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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움 Dec 03. 2019

세밀하게 조각하는 사람 (2)

매직카펫 매거진 Vol.9  양영선 님 (2)

양영선 님의 인터뷰는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36




영선님의 활동에 있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탐구해온 영역이 있다면 어제 영선님 집에서 열었던 '일상부흥회'처럼 사람들에 대한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함께 했던 친구는 다를지 모르지만 저는 공간 연출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시작한 거였어요. 공간을 예쁘게 꾸미는 게 공간 연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거기에 사람이 있어야 시작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집중은 항상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람들이 모였을 때 어떤 게 좋았나요?


사람이 있으면서 그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이 좋아요. 사람들이 그 당시에 했던 이야기가 그 사람들 인생의 전부는 아니겠죠. 그때의 이야기겠지만 제 공간에서 이야기하면서 서로 통했을 때 그 분위기, 그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게 저만의 감각, 감정을 확장시키는 거라면 공간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건 제 현재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둘러싼 느슨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게 좋다고 했는데 잘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잘 만든다고 하면 그게 나중에 물질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든 안 가져오든 간에 조직화되고 형태와 가이드가 있어야 할 텐데 아직은 그렇게 타이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에요.

나중에 지금 하는 일을 안 하게 되었을 때 이쪽으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일이 되면 조직화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그 일과 지금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하나로 보진 않을 것 같아요. 동시에 가지고 가면서 다른 레벨로 할 것 같아요.


아직은 생활의 한 부분으로 보니까 더 즐겁게 하실 수 있는 것 같아요.


테스트의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방식 혹은 저런 방식으로 살면 재미있을까?' 하면서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을 찾고 싶은 것 같아요. 또 제가 어느 지역, 어떤 공간에 있는지에 따라 오는 사람들도 이야기도 달라지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살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는 것 같아요.  


친구와 함게 살던 시절 열었던 홈싸롱의 한 때.


친구 분과 살면서 홈싸롱을 열기 전에도 집에 사람들을 모으시는 편이었어요?


그전에는 혼자 살았는데 친구들을 자주 부르긴 했었어요. 친구랑 살면서 '남의집 프로젝트'를 통해 '남의집 쉐어하우스'라는 모임을 열었는데 그때 저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혼자 살면서 친구를 초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함께 살면서 얻는 다른 게 있다는 거였어요. 두 사람이 만드는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훨씬 다양하고 풍부하고 서로의 지인들이 양쪽으로 더 많아지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영선님이 무용하실 때 하우스 메이트 분이 몇 번 보러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두 분은 서로의 활동을 응원해주는 사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 일상부흥회 때도 두 분이 함께 모임을 준비하면서 쌓여온 시간이 보였고요.


서로 응원이라는 표현이 맞아요. 모든 게 100% 맞지는 않지만 교집합이 있고 그 교집합을 같이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펜화도 친구의 권유로 협회 워크샵을 같이 갔다가 시작했어요. 같이 하면서 친구의 지인도 알게 되었고 친구로부터 더 배울 수 있었어요. 친구도 저희 무용 선생님이랑 친해요.

어제 일상부흥회도 혼자서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럼 부담이 더 크고 둘이 하면 호스트지만 일부 게스트의 느낌도 있어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흔한 수사이긴 하지만 1+1이 2가 아니라 4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숫자가 아니라 전혀 다른 게 나왔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어느 뉴스레터에 실린 '다양한 분야에서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인용하신 SNS 게시물을 봤어요. 지금의 본인에게는 어떤 정체성이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분야에서 정체성을 찾는다는 표현 자체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 스스로를 정의를 내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러가지 분야를 다 해보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저런 사람이야 하고 정의를 내리다보면 결국 그 모든 게 내가 되겠죠.


그럼 좋아하는 것 몇 개만 말해주세요. 물건이든 행동이든 뭐든요.


저는 지적이고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걸 좋아해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무용을 하는 각각의 활동들이 저에겐 다르지 않아요.


