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움 Nov 05. 2019

Part1. 길목에 서있는 사람

매직카펫 매거진 Vol8. 류승윤 님 (1)

<매직카펫 매거진>을 시작한 이래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매직카펫’이 자신의 일, 직업이 될 수는 없나요?


‘매직카펫’을 ‘취미’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것, 그 이상의 애정과 에너지를 쏟는 활동, 그래서 자신을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하곤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일이 ‘매직카펫’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한편에서는 이런 말도 있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면 괴롭다.’ 먹고 살기 녹록지 않은 사회에서 이 문장은 이미 대학시절 때부터 경구처럼 들려오곤 했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에겐 일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10년 가까이 일을 해왔다 하더라도 고민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방법은 없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일은 생계 아니면 취미, 이 선택지로만 실현가능한 걸까?  


이번 매직카펫 라이더는 아직 그 답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개미와 베짱이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류승윤이라고 합니다.


개미와 베짱이를 동시에 추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어떤 때에는 꾸역꾸역 일하면서 회사형 인간으로 살다가 갑자기 휙 베짱이처럼 놀고. 막상 요즘 갭이어다 이직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저처럼 그 코스를 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왔다 갔다 하는 거요?


네.


최근 3년 간 1년씩 두 번 쉬었댔죠?


네. 그러니까 3년 간 일은 1년 한 거죠.


그 기간 동안에 뭐했어요?


그러게요. 틈틈이 여행을 다녀왔지만 일하면서도 여행은 다니니까요.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갑자기 말할 게 없어지네요.


멈춰 서서 생각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한 번은 그럴 수 있어요. 보통 서른 즈음에 이게 아닌 것 같아 객기를 부리잖아요. 3년 전에 처음 회사를 나왔을 때가 그랬어요. 그러다가 다른 회사를 들어갔는데 그 회사가 스타트업 같았어요.  


큰 회사를 다닐 때에는 큰 회사가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외국과 관련된 작은 기업을 가고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겉과 다른 점들이 있고 변수도 많았어요. 그래서 다니다가 나왔어요. 이게 인터뷰로 나가면 매력적일지 모르겠는데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자면 그랬어요.  


저에겐 첫 번째 퇴사와 두 번째 퇴사에 차이가 있었어요. 두 번째 때는 더 지지대가 있는 느낌이었고 주변에 이직하거나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제가 뭘 하든 사람들이 절 좋아해 줄 거란 걸 알아서 그게 컸어요.  


그러다 올해 들어 거의 1년째 일하는 중이고 여전히 고민은 있어요.


승윤님과 만났던 일요일 오후, 햇살 좋은 가을날이었다.


어떤 고민이에요? 업 자체에 대한 고민이었나요?


커리어 자체가 일관성이 있으니 계속 이 방면에서 제안이 오죠.(*현재 승윤님은 요식업계에서 구매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산업분야랑 상관없이 제 직무 자체는 재미있지만 제가 그 분야의 진짜 '덕후'여야지만, 정말 사랑해야지만 실력이 늘어요. 그 방면 사람들과도 많이 만나고 관련 교육도 개인적으로 다녀야 하고. 주니어일 때는 괜찮지만 이걸 더 사랑해야 해요.


확실히 요식업계가 힙한 느낌이지만 제가 이 일을 사랑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확실히 그 일에 대한 애착, 알고 싶은 관심 같은 게 좀 (저 자신과) 분리돼요. 그걸 추구하려는 것 같고.


그걸 추구한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예술 분야요. 그런데 잘하는 사람도 너무 많고 제 재능도 모르겠고. '소비로만 그쳐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취미로만 하자고 생각한 영역이었어요. 그런데 일을 계속하다 보니 외부에서 제가 하는 예술 관련된 작은 활동들이 제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일과 비슷해지는 거죠. 예술적인 건 노력하지 않아도 습득이 되는데 업무에 대한 건 공부로 느껴져요.


그래도 좋아하려고 노력은 한 것 같아요.   


맞아요. 원데이 클래스도 가고 그랬어요. 그 정도의 관심사면 괜찮은데 일은 전문가들과 해야 하니까요.   


심리적 지지대가 되어준 게 사람들이었던 거 같아요. 그 사람들은 어떻게 지지대가 돼주었어요? 그냥 친구가 아니라 승윤님이 좋아하는 걸 매개로 만난 사람들이죠?


네. 희곡을 읽고 모여서 낭독하는 독서모임을 했는데 제가 작품들을 선정했었고 멤버님들이 의견을 주시면 그 작품을 하기도 했어요. 멤버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들 희곡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독후감도 다 쓰고, 새벽 2시까지 놀고, 같이 연극 보고, 제가 아는 공간을 빌려서 낭독회도 하고.

 

그런 활동들에서 나는 이게 잘 맞는구나 싶었어요. 사랑받는 게 느껴지잖아요. 제가 하는 걸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구나.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만나서 공연고 보고 커리어 고민에 대해서도 걱정해주고. 인생 선배들인 언니들이 이야기도 많이 해주셔서 정서적인 면에서도 도움을 받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었어요.   


