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려는 습관을 조금 지워보려 한다. 습관처럼 멀리 봐야지, 더 깊고 너른 것들을 생각해야지, 하는 마음들이 가끔씩은 오히려 내 손 닿는 곳의 것들을 방치하게도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하루의 생활, 말하자면 빨래와 설거지 같은 것들, 글을 쓰고 글을 읽으며 종종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드는 일들이 내 두 발을 단단히 서게 한다는 것들도 조금은 알게 되었고.
어제는 청사과 한 알을 깎아 먹었고, 여름 햇빛에 빨래를 널었고, 점심과 저녁 내내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고마웠던 것은 그 일들 속에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산도 없었던 것. 그리고 그 사람들도 내게 아무런 계산이 없었던 것.
인맥이라든지 관계 유지라느니 하는 속내가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깊고 가깝다. 말하자면 집 주변에 펼쳐진 짙고 푸른 숲 같은 느낌이다. 따가운 햇빛에 잔뜩 타 버린 피부도, 더위에 잔뜩 지친 마음도 한결 쉬어갈 수 있는 곳. 사람이라기보단 하나의 장소 같은 사람들.
넓고 깊은 상림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무들 사이 그늘진 곳 작은 약수터 정도는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숲 같은 사람, 바다나 윤슬 어린 연못 같은 사람들을 만나 가며 서로가 서로의 장소가 되어주는 일도 좋을 것 같다. 멀고 먼 미래의 관계보다는, 말하자면 밭을 가는 소의 모습처럼, 겨우 눈 닿고 손 닿는 곳의 생활과 사람들을 챙기는 삶. 그러고 보니 어제 만난 누군가의 눈이 꼭 소 같기도 했었는데. 그런 아무런, 아무렇지도 않은 생각.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