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이 집에서 잠만 자는데요

by 김보미


내가 이렇게 자립심이 컸던가? 다 큰 자식이 또 자식을 데리고 부모님 집 옆으로 이사 온 사건(?)은 나에게 아주 큰 좌절감을 주었다. 동네에서 마주치게 된 예전 이웃들은 다시 여기로 왔냐며 반갑게 인사해 주는 것 같았지만 내 옆에 손잡고 있는 아이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애기 있으면 엄마 옆이 좋지?” 하고 한 마디씩 말을 얹었다. ‘넌 어차피 돌아오게 되어있었어!’ 하는 눈초리가 따라오는 것 같았다.



결혼하고, 독립했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려고 한 거밖에 없는데 다시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안에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부모님께는 감사했지만 내 스스로에게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자식들을 다 독립시키고 노후준비를 막 시작한 부모님께 또다시 육아 비슷한 걸 하게 해 드린다는 이 불효막심한 자식의 부끄러움.



하지만 내 사정이 어찌 되었든 도시에서 적당한 수준으로 아이를 키워내려면 가정에서 돈 버는 사람은 둘이 되어야 하고 아이는 자주 부모님께 맡겨져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세 식구가 거주목적인 집 하나 유지하고 살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뿔뿔이 흩어져있다가 결국 밤이 다 되어서야 만나게 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자꾸만 기운이 빠졌다.



집을 얻긴 했지만 그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하루 중 절반 이하인데도 다달이 내야 하는 관리비는 왜 이렇게 많은지, 그 관리비를 내기 위해 또 우리는 집을 비워야만 했다. 편지배달보다는 통지서 배달이 더 많은 우체통에, 매 달 화살처럼 날아와 꽂혀있는 각종 대금명세서를 보면서 대답 없는 질문들을 혼자서 이어나간 적도 많았다.



“저희는 집에서 잠만 자는데 이번 달 관리비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죠?”


“공동시설이용비, 시설유지비, 청소비, 경비비, 수도 전기세 등등입니다. 가구 당 평균 비용보다 낮게 나온 편이세요.”


“저희는 그 시설들을 이용할 시간도 없이 나가 일하는데요.”


“그건 본인들 팔자죠. 다들 잘만 이용하시던데요.”


“여기 살면서 저 시설들 다 이용하고 관리비내고 아이는 둘씩들 키우면서 어떻게들 사는 걸까요? 외제차까지 타면서요.”


“그건 본인들 팔자죠. 다들 잘만 내시던데요.”



삶은 그렇게 나를 퍼석하게 했다. 책 한 권 겨드랑이에 끼고 걸어도 행복했던 날은 끝난 지 오래였다.



그렇게 또 1년, 2년… 자주 기운이 빠졌고 자주 힘들었으며 자주 울기도 했던 몇 년이 지나니 이 삶 또한 꽤 받아들이게 되었다. 받아들여만 익숙해질 거고 그래야 무뎌지니까 그랬다. 이 삶이라 하면 사실 주변에 이렇게 부부가 일하면서 아이는 부모님께 맡겨지고 그렇게 3대가 지지고 볶으며 이러쿵저러쿵 살아지게 되는 그런 삶이 꽤 많다. 어떻게든 육아는 스스로 해보려고 정규직을 그만두고 파트타이머의 삶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모든 틈이 메꿔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밖에 아이를 키울 수 없나, 아직도 사회의 시스템에 분노가 치밀지만 그래도 바뀌는 건 크게 없었으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냥 남들처럼 적당히 서로 얹히고 얹혀 살을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매 달 내야 하는 공과금, 관리비 통지서를 채찍 삼고, 쑥쑥 자라나는 아이만 보고 살기로 다짐했다. 시작과 끝을 모르겠는 모호한 이 삶이 잔잔하고 안정적인 건가 싶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하던 중, 남편한테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제주도로 발령이 날 것 같아!’














*

방 4개에 화장실 2개,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과 지하주차장... 우리 세 식구의 삶이 저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굴러가야 하는가 - 하는 맥락 없는 탄식을 자주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걸 위해 사는 삶은 이상하다고 느껴집니다. 아니, 지금 우리의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겠죠. '방은 하나 줄어도 되고, 화장실도 하나만 있어도 되겠다, 커뮤니티 시설은 시립 도서관과 근처에 마음 맞는 카페 한군 데면 되지...' 등 조금씩 내가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날들이기도 했네요. 이런 생각을 조금 일찍 했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지만 어쩌겠어요, 나는 찍어먹어 봐야 뭔지 알겠는 사람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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