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 여기 있습니다
공무원은 제너럴리스트라고 얘기했었다. 1~2년에 한 번씩 업무가 바뀌는 환경 속에서 담당자들은 그때그때 바뀌는 일들을 척척 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 전문성의 'ㅈ'자도 쌓을 수 없는 업무 환경이지만
말 그대로 업무를 '척척' 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상사 앞에서도, 민원인 앞에서도, 관련 공공기관 앞에서도.
'공무원=제너럴리스트' 라는 말도 맞지만 '근데 이제 전문성을 곁들인' 이라는 말까지 덧붙여져야 비로소 공무원의 역할이 정확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이 전문성을 곁들일 수 있기까지는 역경과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나는 일반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일반적인 담당 업무를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시간을 보통 1달로 생각한다.
1 달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무원 사회는 그렇다. 전문성을 쌓을 시간도 주지 않거니와 인수인계가 개판이다. 담당업무에 대해 종이 1장 정도 남기고 가는 사람들은 천사다.
보통은 전임자가 다른 부서로 옮겨간다고 하면 말로 2, 30분 정도 알려주고 가거나, 부서는 옮기지 않지만 다른 업무를 맡게 되는 경우 아예 알려주지 않다가 후임자가 업무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제야 알려주는 경우도 많다.
후임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전임자가 남기고 간 문서대장의 공문들과 컴퓨터 파일을 열심히 열어보며 업무를 유추해나간다. 관련 법령과 지침을 여러 번 보면서 외우는 것도 포함이다. 보통은 이렇게 본인의 새로운 담당 업무와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게다가 인사발령은 왜 이리 빠듯하게 내는 것인지. 내가 총무과에 있어보지 않아서 인사 발령 프로세스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공무원의 99.9%는 인사발령 프로세스를 혐오하는 수준으로 싫어한다.
다음 주 월요일이 당장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라고 한다면 인사발령 공문을 금요일 오후 5시 정도에 온나라(인트라넷)에 올린다. 사실 오후 5시에 올리는 것도 양반이다. 오후 6시 넘어서 올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인사발령 난 당사자들은 금요일 저녁에 칼퇴했다가 다른 주사님들의 전화로 인사발령 사실을 알고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렇다. 전임자와 후임자, 모두 주말을 포함하여 단 이틀 동안 새로운 업무를 인수인계받는 것이다.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다. 그러고는 다음 주 월요일 당장 나는 A 업무의 담당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실 민원 업무가 아니면 어느 정도 업무를 익힐 수 있는 시간이 조금 여유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원 업무는 기다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월요일 오전 9시부터 사람들은 찾아온다. 이들은 민원이 조금이라도 늦게 처리되면 큰소리친다.(보통 방문 민원은 20~30분 정도가 한계인 것 같다.) 그러면 담당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업무 첫날이라 조금 느릴 수 있다고 죄송하다는 멘트를 수십 번 얘기한다.
그렇다고 조급해해서는 안된다. 조급해하다가 관련 법령이나 지침을 위반하여 민원 처리하면 법적, 행정적 책임은 담당자가 떠맡게 된다. 게다가 민원인이 업무에 대해 물어본다면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잘못 알려줬다간 며칠 후 민원대 앞에서 삿대질하며 너 때문에 여러 번 왔다갔다 하지 않았느냐는 민원인의 큰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행정업무의 처리자이자 책임자이기도 하다. 담당 공무원의 말 한 마디, 설명 한 줄이 책임의 증거로 남게 된다. 민원인들은 보통 담당 공무원의 설명이나 말들을 녹음하는 경우가 많다. 추후 민원 처리가 잘못되었다거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되지 않았을 경우 담당자가 이렇게 얘기했었다며 증거로 남겨놓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틀 만에 A 업무의 담당자가 되었지만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하며 틀리지도 않아야 한다. 그리고 물어보는 질문에 바로바로 답변해줄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솔직히 버스 안에서 얘기했던 인사팀 주사님의 '전문성' 얘기가 처음에는 별로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업무를 하나둘 맡게 되면서 담당자가 갖는 법적, 행정적 책임의 크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왜 공무원에게 전문성이 필요한 것인지 일을 배우며 몸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