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로망은 왜 떠나는 게 되었나

by 김보미


나는 내가 태어나 자란 곳에서 결혼하기 전 스물여덟 살까지 살았다. 27평의 베란다가 딸린 남향 아파트 한 층에 아빠, 엄마, 나, 동생 네 식구가 살았다. 안방이라 칭하는 가장 큰 방은 부모님의 방이었다가, 나와 동생의 방이었다가, 다시 내 방이 되었다가 그렇게 나와 동생이 커가면서 방의 주인만 바뀌었을 뿐 집의 주인은 똑같았다. 모두들 유년기에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이사의 기억이 나와 동생에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집은 할아버지의 유산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대단한 부자는 아니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아끼고 아껴 마련한 재산들을 돌아가시기 전 다섯 남매에게 고루 나누셨다. 우리 아빠한테 남겨진 게 바로 이 집 한 채였다. 그래서 다행히도 나의 아빠와 엄마는 결혼하고 신혼 시절부터 월세방, 전세방의 단계 없이 내 집에서 신혼살림을 꾸릴 수 있었다. 그랬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나도 다 커서 엄마한테 들었는데 엄마는 꼭 뒤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근데, 다른 사람들 사는 거 보니까 젊었을 때 월세 살았지만 그게 그때는 목표가 되어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전세로 옮기고 나중에는 더 큰 내 집을 사고 그러더라. 그 사이사이에 얼마나 많은 힘듦이 있었겠느냐마는 또 그게 그때만 할 수 있는 기쁨이지 않겠어? 엄마가 이렇게 살아보니까 물론 내 집이 있는 건 감사했지만 엄마는 그때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봄에 씨를 안 뿌렸는데 가을게 거둘 수확이 있나. 인생 가을쯤 오니까 봄에 내가 좀 더 억척을 떨었더라면 또 지금의 나는 달라지지 않았으려나 그런 생각이 들어 요즘은.’


하고 말을 줄이는 엄마의 뒷 말을 나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홈 인테리어라는 카테고리가 미드센츄리, 플랜테리어까지 왔지만, 엄마의 집은 체리 색 몰딩과 꽃 벽지에서 멈춰있었다. 인생은 긴 시간 때우기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엄마가 지금쯤 저런 생각이 드는 게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탈하고 안전하게 살아왔지만 뒤돌아보니 자꾸만 아쉬운 거. 엄마라는 계급장을 떼고 나면 남는 내 이름에 대한 성찰. 난초 난에 꽃부리 영을 이름으로 가진 엄마는 내가 이름만큼 꽃을 피워는 봤든가 하고 자꾸만 뒤를 살피는 것 같았다.


더는 젊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얘기하는 젊은 날에 대한 아쉬움.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마음먹는 것이라는 건 젊은이들만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여전히 젊은이였으므로 언제든 활활 불타오르거나 훨훨 날아갈 기회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동안 나는 정착과 안정이 삶의 목표인 줄만 알고 그것을 위해 10대와 20대를 바쳤다고 자부했는데, 숙제를 다 마친 30대가 된 나는 이상하게도 궁둥이가 들썩이던 참이었다. 엄마의 고백은 그 당시의 나로선 거의 ‘떠나가봐라.’ 하는 응원이나 다름없었다.








*

'나는 왜 지금 떠나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묻고 또 물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학업, 직장, 결혼, 출산, 집 등 그동안 목표라고 세웠던 것들이 어느 정도 손에 잡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궁둥이는 왜 이제와 들썩이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 시기를 지나고 있을까?

어디선가 나와 같은 고민을 고민으로 두고 있을 사람을 찾아 이 글을 흘려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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