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 Jul 19. 2022

사람들은 학대를 모른다

젊은 학대아동의 슬픔 (1/3)

잔뜩 극복한 척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엄마의 꿈을 꾼다. 그리고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난 꿈에서조차 엄마를 때리지 못한다는 것. 아직 어리기는 하나, 살며 어디도 꺼내 두지 못했던 감정은 나를 현실로부터 떼어놓고 내 세계에 나를 가두었다.


오랜 시간 내 가정 사정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혼자 부끄러워했던 만큼, 내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서 이전처럼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언제나 정답은 하나! 라 했던가. 결국은 어딘가에 내 오랜 이야기들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고, 이 이후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마음으로 정신과를 찾게 되었다. 내 상황을 내 입으로 뱉으며 심각성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성적이고 깔끔한 상담과 약물의 도움으로, 현재는 친구들에게 ‘조나단’ 스러운 개그를 칠 수 있을 수준이 되었다. PTSD, 우울증,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단어들에 어? 한 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친구들에게 즐거운 반응을 얻어낼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아주 작은 수확이다.


-


모든 심리상담가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나의 경우 심리상담이 정신과보다 힘들었다. 심리상담의 본분이 마음을 살피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임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하지만 나의 상황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과 해결책에 대한 고민 없이 감정적인 공감과 교화에 관한 뉘앙스만이 되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날 잠 못 이루고 괴로워하게 했다.


명절을 기점으로 집과의 연을 끊으려 한다는  말에 상담사님은 계속해서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셨다. 정말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모든 말들에 지쳐버린  같다. 이미 질릴 만큼 고민해왔기 때문에. 최소 10, 어쩌면  남은 기억의  순간부터 계속. 게다가 결단을 내리기  1년은 내가 살면서 겪을  있는   가장 아픈 , 내가 상상할  있는 가장 위험한 일을 수도 없이 상상하며 각오를  상태였다. 그럼에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것이란 정을 내린건데.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사람에게 계속해서 저지가 들어온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상담 내용과는 관계없이 일을 치고 돌아온 뒤의 첫 상담, ‘이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에 상담사님은 살짝 잠긴 목소리로 ‘그래요, 사람들 눈이 무슨 상관이겠어요. 사람이 살아야죠.’ 하셨다.


그 이후로 난 상담 일정을 잡지 않았다.


물론 밖에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방어적이고, 독단적이어서 심리상담이 맞지 않았던 게 자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깨달은 사실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이든, 날 얼만큼 아끼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학대의 실체를 모른단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 겪은 학대가 인생에 얼마나 촘촘히, 이상한 부분부터 얽혀 사람을 지독하게 만드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그런 비뚤어진 정신상태에서 학대자와 정신적 유대를 갖는다는 것은, 헝클어진 실타래를 잔뜩 묶어놓는 것과 같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고, 일관적인 태도를 보일 수 없다는 것. 감정적인 발달이 더뎌 그 빈자리를 도덕성과 일관성 따위로 채우려 들었던 내게는 아주 치명적인 일이었다. 이렇게 다면적인데, 이걸 학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 가족에겐 행복한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내가 정말로 사랑받는다고 믿었는데. 이런 걸 가지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을 텐데 이래도 될까?


하지만 그런 고민을 수없이 해온 내가 이제야 확신할 수 있게 된 건… 그래도 된단 것이다. 교화할 수 없는 가정에서는 분화되는 것이 맞다. 이에 대해 누군가의 허락과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날 잘 아는 지인들 조차 학대가 뭔지, 내가 왜 밤마다 눈물을 흘리고, 가족 연락 하나에 위경련으로 바닥을 기는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경험의 격차는 그만큼 메우기 힘든 것이니까.


혹시 내가, 아직 경험이 충분치 못해 허락을 받고 지지를 받아야 그 선택이 맞는 것이라 결단을 내릴 수 있던 어린 날의 날 만난다면… 기약 없는 시간을 맴돌며 얻은 결론을 말해주고 싶다. 내가 상황을 바꾸지 않는 이상, 난 절대로 이 진창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날 수 있도록 지금처럼만 준비하라고.


언제나 이민자의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 내게 주어진 숙명 따위를 난 그렇게 부른다.

작가의 이전글 분노라는 파도에서 서핑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