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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움 Oct 01. 2019

Part2. 시스템 밖 독학 예술가

매직카펫 매거진 Vol 6. 오혜재 님

오혜재 님의 인터뷰는 'Part1. 나를 드러내다'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25


두 번째 전시회는 류가헌 갤러리에서 했잖아요. 이름 있는 전문 갤러리인데 거기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작가로서 이름을 확고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처음 그림을 그렸던 건 이걸로 돈을 왕창 벌어보겠다고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첫 번째 전시회를 하고 호응이 좋으니까 제 자신에게 좀 더 투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쨌거나 전 생업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취미로는 부족하고 어쨌거나 나의 또 다른 커리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작가 오혜재로서 내 본연의 자아를 만들어가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어쨌건 그림을 더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려면 결국엔 전문 갤러리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고 그게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어요. 저는 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한국 사회는 어느 분야에서든 혈연, 학연, 지연의 네트워크가 강한 곳이라.  


그래서 그걸 뚫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그냥 아무 밑천 없이 돌아다니면서 알아봤어요. 갤러리 찾아가서 내가 첫 전시회를 했고 도록이 이렇게 있고 저는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본인이 직접 다니면서 뿌린 거예요?


네. 상당 부분 제가 미대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요. 제 그림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시회를 열고자 하는 의지 자체에 대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곳도 있었죠.


제가 예술계에 몸을 담고 있었던 사람이 아닌지라 관련 사정을 잘 모르는 것은 맞지만, 적어도 제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외국은 학교를 나오든 나오지 않든 자기가 터득해서 좋은 그림을 그리면 그것에 대해서는 다 인정을 해줘요.


올해 있었던 세 번째 전시회에서의 혜재 님.


아까 그 단어 말씀해주셨죠? 뭐였죠?


Self-taught(독학한) artist라고 해서  스스로 학습을 해서 예술가가 된 사람들을 그런 명칭으로 부르고 있어요.


그분들의 학교나 학력에 상관없이 그림 자체로 인정을 받는 거죠. 그 사람이 모 대학을 나와서, 어떤 교수한테 지도를 받아서 인정받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약간 한국은 아직 그런 게 정착되어 있지 않고.


그렇지만 저는 Self-taught artist 로서 어필하고 싶었고 제가 욕심이 나기 시작했어요. 불가능한 게 없다는 걸 좀 보여주고 싶었고 그걸 통해서 제 본연의 모습을 더 알리고 싶었고. 그래서 우연히 갤러리 류가헌이랑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흔쾌히 전시실을 주셨고 그때 한 달 동안 전시를 한 게 두 번째 전시였어요.


직접 도록을 뿌렸다는 게 너무 대단해요.


구식이긴 하지만 가장 정확하죠.


주로 주말에 그림을 그리세요?


대중은 없어요. 회사 업무는 제가 계획을 짜서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업무가 세 가지가 주어졌다면 우선순위를 정하고 제가 일정에 맞춰서 정리하는 게 훨씬 쉬워요.


그런데 그림은 창의력이 필요하거든요. 내가 아무리 그리고 싶어도 그림 그릴 거리가 생각이 안 나면 전 두세 달도 안 그려져요. 아예 그냥. 펜이랑 종이가 눈앞에 있어도. 그런데 어느 순간 뭔가가 갑자기 엄청나게 생각이 나고 영감이 얻어지면 일주일에 두세 개도 그릴 수 있어요. 그게 예술인 거거든요.


각각 쓰는 뇌의 영역이 다르잖아요. 일을 하다가 그림 그리기로 뇌가 잘 돌아서나요?


회사일을 하면 온몸의 기가 빠지는 기분이에요. 긴장하고 실수할까 봐 걱정도 하고. 최근에는 제가 팀장이 되면서 관리자의 역할까지 해야 하거든요. 그렇다고 실무를 안 하는 건 아니에요. 결국은 실무도 하면서 사람들을 관리해나가야 하니까 압박감도 배로 커졌어요.


그래서 회사를 다녀오면 젓가락도 들기 힘들 정도로 진이 빠지고 아무 생각이 안 드는데 그 와중에도 그림에 대해서는 별개의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집중력이 좋은 사람은 아닌데도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잡념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마치 아침에 일어나서 졸린데 커피를 마신 것처럼. 그림 그릴 때만큼은 제 감정이 편안하고 굉장히 정적인 느낌이 들어요.


올해 혜재 님은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에도 출품했다고.


그럼 영감이 오지 않을 때는요? 영감을 얻기 위한 활동이 있나요?


저는 책을 좋아해요. 저희 가족들도 책을 참 좋아하고 저도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하면서 살아온 사람이에요. 그리고 제가 미술을 하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지만 대학을 다닐 동안에는 기자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글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책을 많이 봐요. 소설일 수도 있고 딱딱한 사회과학 서적일 수도 있고 경제 관련 서적일 수도 있지만 책을 보면서 굉장히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인 것 같아요.


말로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책을 보면서 인상적으로 본 부분이 있으면 제 머릿속에서 뇌가 알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럼 제가 까먹기 전에 그 메모를 해두죠. 어떤 부분이 생각났고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이고. 나중에 그걸 보면서 생각나면 그림으로 옮기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저에게 책과 그림은 떼려야 뗼 수 없는 세트 같아요. 이 둘은 상호보완적이에요.


제 그림이 엄밀히 말하면 일러스트레이션이에요. 유화나 조소 같은 정통 영역의 그림은 아니고 외국에서는 컨템퍼러리 아트, 그중에서도 일러스트레이션이에요. 한국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아직도 예술의 한 영역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그 문이 열려있지 않아요.


외국의 경우에는 일러스트레이션 영역이 강해요. 특히나 유럽 지역이 강한 게 책이 만들어질 때 책에 대한 부연설명을 위해 그림을 십분 활용했었어요. 그렇다보니 일러스트레이션 영역이 중요했고 우리가 잘 아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그렇잖아요. 옆에 삽화가 있고 그 글에 대해 어떤 상황인지를 정교하게 그림으로 표현하잖아요. 그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되거든요.


그렇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위한 보조재가 아니라 이 일러스트레이션 영역이 아예 독립적인 작품으로 나오게 된 거예요.


쉽게 말하자면 일러스트레이션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림이라고 보시면 돼요. 예를 들면 우리가 상당수의 많은 미술작품들이 별 뜻 없이,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들도 많아요. 그래서 무제, 언타이틀드(untitled)라는 제목이 많잖아요.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은 반드시 메시지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그림을 봤을 때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일러스트레이션과 다른 영역의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하군요.


네. 제 그림도 즉흥적인 건 하나도 없어요. 엄밀히 말하면. 전 항상 콘텐츠가 있고 그 콘텐츠를 기반으로 그리기 때문에 그림을 보면 무슨 말인지를 사람들이 알 수 있게 그리는 거죠. 제목과 그림만 보면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런 면에서 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오혜재 님의 인터뷰는 'Part3. Ms. Worldwide, 오혜재'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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