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느린 나라에서

글을 쓰는 이유

by 이나라



평생을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살아왔다. 누구나 그렇고 누구여도 그렇겠지만. 새벽 내내 비가 오다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찬란한 해가 찌는, 변덕스러운 8월의 마지막 날 오후 6시 글쓰기의 주제는 뜬금없게도 '이나라'다. 27년 동안 바라본 나라는 사람은 숲보단 나무요 나무보단 풀씨인 사람이다. 가끔 내가 모든 것을 미시적으로 보는 알고리즘이 내장된 채 태어난 엉뚱한 관찰기계 같다는 생각을 한다.


태생적으로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인 내가 20대의 절반을 어쩔 수 없이 한국의 중심지인 서울에서 보냈다. 다니던 대학은 성북구에 위치해있었다. 카페도 많고 술집도 많은 대학가라 사람이 끊기는 시간대가 거의 없었다. 학교 가는 길에도 집에 가는 길에도 두더지처럼 사람이 없는 골목골목을 돌아서 다녔다. 자주 주목을 받을 만큼 존재감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지만 가끔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벗어나려 노력했다. 덕분에 대학에서도 말을 해본 사람은 지금까지 만나는 두세 명의 동기들뿐이었다. 그렇다고 말주변이 없거나 아예 소심하지만은 않았다. 각종 알바 경력으로 단련되어 쥐어짜 낸 사회성의 산물일 테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난 어릴 때부터 변한 게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야생화나 곤충의 이름이 적힌 책이나 세계명화집만 들여다보며 지냈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모래냄새가 날 때까지 논 기억도 거의 없다. 모두가 아는 걸 모르는 일이 많았고 대부분 모르는 걸 아는 일이 잦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를 건 없었다.


엄마는 항상 약지 못하고 성난 파도에 휩쓸리는 작은 조개껍질 같은 딸이 걱정이셨다. 실제로 일을 하면서도 관계에 있어서도 항상 마음속에 깊은 불안을 안고 지냈다. 아는 것에도 입을 다물었고 손해를 조금 보거나 오해를 받을지언정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 싫었으며 빈수레처럼 가진 것 없이 요란하기 싫은 마음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더 나빠지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말이 없는 게 나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를 답답해했다. 왜 바보같이 사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나한테 손해는 다른 사람이 가진 걸 못 가진 것보다 내가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거였다.


감사하게도 지금 만나는 연인은 그런 나를 유일하게 닦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 스포츠라면 질색팔색 하는 몸을 이끌고 함께 처음 볼링장에 갔었는데 아무리 굴려봐도 팔다리가 따로 움직여 공이 내 마음대로 가지는 않고 던질 차례가 오니 꼭 어린 시절 억지로 달리기 레일에 서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데 심지어 큰소리의 욕과 함께 들어오던 청춘남녀 4명이 휘황찬란하게 박수를 치며 볼링을 치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 음악이든 말소리든 큰 소리라면 무조건 피하고 보는 나에게 그 장소는 연인이 있어도 불안한 곳이었다. 그냥 재밌게 경험하고 오면 되는데 그게 이상하게 어려웠다. 그만하고 여기 앉아있겠다는 말에 그래도 연인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치면 나에게 두 손 벌려 달려오며 풀이 죽어있는 나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글쎄, 그때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거창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사랑의 환희 같은 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잔뜩 미안함을 품고 손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는데 그는 나답다며 잠깐 웃었다. 내가 너무 별 것 아닌 거에 작아지는 사람이라 미안하다고 하니 그래서 작은 것까지 볼 줄 아는 거라 말한다. 그래, 생각해보니 난 숲을 보는 것엔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래서 작은 개미를 밟지 않으려 애쓴다. 대단한 걸 가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남을 위해 슬퍼하고 기뻐할 줄 아는 작은 마음은 꼭 간직하고 싶어 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다 보면 나를 사랑하는 남을 위한 글을 쓰게 된다. 그렇게 그 글의 기억 속에서 자주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이토록 느린 세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