 예전엔 괜찮았는데 그것으로는 이젠 어필이 힘들다. 나는 다른 면에서 나쁜 남자가 되기로 한다. 경제력?, 근육질 몸매???? 남자의 인생은 애완견으로 시작해서 돈벌이하는 사냥개로 살다가 이리저리 차이는 똥개로 마무리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생각하며, 아내의 선의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다시 한다.  

 

                                         *                          *                            *


글쓰기

매일 글을 써서 올리는 글방의 커뮤니티에 가입한 지 두 달째다. 매일 글감이 주어지지만 첫 달은 쓸만한 글감이 나오면 썼고 이번달엔 무조건 써 봤다. 억지로 쓰는 글도 쓰다 보면 써진다. 힘들지만 즐거웠다. 다음 달은 또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고 있다. 청일점인 것 같아서 다른 분들이 불편할까 봐 조금 조심했지만 나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아내는 내가 성격이 정말 좋다고 한다. 


남자 친구들과 만남이 거의 전부인데 그 만남의 대부분은 식상한 주제의 도돌이다. 건강, 경제력, 회사 근황, 주식, 골프, 혼사, 손주… 쓰고 보니 주제가 다양한데 식상한 이유는 거기에 인생을 덧붙이지 않는 것, 혹은 인생을 덧붙여도 감정을 넣지 않는 것,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난 그런 결론이 뻔한 대화가 다 아는 얘기처럼 지루했고 지루하면 못 참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 모임은 오프라인이라 그런지, 대화가 아니라 글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라 그런지 혹은 그동안 잘 듣지 못했던 여성들 이야기라 그런지 훨씬 신선하고 다양했다. 그리고 느낌이 있다. 


골프 휴지기인 겨울에 두 가지의 취미활동을 새로 시작했다. 글쓰기가 피트니스. 둘 다 좋은데 1월 말이 되니 햇빛은 매일매일 다르게 따뜻해진다. 필드가 곧 부를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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