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발령은 공무원인 남편이 예전에,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얼마 안 있어서 정릉에서 세 식구 울며 지낼 때 ‘우리 그러지 말고 다른 데 가서 살아볼까? 꼭 여기서만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없는 거잖아’ 하고 푸념하듯 던진 말에 ‘그래 어디든 여기보단 낫겠지’ 하고 넣었던 발령 신청인데 그게 지금에야 수년이 지나 순번이 돌아온 것이다. 전국구에서 왜 제주도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당시에 큰 고민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선택했기에 제주도가 된 것 같다. (설마 진짜 가겠어…? 하는 마음도 한몫했겠다.)
그렇게 나의 들썩이던 궁둥이와 다시 주저앉으려고 한 궁둥이는 몇 번의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가 ‘떠나보자!’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떠나보는 것이야말로 정착과 안정만을 목표로 삼던 지난 20여 년간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었고, 그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 아무래도 이상한, 통지서와 고지서를 향한 지금의 하루를 바로잡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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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현 남편이자 구남친과 배낭 하나 들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한 달간 동남아시아 3개국을 돌아보자 하고 시작한 여행인데 목표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고 돈도 넉넉지 않은 상태에서 떠난 여행이었다. 주머니 얇은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하루에 만 원정도 하는 숙소를 골라 자면서 흘러 다녔다. 매일 우리의 하루는 이 세 가지 질문으로 돌아갔다.
‘오늘 뭐 먹지?’
‘오늘 뭐 하지?’
‘오늘 어디서 자지?’
처음엔 이 어린애 같은 질문들을 다 큰 성인 둘이서 머리 맞대고 세상 진지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우스워서 킥킥거리곤 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이 어린애 같은 질문들을 우리 둘 다 20년이 넘게 살면서 스스로에게 해본 적 없다는 것이었다. 이 질문의 답을 찾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하루 쫄쫄 굶게 되거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이건 더 이상 우스운 질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해결하고 안전한 곳에서 잠을 잘 수 있는 날은 둘 다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먹이고 돌보고 재웠다는 사실은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마음 한 부분을 꼭꼭 다져주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처음 입사했던 회사에서 퇴사 후 이런저런 풍파에 휘청이던 때였고, 남편은 마음먹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전이었다. 둘 다 사회에서의 내 앞가림을 위해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던 때였는데, 분명 우리 인생에서는 그게 가장 큰, 그리고 전부인 줄 알았던 시기였는데, 떠나보니 나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회사에 취업하고 싶은지의 고민 보다도 앞서서 하루 의식주, 그러니까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에서 살 것인지 좀 더 근본적인 삶에 가까운 고민들을 먼저 했어야만 했다.
내가 겪어온 사회라는 곳은 구성원의 단계적 성장이 아닌 빠른 성장을 원하는 듯했다. 나이만 채운 성장. 마치 이제 막 꽃을 피운 식물에게 영양제나 촉진제 등을 마구 투여해서 얼른 큰 열매가 매달리게 하는 것 마냥 빨리빨리 자라 나이가 차면 곧바로 시스템 안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내게끔 했다. 그래서 나에 대한 고민이나 삶에 대한 고민은 고3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몰래 했던 게 전부인 나였다.
물론 사회의 시스템이란 것은 내 부모가 나에게 그러했듯 어느 정도 성장의 기반을 닦아놓은 곳이라는 고마움의 측면도 알고 있다. 사회가 발전한 만큼 다수가 반복해 와 시스템으로 잡힌 것은 효율적으로 넘어가게끔 해주어 모두의 성장을 상향평준화를 시켜준 것도 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쓴 것처럼 직접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는 성향의 사람으로, 흔히 말해 안 해도 될 고생 같은 퀘스트도 해봐야 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첫 번째 단계의 퀘스트도 깨지 못한 상태에서 두 번째 퀘스트에 진입해 허덕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의식주의 고민은 생각보다 넓고 깊어서, 인생에서 한 번쯤 해보지 않고 넘어가기엔 나중에 싱크홀처럼 와르르 무너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동안은 사회의 잘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부속품이 되지?’ 하고 고민했다면 시스템이 느슨한 곳에서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사람이 할법한 고민들, 의식주를 고민하며 내가 나를 위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렇게 보낸 약 30일간의 여행은 현재 우리 부부의 인생에서 꽤 큰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서 내가 살아내야 하는 공간은 변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 나도 고백하건대 다시 더 나은 부속품이 되어야지 하는 고민으로 돌아오게 되어 살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왜 우리는 저 날이 기억이 떠올랐을까.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부족하거나 모자라지 않게 우리는 꽤 나은 부속품이 되었지만 둘 다 저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처럼 지쳐있었던 게 분명하다. 꺼내어두기만 하고 지나온 바보 같은 질문이 가시처럼 마음 한구석에 박혀있던지 10년이 지난해였다. 이렇게 또 40-50살을 맞이하는 건 좀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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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지금의 대기업을 만들어준 효율적인 시스템과
그것이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부분들을 배웠지만
졸업 후 동기생들 다 지원하는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 기업을 선택한 저는
어쩔 수 없는 반(反) 경영학도, 비효율의 끝판왕, 발전의 단계를 모두 겪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아마 그때부터 내 안의 자아라는 게 살아나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