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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움 Dec 11. 2019

Part1. 땅고, 몸으로 쓰는 시

매직카펫 매거진 Vol10. 사마리아 님 (1)


매직카펫 매거진이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회사원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열 번째 인터뷰이는 일단 직업부터 조금 특별하다. 사마리아 님은 점성술(astrology)과 사주명리를 연구하여 상담, 강의하고 있다. 하지만 밤이면 그는 탱고(이하 원 발음대로 ‘땅고’로 표기) 디제이가 되어 밀롱가(땅고를 추는 장소 혹은 이벤트)의 한 켠에 자리 잡는다.  


지난 여름 사마리아 님의 별자리 상담소를 찾아갔을 때는 매직카펫 매거진의 두 번째 인터뷰를 발행했을 무렵이었다. 상담이 끝나고 인터뷰를 부탁하니 사마리아 님은 흔쾌히 받아주었고 그때부터 사마리아 님은 나의 열 번째 인터뷰이로 정해져 있었다. 여름의 약속을 잊지 않고 시간을 내어준 사마리아 님과 다시 만난 날은 12월, 갑자기 쌀쌀해진 날이었다. 별자리 상담소가 아닌 곳에서 마주 앉기는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사마리아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동양의 사주명리학과 서양의 별자리 점성술을 결합한 별자리 명리 이론을 만들어서 강의와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역학인이라고 하고 점쟁이라고 해도 됩니다.  


제가 사마리아 님의 SNS를 보면서 늘 묻고 싶었던 건 땅고에 대한 거였어요. 제가 땅고를 잘 모름에도 그 춤과 사마리아 님이 참 잘 어울려 보였거든요. 어떻게 시작했어요?


저는 역학 혹은 운명론을 대단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생활 역학, 통속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책으로 공부한 걸 반드시 임상에서 실험해봐야 하기 때문에 탱고 이전에도 다양한 취미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탱고는 단순히 춤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 포옹을 한 상태(아브라소)에서 호흡을 나누면서 움직이는 하나의 무예, 춤이라기보다는 춤의 도(무도). 너무나 밀접한 상태로 함께 춤을 추기 때문에 100 명하고 추면 그 100명 모두 느낌이 달라서 사람을 관찰하는 데는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라틴댄스 하시는 분들이 땅고를 가장 마지막에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들은  있어요.


우리가 쾌락이나 기쁨에는 그렇게 중독되지 않아요. 더 즐거운 걸 하면  되기 때문에. 하지만 땅고는 춤 자체와 음악이 들려주는 우수, 땅고 밖엔 할 수 없게 되는 슬픔을 담고 있어서 중독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즐기는 춤이 아니고 삶의 고통을 잊으러 온 사람들끼리 공동체적 생활을 하지 않으면 이 세계에 들어올 수가 없어요. 땅고를 하는 사람들은 성공, 발전의 덧없음을 체감한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땅고의 시간은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죠. 뒤풀이에 가서도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동작 하나, 이 음악에 왜 이 동작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그 사회적 배경과 철학에 대해 토론하며 밤을 새워요.


동작에 대한 토론이요?


이 춤이 원래 노동자들의 춤이에요. 마룻바닥 위에서 즐기기 위해 시작된 춤이 아니라 생활이 너무 답답하다 보니 시작된 춤. 시멘트 바닥 위에 벽돌 여섯 장 두고 그 좁은 공간에서 춤을 추다 보니 안고 출 수밖에 없고, 상대방과 몸으로 대화를 하다 보니 회전이 나오고, 좀 더 재미있게 걸으려고 하다 보니 마름모 꼴이나 포도 모양으로 걷기도 하고.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서로가 동작을 이어가는 춤이라 걷는 춤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신체의 각도가 서로에게 편안함을 주면서도 어떻게 하면 화려한 동작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신체의 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죠.   


땅고는 기본 스텝을 배우고 나면 각자 알아서 춘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상대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해석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죠. 같은 곡도 각자 다르게 춰요. 그러니까 질리지도 않고 계속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 음악 자체도 한국 전통 음악과 비슷한 멜로디 라인, 정서를 갖고 있어서 한국사람들이 음악 해석을 잘하는 경향이 있어요. 서울의 밀롱가(땅고를 추는 장소 혹은 이벤트)가 세계적으로 수준이 높아요.  