그럼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영선님이 만약에 하지 않고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A를 안 하면 B를 했을 것 같고 그 A, B 모두 결국엔 제가 좋아하는 범주 안에 있었을 것 같아요. 모르죠. 아예 삶의 방식과 집중하는게 달라진다면 완전히 다른 내가 되었겠지만 지금 내가 아는 나로선는 비슷했을 것 같아요.


인터뷰 전날 영선님의 집에서 있었던 '일상부흥회'. 자신의 경험이나 관심사를 소개하는 '일상재미자랑' 코너가 있었다. 영선님은 <풍정:각> 무용공연의 경험을 소개해주었다

영선님에게 일하고 놀이는 어떤 관계인가요?


회사 1,2년차 때 제일 많이 고민했던 게 그거였던 것 같아요. 놀이가 만약 하고 싶은 거라면 일과 이것들을 어떻게 공존시키며 꾸려갈 수 있을까에 대해.

그때는 내가 생각하고 만들고 싶은 나에 있어 일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감성적인 부분을 키우고 싶은데 너무 이성적인 접근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처음에 회사에서 일할 때 제가 원래 일하던 방식과는 달라서 좀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구분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균형감을 찾아서 하고 있고 일도 저의 정체성을 만들어주었어요.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나를 만들기 위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예술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으나 예술엔 시대감이 필요하고 트렌드나 기술의 진화방향, 이런 것들과 같이 갈 수 밖에 없다고 봐요. 그런 부분에서 새로운 지식, 현실감을 유지할 수 있게 회사가 도움을 줘요. 사람들과 같이 어떻게 일을 진행하고 꾸리고 협의해야하는지도 배울 수 있고요.


해외 출장 다녀오시면서 회사의 관점과 나의 관점을 분리해서 보려고 했다는 글을 봤어요. 둘은 어떻게 다른가요?


나의 관점은 내가 타겟이고 회사의 타겟은 따로 있죠. 예를 들어 이 공간을 어떻게 구성했을지, 어떻게 기획했을지는 회사의 관점에서 인사이트를 찾는 거라면 저는 거기에 전시된 아름다운 물건을 보는 거죠. 그 중 하나만 보면 그 안에 있는 아이템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하나로 보는 건데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는 거죠. 그렇게 연습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일과 놀이가 균형점을 찾았어요. 일만 하는 느낌이었다면 힘들었을 거에요.


10년 후의 영선님은 어떤 사람일 것 같아요?


그게 저의 요즘 고민이기 때문에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지금 제 안은 변곡점 같은 시점이라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한다면 아직 10년 후의 목표를 정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10년 후에도 이런 느낌으로, 이렇게 나를 계속 쌓아가고 만들어가는 모습이고 싶어요. 이건 놓지 않고 계속 하고 싶어요. 이걸 다 놓아버리면 제가 여태까지 살아온 게 아까울 것 같아요.

그리고 일과 놀이가 어떻게 합쳐질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결과물 하나는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야 저도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합쳐질지 궁금하네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거에요. 제가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데 공장이랑도 일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농담 삼아 내가 회사 나가기 전에 이 회사에 다니면서 쌓아온 결과물로 공장에 설치미술 로봇을 만들어서 돌아다니게 할 거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공장사람들도, 나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눈에 띄게 공장 입구에 둬주세요.


제가 만드는 로봇은 작을 거라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계속 돌아다니게 해야죠. 하하.




'나에게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어느 뉴스레터에서 보고 일주일 동안 출근길 내내 생각했다는 영선님. 백스페이스 버튼을 눌러 문장을 지웠다가 쓰기를 반복하듯 영선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인터뷰 내내 말을 고르고 골랐다. 이 모습이 내게 선명히 남았더랬다.


계속 변해가는 게 사람이라면 아마도 한 사람의 완성은 죽음의 순간에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동안 축적해온 경험과 태도와 생각에 마침표가 찍히는 시간이니까.

끊임없이 시도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탐구하는 영선님은 10년 후에도 계속 그 활동을 이어가고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자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이 사람의 완성본은 아마도 정교하게 세공되어 옷의 주름까지도 선명하게 보일 그런 조각상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상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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