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카펫 매거진 Vol 6. 오혜재 님
매직카펫 매거진의 인터뷰가 쌓이면 쌓일수록 ‘매직카펫’에 대한 정의가 조금씩 명확해지는 걸 느낀다. 취미라는 단어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이상의 애정과 에너지를 쏟는 활동. 그리고 하나 더하자면 나를 설명하려면 꼭 들어가야 하는 어떤 키워드.
오늘의 매직카펫 라이더에게 이 정의를 아주 본격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다. 직장인이자 2015년 이후 세 번의 전시회를 가진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이자 작가이기도 한 오혜재 님.
우린 우선 싸이월드 일촌으로 시작했다.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가 대학 선배이자 대학 동아리 선배가 되었다. 내가 본 언니는 늘 목표를 향해 가느라 바빠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첫 전시회(2015년)를 연다고 연락이 왔을 때 깜짝 놀랐다. 전시회를 열 정도로 그림을 그려왔다니.
태풍 경보가 내린 어느 토요일에 만난 우리는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혜재님. 소개 부탁드려요.
이름은 오혜재고요.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라는 곳이고 잘 아시다시피 유네스코는 교육, 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담당하는 유엔 전문기구(specialized agency)에요. 저희는 유네스코만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 제도에 따라 설립된 한국 국가위원회입니다. 유네스코와 관련된 활동들이 한국에서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정확히 2007년 9월 10일에 입사해서 지금 13년 차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니.
그새 나이가 들었습니다.
우리 고등학교 만화동아리에서 만났잖아요. 제가 입학할 때 혜재님이 졸업해서 제가 혜재님의 전시회를 본 적은 없어요. 대학에서는 편집부를 같이 했기 때문에 혜재님이 첫 전시회를 한다고 했을 때 놀랐어요. 고등학교 때 그림을 많이 그리는 편이었는지, 어떻게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아련한 기억이긴 하지만 만화동아리에 독특한 친구들이 많았어요. 개성들이 강했고 각자의 스타일도 다양했는데 저는 그런 다양한 그림 스타일 보는 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보통은 만화 좋아하는 친구들이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미국 만화, 마블 코믹스 같은데 관심이 많던 사람이었어요.
선이 굵고 부피감이 있고 액션이 많이 가미된 그런 좀 둔탁한 느낌의 그림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요즘 나오는 맨 시리즈의 만화들을 좋아했었고. 씬시티 원작자 프랭크 뮐러 같이 아주 거친 만화도 좋아했고. 제 그림 스타일도 그렇게 부드러운 느낌은 아니에요. 그때도 제 나름의 스타일이 있었죠.
그때 전 일반고등학교에 있었지만 사실은 미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림이 너무 좋았고 그림 보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어머니도 미술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취미라고 하기엔 너무 그림을 잘 그리셨었죠.
재능이 있으셨군요.
네. 집안에 걸려있는 유화작품 전부 어머니가 그리신 것이었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익숙했죠. 어디 놀러 가면 엄마가 풍경 스케치를 하거나 그림 소재를 마련하기 위해 사진 찍을 때 항상 따라다니면서 옆에서 봤었고요. 수채물감은 이렇게 써야 하고, 유화물감은 이렇게 써야 하는지 어깨너머로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미술학원이 아니라 어머니한테 배운 건가요?
미술학원을 안 갔던 건 아니지만 일곱, 여덟 살 때 으레 아이들이 가는 동네 화실, 그리고 학교 미술시간 이 정도였어요. 특별히 뭘 더 한 건 없었고 다만 엄마가 그런 걸 했으니까 어깨너머로 배우고. 그림을 좋아하고 집에 그림책도 많았어요.
부모님 말씀으론 제가 기저귀를 차고 말을 제대로 못할 때부터 그림책만 그렇게 찾더래요. 책이 많은데 르네상스 시대 화보집 같은 것만 찾아서 매일 그렇게 봤대요. 책이 해질 때까지요. 그래서 얘가 정말 그런 데 관심이 많나 했대요. 아이가 보통 그런 데 관심을 가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자꾸 그림을 그리는데 전부 다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반대로 그리더래요. 예를 들면 숫자 5를 쓰면 우리가 아는 5를 쓰는 게 아니라 거울에 비친 뒤집힌 모양으로 그린다는 거죠. 얘가 피카소처럼 큰 인물이 되려나 하고 부모님은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정도의 천재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여튼 그런 일화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제 사정상 그럴 수가 없었어요. 미술과 관련해서 우스갯소리로 예술가가 되려면 집이 엄청 부자이거나 피카소 정도의 천재여야 가능하다고. 그만큼 미술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게 어렵다는 뜻이거든요. 제 생각에 저는 둘 다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 빨리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해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문대에서 영문과를 전공했고 4년 공부하고 졸업하자마자 취직해서 그 뒤부터 지금까지 쭉 일을 한 거죠.