그런 것 같아요. 사전 조사하면서 서울이 아시아의 떠오르는 땅고 힙플레이스라는 기사도 봤어요.


땅고는 전문가 과정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고 체력이 허락하면 80대까지도 출 수 있어요. 그리고 한국 여성들이 30,40대 넘어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출 수 있다는 경험은 한국 문화에선 드문 경험이죠. 여성분들이 초급 때는 평상복을 입고 있다가 밀롱가에 와서 드레스로 갈아입는데 3~4년 차 넘어가면 너무 반짝거리지 않는 땅고 드레스를 사서 회사에 입고 가기도 해요. 땅고 하는 여성들 중엔 60대인데 40대로 보이는 분들도 많고 참 좋은 취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땅고 하시는 분들 연령이 다양한가 봐요.


노년을 준비하는 게 옛날과 달라졌어요. 돈을 모아서 노년을 준비한다고도 하지만 인생의 어느 부분을 먹고사는 것과 관련 없는 잉여적인 활동으로 소모하는 게 역설적이지만 마음의 부자가 되고 건강해지는 방법이기도 해요. 땅고를 하는 분들이 그래요. 꼭 열심히 하는 것만이 성공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여유가 생기고 집중도 잘 된다고. 항상 시선을 분산시키는 게 사람의 성장에 좋은 원동력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죠.  


땅고를 추고 있는 사마리아 님

사마리아 님의 사진들을 보다가 여성들끼리 땅고 하는 걸 봤어요. 보통 성별에 따라 팔로어와 리더가 나뉜다고 알고 있었는데 요즘엔 리딩 하는 여성분들도 많나 봐요.


아주 많아졌죠. 그건 성역할에 대한 건 아니고 원래 밀롱가에는 '까베세오'라는 게 있어요. 자기가 원하는 음악이 나왔을 때 남녀 상관없이 내가 함께 추고 싶은 상대에게 눈빛을 보내서 고개를 까닥거리는 거예요. 부킹과는 달라요. 그런데 매일 밤 성비가 5:5가 될 수가 없고 남자가 8일 때도 여자가 8일 때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별 상관없이 서로 리드, 팔로어를 배워서 추기도 해요.  

이 춤이 재미있는 이유는 둘이서 추는 춤인데 결국 마지막 질문은 '나는 상대에게 어떤 사람인가’라는 거죠. 그런 철학적인 면이 있어요. 아무리 리드를 잘해도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지 끊임없는 궁금증이 생기거든요. 하지만 알 수 없으니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하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에 상대의 것을 배우는 것 같아요. 서로의 입장을 그렇게 밖엔 알 수가 없으니까요.


파트너 댄스라 그런지 확실히 그런 소통이 중요한가 봐요.


밀롱가에선 춤추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춤 못 추는 사람들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요. 보통은 밤에 이야기를 나누면 술을 마시거나 특정 공간을 가죠. 하지만 밀롱가에선 상대방의 배경에 상관없이 오직 그 춤 하나만으로 밤새도록 이야기해요. 나오시던 분이 갑자기 안 나오면 서로 무언으로 슬퍼하기도 하죠. 무슨 일이 있으신가 하고. 그런데 여긴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연락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면서 춤을 추기도 하고 그래요.


확실히 공동체 같은 부분이 있네요.


맞아요. 자기와 마음이 맞는 곳을 가기도 하고 자기가 배운 선생님이 있는 곳, 파트너가 생긴 분은 파트너와 재미있게 추기 위한 곳으로 가기도 하고. 주로 가는 데가 정해져 있어서 서로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올까 기대하기도 하고 안 오면 걱정하고.


디제이는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그것도 성격 때문에 그래요. 내 직업적 성격상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담자와 거리를 둬야 해요. 동화되면 상담이 잘 안되거든요. 땅고에서도 내가 뒤로 좀 나와요. 땅고 디제이는 클럽 디제이랑 달라서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아있어요. 그곳에서 밀롱가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즉흥적으로 음악을 틀어 섬세하게 이끌어가죠. 어떻게 보면 밀롱가를 운영한다고 볼 수 있고, 마에스트로라고도 해요. 그래서 땅고에서는 디제이에 대한 존경심이 많아요.  


디제이의 조건 같은 게 있나요?


