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식구 유랑기

by 김보미


이런 상상을 할 당시에 나는 결혼하고 서울 정릉동 관사에서 신혼살림을 꾸려 나가며 아이를 낳아 키울 때였다. 생에 첫 이사를 하고 관사이긴 했지만 나의 집으로 불리며 애착을 붙인 공간이었다. 아이가 없이 남편과 둘이 살 때에는 더욱 그랬었다.



정릉이라는 동네를 매일 오고 가며 완전히 낯선 곳에서의 우리를 꽤 즐기기도 했다. 터널 하나만 지나면 정릉에서 종로로 이어지는 것도 좋았다. 종로 인근은 워낙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어서 그 당시 나는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 편을 끼고 다니며 서울을 탐방했다. 주말에는 한양도성투어 같은 걸 신청해서 사대문을 걸어서 완주해보기도 했다. 수도가 주는 깊은 스토리가 좋았다. 난 평생을 경기도에서 살았지만 서울사람인 것처럼 (진짜 서울 사람은 이렇지 않다는 걸 이젠 안다) 서울을 걸어 다녔다.


이때쯤 남편과 함께 폴더형식의 자전거도 구매하기도 했는데 뚜벅이의 기동성에 엔진을 단 것 같은 추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도심에서 한강변으로, 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위로 아래로, 내키는 만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걱정되면 자전거를 척척 접어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신혼생활이 일 년쯤 지났을 때,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우리 둘 생활에 작은 인간 하나 더 생겼을 뿐인데 어제의 서울은 지금도 그 서울이 아니었다. 걸어서 다녔던 온 동네를 이젠 아이를 안거나 유아차를 끌고 다녀야 했는데 정릉동의 그 언덕들이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걷다가 여기저기 들어가던 카페와 숍들은 어느새 노키즈존이라는 문구를 걸어두어 아이와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아이가 클수록 짐이 늘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이미 서울 내 이동만으로 세 식구가 지쳐버리거나 애써 도착한 목적지에 주차자리가 없어 두 번 절망하는 일도 많았다.



노키즈존이 아닌 곳, 아이와 가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곳, 주차장 자리가 넉넉한 곳을 찾다 보면 결국은 집콕 아니면 대형쇼핑몰이었다. 평일에는 집콕으로 버티다가 주말에는 용수철 튕겨나가듯 세 식구가 쇼핑몰 투어를 다녔는데 나갔다 하면 돈 10-20만 원이 우습게 써졌다. 밥 먹고 주차비내고 화려한 매장들 속에서 참다 참다 한 가지만 구매했는데도 불어나는 카드값은 무서웠다. 하지만 안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이가 커가면서 키즈카페 같은 곳에라도 데려가려면 더 돈이 많이 들었다.



더 이상 서울은 내가 그전처럼 발발거리며 책 한 권 팔에 끼고 걷기만 해도 좋은 곳이 아니게 되었다. 식구는 늘었지만 일하는 사람은 하나로 줄었으므로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이 맞지만 서울에서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 혼자 도를 닦는 마음으로 산다고 해도 수없이 많은 유혹들이 매일매일 생겨나는데 심지어 아이까지 키워야 한다. 결국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 포기하고 일하는 사람을 하나에서 둘로 늘리는 방법을 택했다. 아이를 맡기고 나도 다시 나가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아이는 누가 보느냐 하면 물론 기관에서 봐주긴 하지만 기관이 메꾸지 못하는 빈틈들은 생각보다 아주 자주 생겼고 줄줄세는 틈을 막아주는 건 다시 나의 부모님의 몫이 된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짧았던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내가 컸던 우리 부모님 옆으로 돌아갔다. 아이까지 데리고 말이다. 30년이 넘은 그 집의 안방은 다시 제 주인을 찾아간 것 같았지만 이번엔 갓난아이의 침대가 들어간 방이 되고야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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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부가 오로지 아이를 직접 양육하며 일도 할 수 있는 세상은 언제 올까요?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진심인 사람이 있다면,

유권자로서 제 한 표를 기분좋게 던질 생각이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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