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카펫 매거진 Vol 6. 오혜재 님
오혜재 님의 인터뷰는 'Part1. 나를 드러내다'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25
두 번째 전시회는 류가헌 갤러리에서 했잖아요. 이름 있는 전문 갤러리인데 거기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작가로서 이름을 확고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처음 그림을 그렸던 건 이걸로 돈을 왕창 벌어보겠다고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첫 번째 전시회를 하고 호응이 좋으니까 제 자신에게 좀 더 투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쨌거나 전 생업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취미로는 부족하고 어쨌거나 나의 또 다른 커리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작가 오혜재로서 내 본연의 자아를 만들어가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어쨌건 그림을 더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려면 결국엔 전문 갤러리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고 그게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어요. 저는 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한국 사회는 어느 분야에서든 혈연, 학연, 지연의 네트워크가 강한 곳이라.
그래서 그걸 뚫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그냥 아무 밑천 없이 돌아다니면서 알아봤어요. 갤러리 찾아가서 내가 첫 전시회를 했고 도록이 이렇게 있고 저는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본인이 직접 다니면서 뿌린 거예요?
네. 상당 부분 제가 미대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요. 제 그림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시회를 열고자 하는 의지 자체에 대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곳도 있었죠.
제가 예술계에 몸을 담고 있었던 사람이 아닌지라 관련 사정을 잘 모르는 것은 맞지만, 적어도 제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외국은 학교를 나오든 나오지 않든 자기가 터득해서 좋은 그림을 그리면 그것에 대해서는 다 인정을 해줘요.
아까 그 단어 말씀해주셨죠? 뭐였죠?
Self-taught(독학한) artist라고 해서 스스로 학습을 해서 예술가가 된 사람들을 그런 명칭으로 부르고 있어요.
그분들의 학교나 학력에 상관없이 그림 자체로 인정을 받는 거죠. 그 사람이 모 대학을 나와서, 어떤 교수한테 지도를 받아서 인정받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약간 한국은 아직 그런 게 정착되어 있지 않고.
그렇지만 저는 Self-taught artist 로서 어필하고 싶었고 제가 욕심이 나기 시작했어요. 불가능한 게 없다는 걸 좀 보여주고 싶었고 그걸 통해서 제 본연의 모습을 더 알리고 싶었고. 그래서 우연히 갤러리 류가헌이랑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흔쾌히 전시실을 주셨고 그때 한 달 동안 전시를 한 게 두 번째 전시였어요.
직접 도록을 뿌렸다는 게 너무 대단해요.
구식이긴 하지만 가장 정확하죠.
주로 주말에 그림을 그리세요?
대중은 없어요. 회사 업무는 제가 계획을 짜서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업무가 세 가지가 주어졌다면 우선순위를 정하고 제가 일정에 맞춰서 정리하는 게 훨씬 쉬워요.
그런데 그림은 창의력이 필요하거든요. 내가 아무리 그리고 싶어도 그림 그릴 거리가 생각이 안 나면 전 두세 달도 안 그려져요. 아예 그냥. 펜이랑 종이가 눈앞에 있어도. 그런데 어느 순간 뭔가가 갑자기 엄청나게 생각이 나고 영감이 얻어지면 일주일에 두세 개도 그릴 수 있어요. 그게 예술인 거거든요.
각각 쓰는 뇌의 영역이 다르잖아요. 일을 하다가 그림 그리기로 뇌가 잘 돌아서나요?
회사일을 하면 온몸의 기가 빠지는 기분이에요. 긴장하고 실수할까 봐 걱정도 하고. 최근에는 제가 팀장이 되면서 관리자의 역할까지 해야 하거든요. 그렇다고 실무를 안 하는 건 아니에요. 결국은 실무도 하면서 사람들을 관리해나가야 하니까 압박감도 배로 커졌어요.
그래서 회사를 다녀오면 젓가락도 들기 힘들 정도로 진이 빠지고 아무 생각이 안 드는데 그 와중에도 그림에 대해서는 별개의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집중력이 좋은 사람은 아닌데도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잡념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마치 아침에 일어나서 졸린데 커피를 마신 것처럼. 그림 그릴 때만큼은 제 감정이 편안하고 굉장히 정적인 느낌이 들어요.
그럼 영감이 오지 않을 때는요? 영감을 얻기 위한 활동이 있나요?
저는 책을 좋아해요. 저희 가족들도 책을 참 좋아하고 저도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하면서 살아온 사람이에요. 그리고 제가 미술을 하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지만 대학을 다닐 동안에는 기자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글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책을 많이 봐요. 소설일 수도 있고 딱딱한 사회과학 서적일 수도 있고 경제 관련 서적일 수도 있지만 책을 보면서 굉장히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인 것 같아요.
말로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책을 보면서 인상적으로 본 부분이 있으면 제 머릿속에서 뇌가 알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럼 제가 까먹기 전에 그 메모를 해두죠. 어떤 부분이 생각났고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이고. 나중에 그걸 보면서 생각나면 그림으로 옮기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저에게 책과 그림은 떼려야 뗼 수 없는 세트 같아요. 이 둘은 상호보완적이에요.
제 그림이 엄밀히 말하면 일러스트레이션이에요. 유화나 조소 같은 정통 영역의 그림은 아니고 외국에서는 컨템퍼러리 아트, 그중에서도 일러스트레이션이에요. 한국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아직도 예술의 한 영역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그 문이 열려있지 않아요.
외국의 경우에는 일러스트레이션 영역이 강해요. 특히나 유럽 지역이 강한 게 책이 만들어질 때 책에 대한 부연설명을 위해 그림을 십분 활용했었어요. 그렇다보니 일러스트레이션 영역이 중요했고 우리가 잘 아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그렇잖아요. 옆에 삽화가 있고 그 글에 대해 어떤 상황인지를 정교하게 그림으로 표현하잖아요. 그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되거든요.
그렇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위한 보조재가 아니라 이 일러스트레이션 영역이 아예 독립적인 작품으로 나오게 된 거예요.
쉽게 말하자면 일러스트레이션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림이라고 보시면 돼요. 예를 들면 우리가 상당수의 많은 미술작품들이 별 뜻 없이,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들도 많아요. 그래서 무제, 언타이틀드(untitled)라는 제목이 많잖아요.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은 반드시 메시지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그림을 봤을 때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일러스트레이션과 다른 영역의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하군요.
네. 제 그림도 즉흥적인 건 하나도 없어요. 엄밀히 말하면. 전 항상 콘텐츠가 있고 그 콘텐츠를 기반으로 그리기 때문에 그림을 보면 무슨 말인지를 사람들이 알 수 있게 그리는 거죠. 제목과 그림만 보면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런 면에서 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오혜재 님의 인터뷰는 'Part3. Ms. Worldwide, 오혜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