디제이는 이때까지 말한 모든 걸 겪은 사람이어야 해요. 초보 디제이들은 음악을 잘 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밀롱가 전체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 그 분위기를 이끌 수 있죠.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밀롱가의 문을 열고 오는지, 오늘 뉴스와 날씨, 사람들의 전반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센스가 있어야 하는데 밀롱가 생활을 오래 한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밤을 투자해서 온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스토리 창작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잘해요.  


디제잉을 하고 나서 마음에 안 들었던 날은 집에 가는 길에 울기도 했다고 쓰신 글을 봤어요.


땅고는 이상하게 음악이 사람을 굉장히 예민하게 만들어요. 아주 작은 실수에도 상대방에게 치명적으로 무게를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예민해져서 농담 삼아 결국 마지막엔 다 디제이 때문이라고도 해요. 실제로 디제잉이 너무 어렵고 섬세해야 해서 만약 실패하면 춤으로 실패한 것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고 미안한 생각이 들고. 노트북이 멎는다던지 내가 잘못 틀면 어쩌지 하는 꿈을 꾸기도 하죠. 디제이들은 그런 공포가 있어요. 그럼에도 디제이의 매력이 커서 많이 하려고 하죠.  


디제이 활동을 서울만이 아니라 지방, 해외로도 가시는 것 같더라고요.


땅고 또라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능력이 있어야 해요. 우리가 어떤 취미로 그렇게 지방, 해외 사람들을 만나겠어요. 춤이라는 건 하나의 언어잖아요. 언어가 안 통해도 춤으로써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죠. 그리고 그 중심에는 디제이가 있어요. 좋은 디제이가 있을 때는 수십 명이 해외로 따라가기도 해요.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디제이 초청해서 DDP에서 제법 큰 규모로 여는 행사가 있는 걸 봤어요.


직장이 따로 있는 분들이 그렇게 오거나이저(밀롱가를 여는 개인 혹은 집단으로 디제이를 섭외하는 등 밀롱가의 분위기를 위한 환경 전반을 기획)로서 자기의 모든 걸 털어서 행사를 할 정도로 땅고에 대한 열정이 있어요. 그런 오거나이저가 있으니 춤추는 사람들도 그냥 즐기고 집에 가야지 보다는 가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단 공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땅고인들은 일반인 친구가 적어지고 대화가 안 된다는 단점도 있죠.


그래서 사마리아님 팟캐스트(사마리아의 특별한 별자리 방송국)에도 땅고 같이 하시는 분들이 많이 나오나 봐요.  


제가 친구가 없어요. 땅고인들에게 별자리를 가르쳐서 할 수밖에 없죠. 하하


사마리아 님이 디제이를 맡았던 밀롱가의 포스터


한 발 물러나서 디제이를 하다 보면 어떤 것들이 보이나요?


같이 춤을 췄을 때는 따뜻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디제이석에서 까베세오를 보면 정말 맹렬하게 상대를 욕망하는 사람이 있고, 나하고 춤추고 들어갈 때 즐거운 표정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면도 있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있는 사람들의 손, 고개, 눈빛도 보면서 새로운 면들을 발견하죠. 또 그런 걸 봐야 하는 게 디제이이기도 하고요.  


디제잉을 하러 가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해요?


디제이마다 다 달라요. 좋은 디제이가 되기 위해선 밀롱가를 많이 가야 해요. 다른 디제이들은 어떻게 음악을 배치하는지 보면서 영감도 받고 유행도 파악하고. 새 앨범들도 들어보고 앨범에서 소외된 곡들도 하나씩 넣고. 저는 유튜브에 올라오는 마스터들의 공연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내가 출 때는 평범했던 곡이 마스터가 추니 매력 있는 곡이 되기도 하고.

딴다(3~4곡의 땅고 곡의 묶음, 곡당 2~3분 정도의 길이) 사이 꼬르띠나(딴다와 딴다 사이에 트는 짧은 음악)를 트는데 그게 디제이의 개성이거든요. 팝이나 가요를 틀기도 하는데 저는 클럽음악을 좋아해서 그런 곡들을 수집해서 넣기도 하고. 저는 매일 집에서 이런 준비들을 해요.  


정말 땅고 또라이가 맞네요.


하하. 그렇죠. 다른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어요. 필요도 없고.




사마리아님의 인터뷰는 'Part2. 가속도의 시대, 고전적 비법으로 살기'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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