그럼 다시 그림에 대한 갈증을 느낀 건 언제였어요?
제가 대학교 졸업반일 때 경제적으로 사정이 너무 안 좋았어요. 생계를 거의 제가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라 빨리 취직을 하는 게 절박한 상황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그때는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생각하기 힘들었고 졸업 전부터 일을 했어요.
연구소 같은 데서 계약직으로도 일하고 사기업에서도 인턴하고 공공기관에서도 일하면서 닥치는 대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을 했었어요. 돈을 벌기 위해. 그러다 운 좋게 여기 회사에 들어와서 정규직이 되어서 지금까지 쭉 일을 했고요.
대학 졸업반 때부터 10여 년간은 그렇게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내 커리어를 위해서. 생계도 생계지만 사회에 들어온 이상 나도 사회인으로서 성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러고 나서 어느 순간 안정이 되고 내 밥벌이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니까 너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거예요. 본능적으로 내 마음속에 생각나는 잔상들을 그림으로 종이에 표현하지 않으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 순간이 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은 사이즈의 그림을 색연필처럼 아주 간단한 재료를 써서 그렸던 거죠.
그런데 그걸 우연히 제 주변 사람들이 봤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저는 그냥 잘 그렸네 이 정도로만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 사람들이 진짜 당신이 그린 것 맞냐, 어떻게 그린 거냐 하면서 심각하게 질문을 하더라고요.
왜냐면 요즘엔 드로잉 클래스도 많아서 테크니컬 한 건 몇 개월만 배워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건데 사람들이 왠지 이 그림은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그러더라고요. 뭔가 독특하고 누가 봐도 당신이 그린 것 같고 그 스타일이 분명히 보이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 오묘한 느낌이 좋다고들 했어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건물 옥상에 있는 카페에서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그래서 그동안 두서없이 그려놓았던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서 전시를 한 게 데뷔전처럼 된 거죠. 제 의도랑 상관없이 그렇게까지 간 건데 그때도 호응이 생각보다 좋아서 그림이 거의 다 팔렸어요.
제가 비영리기관에서 일하다 보니 첫 전시회는 돈을 벌려는 목적은 아니었고 벌었던 돈의 거의 절반 이상을 회사에 기부했죠. 그래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추진하는 아프리카 국가 대상 교육 지원 프로그램을 위한 기부금으로 쓰였어요.
집에서 혼자 그리던 사람이 사람들 앞에 그림을 내놓으려면 타이밍과 운 외에도 의지도 필요할 것 같아요. 전시회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순간이 왔어요. 내가 애써 억누르거나 모른 척해야 했던 내 나름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이제는 내가 좀 뿜어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계기 같아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회인으로서는 항상 “00년 차 직장인 오혜재”라고만 불려지지만 그 그림을 통해서 나를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그런 느낌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첫 전시회를 통해 여러 가지 얻은 게 있겠지만 인간으로서의 오혜재는 뭘 얻었나요?
저는 B형이에요. B형이 유별나다고 하잖아요. 저는 제 스스로를 독특하다고 생각해요. 전형적인 B형. 그게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일할 땐 사람들이 저를 A형이나 O형으로 보는 경우가 있어요. 고정관념대로만 생각하자면 제가 굉장히 제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거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상 내가 어느 선을 지켜야 한다는 그런 강박관념이 없잖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봤을 땐 그냥 무난한 사람, 특별히 문제가 없는 사람. 그런데 그게 제 모습은 아니거든요. 유별날지 모르겠지만 전 제 모습을 알고 있고 그게 좋든 나쁘든 그걸 어디로 이야기를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왜냐하면 계속 직장인, 사회인으로서 살다 보면 저희가 알던 사람들하고 멀어질 수밖에 없어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 사람들하고 만날 기회도 적어지고. 저는 제 회사일에만 매달리다 보니까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무언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 면에서 외로움이나 섭섭함.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나는 점점 이렇게 고립되어가는 건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는 건가 하는 그런 자괴감. 예전에 학생이었을 때의 내 모습은 항상 열정적이고 뭔가를 하고 싶어 하고 뭔가 굉장히 표출을 잘했던 것 같은데 그게 오랫동안 안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이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림으로 그걸 표출하게 되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고 니들이 싫든 좋든 나는 나고. 나는 내 그림을 칭찬해줘도 되고 비판을 해도 되고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지만 어쨌든 이게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걸 보여주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오혜재 님의 인터뷰는 'Part2. 시스템 밖 독학 예술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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