'잘 맞는구나'라고 했을 때는 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것인가요? 아님 희곡이라는 소재에 대한 건가요?   


둘 다예요. 일단 제가 좋아하는 주제니까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전문성을 갖게 돼요. 참고할 만한 자료도 소개하고 관련된 공연 소식을 전하고 같이 보자고도 하고. 사람들이 그걸 재미있어하고.  


저는 판을 까는 것뿐이고 만들어가는 건 멤버님들이잖아요. 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게 재미있었어요. 올 1월 모임 때 제가 희곡<시라노>를 첫 책으로 선정했어요. 로맨스물이고 흥겨워서 첫 모임에 하기 좋다고 생각했어요.


첫 낭독 때는 다들 수줍어하세요. 그러다 어떤 여자분은 자신의 목소리에 담긴 포스를 살려서 권위 있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게 찰떡이라 공작이나 대법관 같은 역할을 계속 맡게 되었어요. 그리고 본인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놀라워하고요.

독서모임 멤버들과 낭독 중인 승윤님

연기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거군요.   


네. <시라노> 극 중에 ‘록산’이라는 쟁취하는 성격의 캐릭터를 맡았던 여자분은 자신의 평소 스타일과 그 역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말해주셨어요.  


희곡의 매력은 극이라는 거예요. 그걸 낭독했을 때 자신의 정서가 표출되면서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하고 알게 되고. 한 명이 연기를 잘하면 모두가 열연을 하세요. 케미가 폭발해요. 그러다 더 하고 싶다고 해서 번개 낭독회도 하고. 그러다 보니 저도 재밌었어요.   


아까 원래 연기하고 싶었다고 했잖아요.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게 되었어요. 한국에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가 들어온 게 2001년 정도였어요. 90년대엔 대형 뮤지컬이 거의 없었죠.


그런데 초등학생이 그걸 보고 정말 새로운 충격을 받은 거예요. 이렇게 멋진 연출, 연기, 노래라니. 나도 연기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한국에 와서 초등학교 영어연극반에 들어가서 대회도 나가고, 성당에서도 연극하고. 원로배우가 하는 연극학교 캠프도 다녀왔어요. 중학교에서도 연극반을 했었고요.  


그러다 예술계 고등학교를 알아봤는데 집에서 인문계를 가서 대학교를 연극영화과로 가라고 하셔서 그냥 인문계를 갔어요. 고등학교에서도 연극반을 기웃거리다가 대학을 갈 때쯤 집에서 학부 간판은 영어로 하고 대학원을 가라고 하셨어요.


저는 잘 몰랐으니까 영문과를 갔어요. 영문과에서 배우는 것들이 미술, 철학, 음악 등 많은 예술 분야와 연관이 있으니 더 넓어지게 되었죠. 그중에서도 문학을 좋아해서 교수가 되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19세기 영문학을 배울 땐 소품을 다 준비해 가서 <제인 에어>로 1인극을 하기도 했죠.  


그러다 미국 교환학생 가서 액팅 수업을 듣고 러시아 강사분에게 피아노 배우고. 집에는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가서 예술을 판 거죠. 그런데 한국에 들어왔는데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턴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입사를 했어요.   


승윤님이 올해에 본 연극 중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 뽑은 것은 <엄마는 열여섯>, 한예종 졸업작품이라고.


연기를 놓지는 못했네요?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한동안 인문계가 너무 힘드니까 괜히 안 되는 자기 계발을 하면서 인문학에 대해, 저 스스로에 대해 부정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소설 안 읽고 실용서적만 읽고.  


그러다가 2013년도 즈음 퇴근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사서 집에 와서 다 읽고 나니까 다시 마음이 동하고 독서모임을 알아보게 되었어요.  

연기를 다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사실 얼마 안 되었어요.   


예술에 다시 관심을 가진 게 먼저였군요.   


지금은 없어진 북카페인데 그곳에서 출판사와 콜라보했던 이벤트에서 <시라노>를 낭독해서 상을 받았어요. 그런 재미를 조금씩 안고 가다가 2017년 1월에 희곡을 읽는 독서모임에 들어가면서 난리가 났어요. 계속 멤버로 있다가 올해엔 그 모임에서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제가 중학교 때 장래희망을 배우라고 썼고 관련해서 인터뷰하는 미션이 있어서 연극반 지도 선생님 인터뷰도 했었어요. 얼마 전에 그걸 보면서 나는 예술을 해야 하지 않을까....무대에 올라가기엔 이제 늦었고 경쟁력이나 여러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그냥 취미로 하자고 생각하면서 눌러왔지만 그게 이만큼 올라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승윤님의 인터뷰는 Part2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33

매거진의 이전글 Part2. 짱구와 이야기와 활발한 히키코모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