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창고
아침의 고요를 깨우는 벽시계의 소리.
초침이 조용히, 그러나 쉬지 않고 시간을 긋는다.
우리는 그 소리를 배경음처럼 두고 살아간다.
눈으로는 보기 어렵고, 귀로도 잘 들리지 않지만
그 움직임은 매 순간 우리를 앞질러 나아간다.
시계에는 세 개의 침이 있다.
시침, 분침, 초침.
세 개의 침은 하나의 원 위를 달리지만,
서로 다른 속도와 목적, 리듬을 품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삶 역시 이 세 개의 침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시침은 느리다. 그래서 무겁다.
하루에 단 열두 번만 원을 돌뿐이지만
그 움직임엔 하루의 무게, 인생의 밀도가 녹아 있다.
시침은 어릴 땐 답답하고 지루한 존재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느림이 가진 힘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흘러가는 계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시침이 주는 깨달음을 맞닥뜨린다.
“진짜 중요한 것은 늘 천천히 움직인다.”
시침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분침은 그 사이를 살아가는 자다.
초침보다는 느리지만, 시침보다는 빠르다.
분침은 우리의 일상이다.
출근 시간, 약속 시간, 마감 시간, 식사 시간.
우리는 늘 분침에 시선을 고정하며
조급해하고, 다그치고, 늦었다고 자책한다.
그러나 결국 분침조차도
시침을 향해 나아가는 길목일 뿐이다.
우리가 집착하는 그분마다의 분주함도
결국은 하나의 인생을 만드는 조각들이다.
초침은 가장 예민하고, 가장 빠르다.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또렷하고,
귀 기울이면 똑딱 소리를 낼 만큼 생생하다.
초침은 감정이다.
불쑥 찾아온 슬픔, 벅찬 기쁨,
떨림, 망설임, 순간의 후회.
우리는 한 사람의 표정, 한 마디의 말,
한 번의 눈빛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초침은 그렇게 찰나를 운명으로 만든다.
이 세 개의 침은 함께 움직인다.
초침이 쌓이면 분이 되고,
분침이 쌓이면 시간이 된다.
감정이 모여 일상이 되고,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
시간이란 본래 이렇게 얽혀 있는 것이다.
분리된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철학자들은 말한다.
“모든 것은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초침이 멈추면 시계는 죽는다.
분침이 서면 하루는 흐르지 않는다.
시침이 없으면 시간의 의미는 사라진다.
우리는 세 침을 모두 안고 살아가는 시계 같은 존재다. 빠른 감정, 느린 생의 무게,
그리고 그 사이를 살아내는 무수한 날들.
그래서 나는 종종 시계를 본다.
시간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기 위해서.
지금 나는 어느 침의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초침처럼 숨 가쁘게,
분침처럼 버겁게, 혹은 시침처럼 묵묵하게.
그리고 언젠가, 세 침이 모두 멈추는 날이 오면,
그 시계가 걸어온 흔적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을까.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중요한 것은, 그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인생을 완성한다는 것.
시침과 분침과 초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