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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해리 Aug 05. 2023

14. 여름 저녁 산책? 살기 위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불순물을 걷어내고 마음에 남은 순수한 핵심 가치, 사람

넓은 등이 보입니다. 동네 야산처럼 커 보이는 등짝. 아버지는 허공에 대고 말씀하셨습니다. ’때 좀 밀어봐라.‘ 태평양처럼 넓고 모든 어리광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랑이 느껴지는 몸이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을 100개쯤 연이어 붙여보면 가려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듬직한 모습.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번호표를 뽑고 진단 차례를 기다립니다. 야산 2개가 나란히 앉아서 기다립니다. 하나는 ‘어느덧’ 야산이 되어버렸고, 나머지 하나는 ‘한때는’ 야산이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제가 동네 야산처럼 커지더니, 야산이었던 아버지는 (산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작아졌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호의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지금이 소중한 것이겠죠?


아버지요? 8월 여름 토요일 무더위를 피해, 방금 시원한 음료수와 김밥을 드셨습니다. 시원한 곳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병원에서 잠시나마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아버지한테만은 들키고 싶지 않아서 더 그런 걸까?) 다시 한번,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 얘기를 해볼까 싶습니다.


돈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마터면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오늘 말하려는 것조차 당연하지 않다는 거예요.


바로 걷기입니다. 의아해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아요. 걷지를 못한다고?? 아뇨 아뇨. 정확히는 걷기 감각을 잃어버렸다 해야 할까요? 제 이야기이고 의학적인 지식은 전혀 없으니 편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나치게 과한 긴장을 오랫동안 하다가 갑자기 풀어졌을 때, 몸에 나타나는 신호를 알아챈다고 할까요? 분명히 그 신호는 날벼락처럼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건 아니겠죠. 서서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을 텐데 제가 늘 늦게 알아차리게 되는 거예요.


’돈‘ 하나만 바라보고 ‘일’에만 지독하게 매달렸습니다. 이대로 일하다가 죽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다고 생명의 위협과 존재의 무상을 느꼈던 밤 걸으려고 했습니다. 근데 걷는다는 걸 잊어버렸어요. 어떻게 걸었더라? 왼발이 먼저였나? 오른발이 먼저였나? 부터 상체를 먼저 움직여야 하나? 어찌어찌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는데요, 발걸음이 그렇게 불안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마치 의식은 걷는 것을 아는데, 몸은 갓난아기가 이제 막 걸음을 배운다고 비유할까요?


‘내가 운동량이 부족했지’ 이렇게 치부하고 넘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요. 다시 한번 걷기 자체가 어설프고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어요. 이러니까 사업에 대한 걱정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언젠가 영영 걷지 못하는 날도 오는 거 아니야?!’


그다음에는 불면증으로 이어지더군요. 어디서 봤는데 신체 활동량이 너무 줄어들면 숙면을 못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하느라 밤을 새우는 날들도 많지만, 운 좋게 좋은 성과 덕분에 성공의 여유를 즐긴 날 역시, 잠을 자지 못한다면 그게 여러 날에 걸쳐서 일어났다면 불면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면증은 하루이틀 겪은 게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려니까. 이번에는 양손에 이상징후가 표착이 되더군요. 양손등에 두드러기가 올라오더니 영역을 점점 확장하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허 참! 나 참!


진짜 안 되겠다. 잠도 못 자고, 만성피로에, 입맛도 식욕도 없고 (최근 들어 식사시간을 아예 잊어버린 적도 있었어요), 몸에는 알 수 없는 두드러기처럼 올라오지, 마치 물 없는 우물 밑바닥에서 물을 길어 올리려고 아등바등 끙끙 노력하는 모습처럼 제가 나를 봐도 한심하더라고요.


그리고 당연하지 않구나. 걷기 시작한 아기부터 지금까지 걷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당연하지 않은 건데 당연하게 여겼구나. 아니 어느 누가 ‘1분 뒤 내가 걷지 못한다’ ‘그러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하겠어요? 진짜 걷기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을 땐 정말 무섭더라고요. 두 발 모두 멀쩡히 잘 있지만 내 발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습니다.


요즘 날씨가 더워서 해가 진 이후 또는 자기 전에 30분이라도 걸으려고 노력하는데요. 이 걷기라는 것은 저에게 중요한 루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걷기와는 의미가 다릅니다. 물론 나 자신을 위함도 있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어느 날 ‘갑자기’ 야산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옆으로 파워워킹을 하시는 주민분들이 열심히 팔을 위아래로 힘차게 흔들며 지나가지만, 제가 걷는 시간에 함께 걷는 분들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어느 날 진짜 걷지 못할까 봐’ ‘야산이 되어서 어느 나무에게 그늘, 양분, 햇빛을 나누어주고 싶어서’ 걷고 있는 사실을 말이죠.


동시에 저는 걸으면서 그분들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바로 ‘살아냄’이라는 자세를 말이죠. 버틴다?! 이런 표현보다는 ‘알면서도 자신의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고 계시구나‘ 이렇게 적고 싶습니다.


월 1000만 원, 빨주노초파남보 과시용 스포츠카, 자신은 중요하지만 남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무의식.

그것보다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질문을 매일 매 순간 자신에게 던지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피할 수 없다면 공존하고자 하는 태도를 어른으로서 익힌 사람.


저녁이지만 여름 열대야 무더위에서 이열치열 걷는 어른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요? 직장에서는 무례하고 거친 언행을 일삼는 사람을 만나셨을 수 있고, 진상 고객을 만나서 ‘오늘 출근 전 간이며 쓸개며 다 내려놓고 나와서 다행이었다‘ 생각하실 수 있고, 출퇴근길 모 영상에서 단기간에 월 1000만 원 버는 방법을 보셨지만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유혹에 빠지지 않고 ’차곡차곡‘ ’스텝바이 스텝‘ 의미를 제대로 실천하며 조급한 마음의 뜨거움을 ’시원하다‘라는 표현과 함께 소화시켰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참 길 위에서 많이 배웁니다. 그 사이에 양팔에서 보낸 신호는 차츰 가라앉고 있고, 잠은 그래도 조금이라도 자기 시작했으며, 매일 어제보다 조금씩 길게 걷게 되었습니다.


2022년 8월 돌아가신 이나모리 가즈오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회복과 동시에, 빌 게이츠의 생각주간처럼 저 역시 그 비슷한 것을 하고 있는 요즘, 마음속에 다시 한번 새기고 있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잃으니까 그 소박함의 위대함이 조금씩 체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에 대한 욕망과 집착으로 검게 그을린 가슴에서 불순물을 긁어내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그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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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 :

“나의 경영 철학은 결코 복잡하거나 어려운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해 ’올바른 것을 올바른 그대로 추구해나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거짓말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와 같은 소박한 가르침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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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음속 불순물을 비우고, 또 비웠습니다.

그리고 한 글자만 남았습니다.


‘사람’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 자신이라는 사람 포함.

’사람‘이라는 단어를 얻어냈습니다.


명치 있는 부위에 남은 단어, 사람.

불순물을 걷어내고 마음에 남은 순수한 핵심 가치, 사람.

오늘도 저녁에 나가서 좀 걸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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