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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하은 Danhaeun Jan 12. 2024

편견 덩어리가 가득한 세상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

편견 없는 세상, 그것을 이루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오후 3시, 어김없이 초등학교로 봉사활동을 나갔다.

돌봄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늘 그렇듯 자신을 데리러 올 가족들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는 여러 명의 아이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다른 친구에게 욕설을 하거나 과격한 행동을 보이며 지도 선생님에게 혼이 나던 아이. 혼자만 혼이 난다는 것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분풀이로 장난감을 이리저리 어지럽히던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땐, '저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고, 얼굴이 빨갛게 익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절대로 눈물은 흘리지는 않는 아이. 교육봉사를 한 지 2일 차가 되었던 나는 그 아이가 궁금했다. 대학원에서 아동 심리 수업을 듣고 있던 나는 그 아이가 왜 그리도 억울해했는지 그리고 이후에 보여준 행동들은 무슨 의미였는지를 알고 싶었다.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아이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이름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기' 전략을 사용하기로 했다. 처음 이름을 불렀을 때, 낯설어하고 조금은 퉁명스러웠던 아이는 어느덧 내가 오는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눈을 맞추며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를 물어보고,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준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아이에게 한 번은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그렇게 많았어?"라고 묻자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네, 제 얘기는 아무도 안 들어줘요" 그저 단순한 한마디의 문장이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와 함께하면서 느꼈던 것은 승부욕이 강한 친구라는 것과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행동도 말투도 일부러 크고 세게 하다가 혼자만 혼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게임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규칙을 어기는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OO이가 게임에서 이기고 싶었구나, 맞아 게임에서 이기면 기분이 좋지. 근데 우리 아까 약속했던 게임 규칙을 한 번 같이 읽어볼까? 맞아. 다 같이 하는 게임에서 약속한 규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더는 게임을 할 수가 없어' 함께 정했던 약속과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해 타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차분히 설명을 하자, 그 아이는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다시는 게임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물론, 내가 했던 말이 옳거나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아이가 가진 생각을 더 이해해 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돌봄 지도 선생님께서 날 부르시더니 '요즘 말썽 피우는 게 적어져서 다행이에요 정말, 그 아이가 워낙 문제가 많다고 집에서도 연락이 와요, 선생님 상담심리 전공이셨죠? 한 번 날 잡고 아이랑 심리 상담 좀 해주셨으면 좋겠는데...'라고 물어보셨다. 물론 상담사의 윤리에 어긋나는 부분이라고 말씀드리며 거절했지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골칫거리라는 듯이 말하는 편견 어린 그 모습이 눈에 계속 아른거렸다.


이미 아이가 그동안 보였던 모습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모습에 '문제아'라는 편견이 생겼고, 심지어는 아이가 먼저 잘못을 하지 않았을 때조차 그 아이는 이미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편 들어주는 친구들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욕설을 하며 화를 낼 때조차 다른 친구가 그 친구를 먼저 괴롭히고 놀리며 약을 올리자 화가 난 나머지 내뱉는 말들이었고,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니 어른내가 봐도 억울한 상황들이 많아 보였다. 그저 사람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사랑을 원했던 아이는 편견 덩어리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외롭게 혼자 버티고 있었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 상담자도 아닌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지만 그저 내가 있는 시간 동안이라도 아이가 세상에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날, 아이가 보여준 웃음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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