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취업지원서를 작성하다 보면, 갑자기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기업 지원서 양식을 보면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는데, 요즘 개인정보보호법 등으로 인해 간소화된 개인 정보, 학력란, 회사/타 조직 경력(보통 입사 전 직무 경험)을 쓰고, 각종 자격증, 어학 점수 등으로 첫 번째 섹션은 구성되어 있다. 필자가 채용담당을 했던 시기엔 더욱 복잡해서, 가족정보부터 키/몸무게, 혈액형 등등 도통 왜 필요한지도 모르지만 일단 쓰라고 하니 써야 했던 항목이 더 있었더랬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키/몸무게, 더 나아가 시력?? 아니 일반 사무직에 입사 지원하는데 키가 무슨 소용이고, 몸무게는 또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혈액형? 면접 보다가 쓰러지면 급하게 수혈을 해야 하니 필요해서 그런 것일까? 사실 특별한 사유로 인해, 가령 항공 관련 업무 등 특수 업종의 경우 법적인 자격 요건의 제한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사가 타당한 항목들이 더러 있긴 하다. 이런 항목은 예외로 하더라도, 왜 일반 업무에 이런 호구조사 수준의 항목들이 들어가져 있었을까. 요즘에는 관련 법으로 인해 이런 항목들이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아직까지 다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으나, 대부분 중견기업 이상의 취업지원서에는 지나칠 정도의 개인 정보를 기입해야 하는 항목들은 현재는 사라져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공기업을 막론하고 없어지지 않고 있는 항목이 있다. 바로 '취미'란이다. 재능기부로 취준생/직장인 경력 컨설팅 및 코칭을 하다 보면 더러 받는 질문 중에 취업지원서 쓰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꽤 구하는데, 바로 이 부분이 지원서를 작성하다가 '멈칫' 한다는 거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사실 필자가 학생 시절 수 많이 작성했던 지원서 경험을 볼 때, 멈칫하는 여러 순간이 있었는데, 똑같이 취미였다. 그때 당시는 취미를 왜 적어야 하지? 라기보다는 취미를 뭘 적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더 먼저였던 듯하다. 한참을 고민하다 주변에 물어보니 '독서'라고 적으란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서, 취미활동이라고는 친구들을 만나서 신세 한탄하며 술 퍼먹는 게 유일한 취미였던 지라, 취미를 음주라고 쓸 수 없지 않겠나. 그래서 결국 '독서'라고 적었다. 취미가 독서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상황인데, 현재도 취업지원서를 보면 독서라고 적은 사람이 꽤 있다. 놀라운 사실은 채용 면접자로 들어가서 취미에 대해 왜 그렇게 적었는지 물어보면, 별로 취미가 없어서 적었다고 한다. 수십 년 전과 바뀐 게 없다. 최근 모기업에서 이력서를 쓰 때 취준생이 대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항목의 39%가 취미/특기란이라고 한 조사 결과를 보았다.
조사 결과뿐만 아니라, 필자가 재능 기부하면서 받은 대부분의 이력서 쓰는 방법에 대한 질문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왜 아직도 '취미'란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하는 걸까?
주변 기업 채용 담당자 10명에게 물어본 결과, 1. 50%(5명)는 그동안 '써 왔던' 이력서 양식이라서. 2. 40%(4명)은 면접자가 질문할 내용을 좀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3. 10%(1명)은 지원자가 평소에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론, 더욱 많은 숫자의 채용 담당자들을 인터뷰해 보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겠으나, 취미란이 가지는 채용 당락의 Impact는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필자가 수학했던 美 Carlson School of Management 인사관리 교수인 Dr. Kammeyer-Muelle는 채용 시 개인의 역량을 판단하는 채용 인터뷰의 구조를 구조화된 질문(Structured questionnaire)과 비구조화된 질문(Unstructured questionnaire)으로 나누고, 면접 시 구조화된 질문을 사용할 때 좀 더 효과적인 채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당신 취미가 무엇인가요?'는 비구조화된 질문에 가까우며, 개인의 역량을 판단하기보다는 면접대상자의 취향 또는 관심사항, 업무 외적인 영역, 즉 '당신, 일 안 할 때 뭐하고 살아요?'를 통해 면접 시 면접관들과 Interaction을 높이기 위한 수준 정도로 보인다. 코칭의 단계 중 첫 단계가 피코치와의 라포(Rapport, 쉽게 말해, 본격적 코칭에 들어가기 전 코치와 피코치 간의 신뢰도 쌓기) 형성을 위함인데, 물론 채용 인터뷰 시 라포 형성도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 나름대로의 의미도 있을 것 같다. 다만, 현재 한국 기업들에서 이루어지는 채용 인터뷰의 장면들을 보면 1:1 면접보다는 n:n, 즉 여러 명의 면접관과 여러 명의 면접자가 동시간에 면접이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니, 라포 형성을 하면서 채용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가 하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당신 취미가 뭐요? 의 인터뷰 질문은 면접관들을 위한 질문 set이라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앞서 언급했던, 주변 기업 채용 담당자 10명의 의견 중 2,3번 항목에 해당되겠다. 재미있는 일례로, 실제로 이제 막 '머리 올림'한 '골린이'임에도 불고하고 취미란에 골프라고 적었던 한 중견기업 지원자는, 면접시간 중 2/3를 골프 얘기만 물어봐서, 진땀을 뺐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거 아부지 뭐하시노?' 수준의 질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를 대답하느라 진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왔지만, 면접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까닭에 합격할 줄 알았다고 생각한 이 면접자는 결국 '탈락'했다.
그렇다면 '취미'란을 빼는 게 맞지 않나요?라고 물어볼 수 있겠다. 면접관으로 들어가기 전 대부분의 면접관들은 지원서에서 본인이 물어보고 싶은 부분은 항상 체크를 미리 해놓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경력 사항이나 신입사원의 경우에는 공모전, 사회 경험 등 실제로 입사했을 때 Soft-landing 하여 '조기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인건가를 판단하기 위함인데, 이 체크 항목에 '취미'를 면접 Point로 체크해 놓는 면접관은 필자가 면접관으로 활동했던 오랜 기간 동안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나라 입사지원서에도 이 취미란을 삭제하는 게 맞지 않을까? 본인이 어떤 분야에 '특기'가 있을 경우, 본인이 자신을 PR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한 '특기'란은 '취미'와는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이제 이 '취미'란은 입사지원서에서 그만 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거다. 만약 정말로 취미가 궁금한 면접관이 있다면, 자기 질문 시간에, 혹시 취미가 뭐예요? 일 외 적으로는 어떤 관심사가 있나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요?라고 질문하면서 자연스럽게 면접자를 파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원서 작성은 참 떨리고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이제 그만 취미란에 뭘 적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지원자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