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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Sep 04. 2023

겨울의 기억

아무에게라도 안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왜 모를까.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은 외로움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외로움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찔린 듯 반응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눈이 오는 날이었다, 그날도.
식탁 옆으로 네모난 창이 있던 식당에 우리는 마주 앉아있었다. 컵에 담긴 뜨거운 물을 홀짝이고, 며칠째 펑펑 내리는 창밖의 눈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식당은 유난히 조용했고, 그것은 나와 당신이 앉아 있던 식탁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번씩 몰래 당신의 표정을 훔쳐보던 나와는 달리 당신은 물컵에 오르는 김을 가만히 내려보고만 있었다. 고요하게, 어쩌면 다 말하지 못한 말들을 되뇌듯이. 평소처럼 바보 같은 농담을 하며 웃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는 당신의 침묵을 나도 가만히 두고 싶었다. 그런 고요는 누구에게라도 꼭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당신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마 꾹꾹 누르고 누른 진심이었을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는 말. 포근하고 싶었던 거라는 말. 아마 무심코 나를 껴안았던 그 실수마저도 누르고 누르던 마음이 결국 터져 나온 결과일 테고. 누구라서, 라기보단 그저 껴안을 온기가 필요했던 거다. 원래도 자주 힘들고, 혼자 버티고 무너지길 반복하던 당신이었으니까.

 나는 조용히 창밖을 보기만 했다. 그러는 편이 나을 것만 같았다. 눈은 조용하게 내렸고, 아주 자그마한 바람이 불어 내리는 눈송이들을 허공에 잠시 흩날리게 했다. 막 잠에 빠지려 하는 눈꺼풀처럼.

 당신을 좋아했었다. 항상 맑았지만 종종 아주 연하고 흐려지는 모습을 좋아했다. 그럴 때면 속으로 깊이 생각하던 예쁜 이야기들을 꺼내 알려주던 일들도 좋았다. 좋아했었다. 꽤나 오랫동안.
 그래서 당신이 이토록 어렵고 당황스러워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신도 그 사실을 알았었으니까.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일, 그저 잠깐씩 앓는 어린 시절의 치기 정도로 생각하기로 한 일이지만, 아마 지금 당신의 미안함에는 그런 마음들도 분명 있을 터였다. 자신에게 거절당한 사람을 대뜸 껴안았으니, 다정하고 섬세한 당신에게는 아마 당분간에도 마음의 짐으로 남게 될까.

 연인이나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온기가, 그저 사람의 따스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의 사람은 아주 연약한 존재가 되고, 누군가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마음으로 느리고 약한 걸음을 걷는다. 닿을 수 있는 거리의 누구에게라도, 눈송이가 땅으로 떨어지는 아주 짧은 순간만이라도 작은 위로가 찾아오길 바라며.
 당신에게 나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마침 손 닿는 거리에 찾아온, 최소한 닿아도 되고 실수로라도 한 번쯤 온기를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날 하지 못한 말들을 조금이나마 풀어두려 한다. 기록이라는 핑계로, 누구라도 비슷한 마음들을 안고 살 거라는 편견으로.
 내가 나누어 준 자그마한 온기가 그 마음에 더해졌길, 도움이 되었기만을 내내 바랐다. 미안함에 마음이 상하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아주 잠시라도 포근해지고 싶은,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마음속 깊은 곳에 그런 외로움을 안고 사니까. 나는 허영이나 허울들로 채울 수 없는 그런 마음들을 좋아한다. 솔직하지 않으면 털어놓을 수 없고, 용기를 내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상해버리고야 마는 마음들.
 나는, 당신이 그 마음을 내내 안고 살았으면 한다. 그래서 다가오는 위로들과 따듯한 마음들을 더 예민하게, 그래서 더 자주 느끼고 만끽했으면 한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그런 온기를 찾아 나서도 좋겠다. 세상에는 어딘가에서 내밀어주는 다정한 손들이, 아직은 꽤나 자주 있으니까.
 그런 손끝 같은 마음으로 당신의 따스함을 기도한다. 산책을 하다 맞는 가을의 포근한 볕 같은 것들이 자주 있기를, 같은 모양의 따듯함으로 당신을 안아주는 마음들도 정말 많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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