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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작가 Feb 17. 2024

"I'm Batman"

아버지라는 박쥐(feat. 배트맨 비긴즈)

경석이네 2층.

할머니와 부모님은 우리 집을 그렇게 부르셨다.

지금껏 나는 경석이가 누군지도 모르고

심지어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내겐 그저 어릴 적 우리 집을 일컫는

고유명사일 뿐이었다.

(아마도 당시 우리는 세를 살았을 것이고

1층 주인집 아들이 경석이었을 것이다.)


내가 4살 때쯤이었을까?

경석이네 2층 집에 박쥐 한 마리가 들어왔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아버지와 형은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었고

어린 나는 빗자루를 들고 박쥐를 쫓았단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DNA가 내장된 채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린 시절부터 내 꿈은 좋은 아빠가 되는 것,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5살 때,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말이 아파트지(실제 명칭은 00맨션이었음)

엘리베이터도 없었고 겨울엔 집에서 입김이 났다.

이제 더 이상 집에 박쥐가 들어오진 않았지만

쥐랑 무슨 인연인 건지 박쥐 대신 쥐가 나왔다.

1층 우리 집 어딘가에 쥐구멍이 있었던 것 같다.


부엌 불을 켜면 '사사삭' 소리가 났다.

쥐들이 놀라 여기저기로 숨는 소리였다.

쥐들에게 충분히 숨을 시간을 주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야 부엌문을 열 수 있었다.

(부엌 들어가는 여닫이 문이 있었다.)

여기저기에 쥐약과 쥐덫을 놓았는데

찐드기에 붙어 죽어가는 쥐를 본 적도 여러 번,

그 찐드기를 내가 밟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으면

할머니의 외침이 아파트에 울려 퍼지곤 했다.


민아!!! 쥐 잡았다!!!


누가 보면 집안에 큰 경사라도 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때 난 그게 부끄럽지 않았다.

다른 집에도 다 쥐가 나온다고 생각했을까?

지긋지긋한 쥐 한 마리가 없어졌다는 안도감과

우리 집엔 쥐를 잡아줄 할머니가 계시다는

든든함이 있었고

역동적이고 활기찬 우리 집이 좋았다.



동네가 후져서인지 시대가 암울해서인지

거짓말 좀 보태면 부모님보다 깡패를 더 자주 만났다.

맞서 싸울 용기는 없어도 냅다 튈 용기는 있었다.

죽기 살기로 도망쳐 깡패를 따돌리고

친구들과 도착한 종착지는 늘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은 할머니가 주신 간식을 먹으며

놀란 가슴을 달래는

쫄보들의 안식처이자 아지트였다.



나에게 집이란 유형의 공간이 아닌

가족, 안식처와 같은 개념상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고1 무렵,

그랬던 나의 집이 무너졌다.

유형의 공간도, 개념상의 공간도.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해서는 안될 짓을 자식들 눈앞에서 저지르셨고

엄마와 난 아버지를 피해 외할머니 댁으로 피신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며 함께 했던 할머니도 자식의 집으로

가신 후였고 형은 대학생이라 서울로 올라갔다.

남은 건 엄마와 나뿐이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챙기지 못한 짐을 가지러

며칠 후 다시 집에 들러야 했다.

혹시나 집에 아버지가 계실까 무서웠다.

두려움에 떨고 계신 엄마는 외가에 남겨두고

나는 외삼촌들을 대동한 채 조심스레 집 문을 열었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유리창은 다 깨져 있었고 바닥엔 신발자국이 있었다.

강도가 든 것처럼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분노,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날 괴롭혔지만

어른들의 걱정과는 달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잘 지냈다.

얹혀사는 처지였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신 집이

내겐 아버지가 있는 집보다 편했다.

이 생활에도 익숙해질 때쯤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돌아간 집엔 뜻밖에도 아버지가 있었다.

엄마와 아버지 간엔 이미 얘기가 오갔을 테지만

나에겐 어떤 사과도, 설명도 없었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DNA는

이제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리셋되었다.

내게 아버지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 들어온 박쥐를 당장 쫓아야 했다.

아버지께 다가가 다짜고짜 물었다.


언제 이혼하실 거예요?



아버지는 일본으로 떠나셨고, 우린 이사를 했다.

집은 더 좁아졌지만 둘이 살기엔 충분했다.

한참의 나날이 흘렀고 어찌 된 연유인지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이번에도 나는 결정의 주체가 아니었다.

나는 그 어떤 설명도, 변명도 듣지 못했다.


부부싸움은 부부간의 싸움일 뿐이고

두 분이 화해하면 모든 일이 다 없었던 일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으셨을까?

그래도 엄마가 결정하신 거라면,

엄마만 좋다면 난 상관없었다.

다만 이 결정에 아무 관여도 하지 않은 내가

'이게 다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관여되지 않았길 바랄 뿐이었다.


쫓았다 생각했던 박쥐는 다시 집에 들어왔고

이젠 박쥐와 함께 살아야 했다.

나에게 집은, 가정은 해소되지 않은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잘 숨겨야 할 곳,

그래야 유지되는 곳이 되었다.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 주인공은

어린 시절 동굴에 떨어져 박쥐 떼를 만났고

그때부터 박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오랜 수련과 노력 끝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이 두려움의 대상인 배트맨이 되어

시민과 고담시를 구해낸다.


아버지는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지만

애초에 내가 쫓아낼 수 있는 박쥐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아버지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해야 할 대상이었다.

나도 날 괴롭히는 박쥐를 받아들이고

엄마를 구해낼 수 있는 배트맨이 되길 바랐다.



아버지는 늘 우리 집의 변수였고, 불안요소였다.

아버지로 인해 가정 경제는 휘청거렸고

좁디좁은 집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결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나왔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28년째 그 집에서 살고 계신다.


좁은 집에 살림은 늘어갔고

골동품 같은 물건들은 쌓여갔다.

명절에 자식들이 내려와도 잘 공간이 없어

하룻밤도 함께 묵을 수 없는 집.

집은 엄마의 애환이었고 나의 치부였다.


아버지는 뇌졸중에 두 번의 암 수술을 거치며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지내시고

엄마는 4년째 아버지 곁을 지키고 계신다.


지금 엄마를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나 역시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간병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어쩌면 나를 아버지 자신을 구하는

배트맨이라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집은, 가정은 해소되지 않은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잘 숨겨야 할 곳,

그래야 유지되는 곳'이기에

기꺼이 아버지의 배트맨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아버지에게 품었던 여러 감정들이

바닥에 가라앉고 연민의 감정이 싹트고 있다.

아버지라는 박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엄마를 구해낼 수 있는 배트맨이 되길 바랐던

나의 소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내가 엄마를, 아버지를 구하는 배트맨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내 소망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처럼


먼 훗날 어떤 모습이 되어 나타날지 모르는

나의 소중한 소망의 씨앗들을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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