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못해먹겠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청사 5층 의자 한켠에서 팀장님을 마주 보며 "그만두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흔히 말하는 적성의 문제를 꺼내면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말이다. 이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컴퓨터 시계의 초침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언제쯤 이야기를 꺼내야 괜찮을까를 수백 번 고민했다. 덜덜 떨리는 손을 한데 부여잡고 컴퓨터 모니터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 팀장님 자리로 다가가 팀장님께 상담을 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첫 번째 결심의 날, 나는 눈물콧물을 쏟으며 나의 결심을 그렇게 팀장님에게 전달했다.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 11월이었지만 나에게 이 날은 뜨겁고도 차가운 날이었다. 나는 이 '결심'을 팀장님에게 전달하면서 슬펐고, 두려웠고, 무섭기도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내 마음속도 불같이 뜨거웠지만, 내 몸도 그만큼 뜨거웠다.
팀장님은 그런 나에게
"oo아, 그 업무가 너무 힘들다는 건 다 알고 있어. 네가 여기 오기 전 이 업무를 맡았던 사람들, 다 1년도 안돼서 보직 변경됐던 자리야. 업무가 너무 힘들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랑 바꿔보는 건 어떠니?"라고 물었다.
"그럼 저랑 업무를 바꾼 그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죠?"라고 나는 반문했다.
팀장님은 "그 사람은 너랑 바꾸게 될 그 업무가 지금 하는 업무보다 더 적성에 잘 맞을 수도 있어. ㅇㅇ아, 나도 힘들어봐서 아는데 정말 힘든 사람은 남들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더라구."라며 내가 업무를 바꾸겠다고 얘기해도 나의 결정 자체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듯 타이르는 어투로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선뜻 바꾸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남들의 시선과 평판에 엄청나게 신경을 쓰는 성격이었다. 팀장님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나와 업무를 바꾸게 될 수도 있는 주사님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이미 내 상상 속에서 그들은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러한 내 성격은 나에게 팀장님의 제안을 선뜻 수락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묵묵부답인 나의 얼굴, 아니 정확히는 내 마스크 안의 입이 움직이는 것을 꿰뚫어 보겠다는 듯 내 마스크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팀장님은 다른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ㅇㅇ아, 공무원은 휴직도 사유만 되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좋은 직장이야. 휴직을 해보는 건 어떻겠니?"라고.
나는 이 제안 또한 한참을 고민했다. 너무 울어서 퉁퉁부어버린 눈으로 꼬깃꼬깃하게 구겨놓은 내 손 안의 휴지를 빤히 바라보며 머리를 굴려보기 시작했다. '어떤 휴직이 있지? 혹은 휴직은 6개월짜리로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팀장님과 얘기하기 2시간 전, 같은 장소에서 전화로 부모님에게 내 결심을 전했을 때 두 분의 말도 함께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동안 노력한 게 있는데 아까운 것 같다고. 그만두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겠냐는 말도.
그래서 나는 내 첫 번째 '결심'을 잠시 접어놓기로 했다.
1년 뒤, 나는 1년 전과는 다른 팀장님에게 두 번째 나의 결심을 통보했다. 내 모습은 1년 전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같았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나는 5층의 야외벤치에서 눈물콧물을 쏟으며 팀장님에게 나의 결심을 전달했다.
두 번의 '결심의 날', 그날엔 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뜨거움과 차가움 그 둘 사이를 계속 왔다갔다거렸다. 감정이 이성적 생각보다 앞섰다. 팀장님에게 그만둔다는 말을 하던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이었고, 제일 슬픈 사람이었고, 제일 우울한 사람이었다.
팀장님은 1년 전의 팀장님과 비슷한 말로 회유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내 결심이 너무나도 굳세었다. 이미 한 번은 겪어본 것이라 그런지 그만둔다는 마음 그 자체는 1년 전, 첫 번째 날보다 더욱더 단단했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