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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로운 킴변리사 Nov 16. 2021

위조화폐

화폐의 역사와 함께 한 위조화폐

1. 화폐


가. 화폐의 정의와 금본위제도


'화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상품 교환 가치의 척도가 되며 그것의 교환을 매개하는 일반화된 수단주화지폐은행권 따위가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어, 사전적으로는 화폐는 동전과 같은 주화, 종이화폐인 지폐 및 은행권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옛날에 쌀, 소금 등은 그 자체의 사용목적과 달리 물품화폐로서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널리 쓰였었다. 그리고 금, 은, 동 등의 금속이 그릇, 장신구 등의 재료로 널리 쓰이게 되면서 이 금속의 가치가 교환을 위한 화폐가치가 되는 금속화폐로 쓰였다. 따라서 옛날에는 이들 물품이나 금속 자체의 부피 혹은 중량이 어느 누구의 가치보증이 없어도 다른 물건을 살 수 있는 가치의 척도가 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형성과 기술발전으로 국가에 의한 금속화폐의 표준화가 진행되면서 금속화폐의 주조권을 군주 등 국가권력이 소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군주들은 화폐제조에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화폐의 귀금속 함유량을 감소시켜 화폐의 소재가치가 액면가치보다 낮은 주화를 발행하게 되었다. 결국 이를 계기로 화폐의 소재로 쓰인 재료의 가치와는 별개의 명목상 교환가치 인 화폐 액면이 등장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후 경제규모의 확대, 원거리 무역이 증대됨에 따라 금속화폐의 대량휴대 및 이동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나 은행이 금, 은 등의 정식 화폐를 보관하고 그 보관증서로 지폐를 발행하는 제도가 정착되었다. 즉 19세기초 당시 세계최대의 경제강국이었던 영국은 화폐단위를 금의 일정량과 같게 하고 전액 금화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지폐 등의 명목화폐를 통용 시키는 금본위제도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20세기초에 이르기까지 많은 국가가 금본위제도를 채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국가간 교역규모가 더욱 확대되면서 지폐 등 명목화폐 발행조건인 금의 공급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등의 전쟁은 국가로 하여금 금의 준비 없이도 지폐를 발행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로써 점차 정식화폐인 금과 지폐의 가치에는 1대 1의 관계가 사라졌으며 결국 오늘날의 화폐에 그 소재가치와 무관한 액면이 정해지게 되었다. 그 대신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가 정부 행정조직과는 별개인 중앙은행을 설립하고 그 중앙은행에게 화폐의 독점적 발행권한을 부여하여 화폐가치 안정(물가안정)의 책무를 수행토록 하고 있다.


나. 한국은행의 화폐발행권


한국은행법에서는 한국은행만이 대한민국의 화폐를 발행할 권한을 갖는다고 되어 있다.


제47조(화폐의 발행) 화폐의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

제47조의2(화폐단위)

① 대한민국의 화폐단위는 원으로 한다.

② 원은 계산의 단위가 되고 100전으로 분할된다.

③ 원은 영문으로 WON으로 표기한다.

④ 전은 영문으로 JEON으로 표기한다.

제48조(한국은행권의 통용) 한국은행이 발행한 한국은행권은 법화(法貨)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

제49조(한국은행권의 권종 등) 한국은행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바에 따라 어떠한 규격ㆍ모양 및 권종(券種)의 한국은행권도 발행할 수 있다.



2. 위조화폐


위조화폐는 사전적 의미로 '진짜처럼 보이게 만든 가짜 화폐'로 정의된다.


조선 시대에는 세종대왕이 조선통보를 만들기 전까지는 닥나무 종이로 만든 저화를 발행했는데, 사람들이 사용을 꺼려해서 널리 유통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위조범에 대한 처벌이 가벼워서 위조가 많았던 탓도 있다. 심지어 저화를 발행하는 관리가 몰래 종이를 들여와 저화를 찍어 소를 잡아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조선통보가 나온 이후로 위조범은 가차없이 효수해 버렸다.


조선시대 말기에도 흥선대원군 당백전 발행이 있자 위조 화폐가 만들어졌고, 대한제국 시기 백동화가 만들어지자 백동화 제조기술을 가져왔던 일본에서 위조 백동화와 위조 백동화 제조기계까지 밀수되었다. 이게 얼마나 사회문제가 되었는지 일본내에서도 백동화 위조범 처벌법규를 만들었을 정도이다.

숙종 4년(1664년), 구리와 납을 7대 3 비율로 섞어 만든 상평통보가 탄생했다. 주전틀이 나뭇잎처럼 생겼다고 해서 엽전(葉錢)이라 불리기도 했던 상평통보는 제작 과정이 비교적 단순했던 탓에 위조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곤 했다.

그 누구보다 엄격하게 상평통보를 관리해야 했던 주전소(동전을 주조하던 관아) 관리들조차 화폐 위조에 가담했는데, 태연이라는 한 관리는 실제로는 43만냥을 주조해 놓고 25만냥만 주조했다고 보고했다. 나머지 18만냥은 빚을 갚고 생활비로 썼다고 한다.


3. 화폐번호 77246사건


근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위조화폐 사건이 바로 일명 '화폐번호 77246'사건이다. 이는  2005년 3월부터 검거 직전인 2013년 6월까지 8년 간 무려 5만 장이 넘는 오천 원권 위조지폐가 유통된 사건으로, 사건의 이름이 77246인 이유는 위조지폐의 발행번호에 늘 77246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단독으로 장기간에 걸쳐 수만 장이 넘는 위조지폐를 발행해 유통시키면서도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아 오랫동안 잡히지 않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컴퓨터그래픽 전공자였던 김 모 씨는 2006년 실직 이후 5000원권 위조지폐를 만들었습니다. 자식 중 한 명이 장애를 가지고 있어 병원비 부담으로 인해 위조지폐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5000원권을 위조한 이유는 당시 유통 중이던 구 권에 홀로그램 위변조 방지 기술이 없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77246 위조지폐는 잉크젯으로 복사했지만 지폐를 비추면 나오는 숨은그림 장치도 구현돼 일반인들은 외관상 쉽게 구분이 어렵웠다고 합니다. 김 씨는 CCTV가 없고 노인이 운영하는 철물점이나 슈퍼마켓에서만 위폐를 사용했습니다. 위조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챙기는 방식으로 범행을 일삼았습니다.


범인은 2013년 서울에서 검거되었습니다. 과거 위폐를 사용한 적이 있는 서울 광진구의 한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슈퍼마켓 주인은 1월 이 가게를 방문했던 김 씨가 사용한 돈이 위폐임을 확인한 뒤 포스트잇에 위폐 일련번호를 ‘***77246**’을 적어 계산대에 붙여놓고 5000원권 구권 사용자를 주시해 왔습니다. 김 씨는 가게 주인의 기지로 체포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화폐 교체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현행 5,000원권을 다른 액면에 비해 1년 앞당겨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또 홀로그램, 요판만상 기술 등 총 7개의 위조 방지 장치가 새 지폐에 도입되었습니다.          

범인은 이미 검거되어 교도소에 수감 중이지만, 문제의 위폐는 검거 후 7년이 지난 현재에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만약 범인의 실수, 신권 교체, 후술할 슈퍼마켓 주인의 눈썰미 중 1가지라도 없었으면 미제 사건으로 끝날 뻔 했던 사건으로, 검거 직전까지 국정원에서도 관여할 정도로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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