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모으기
내 오래되고 가장 설레는 취미 중 하나는 향기 모으기이다.
집안 곳곳의 숨어 있는 향수들을 포함하면 종류가 얼추 40가지가 넘는다. 1만 원 미만의 미니어처들을 시작으로 30만 원대에 이르기까지 가격도 종류도 가지가지다.
향기에도 색깔과 분위기가 있다, 계절의 흐름과 날씨의 변화와 그날의 기분에 따라 향기 또한 바꿔가며 입어 줘야 한다.
‘취미 치고는 지출이 꽤나 나가네.’ 싶다가도 사진기나 자전거, 컴퓨터나 음향기기들과 같은 고가의 장비를 필요로 하는 취미에 비하면 애교가 아닐까,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해 본다.
“시각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청각이나 후각이 더 발달되어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의외로 이런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 일단 내 대답은 ‘No’이다.
어떤 소리나 움직임이 감지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이 먼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비장애인들에게 그 누구도 ‘시각이 발달되어 있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형식에서 시각장애인들은 소리가 들리는 어떤 대상을 향해 귀를 기울인다. 시각적으로 반사되어야 할 에너지가 청각으로 집중될 뿐, 그것을 더 발달되어 있더라 하기엔 그다지 적절한 표현은 아닌 듯하다.
컴퓨터로 업무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와 같이 집중을 필요로 하는 시간이면 습관처럼 무선 이어폰을 찾아든다.
설거지를 할 때나 빨래를 갤 때, 실내자전거를 탈 때에도 귀에는 늘 무선 이어폰이 꽂혀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청각능력은 그다지 좋지가 않다.
마음의 크기가 클수록 관심도 역시 상승하기 마련이다.
“어! 오늘은 G브랜드의 비누향 향수 뿌렸네.”
“이거 C브랜드의 장미향수지?”
“오~ D브랜드의 목이 긴 향수 뿌렸네?”
이렇게 바로 알아맞히는 것을 사람들은 몹시나 신기해한다.
이 또한 후각능력이 매우 발달된 시각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향 제품에 관심이 높아서가 아닐까
오래전, 순간의 망설임으로 인해 놓쳐버린 아이가 있다. D브랜드의 제품으로, 온몸 가득 풍선껌 향을 가득 품고 있던 아이, 온 세상이 무지개다리로 펼쳐진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던 그런 매혹적인 아이. 하지만 얼마 뒤 단종되었다는 말을 듣고 절망해야 했다.
찰나는 나를 오래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어떤 것이든, 기회가 온다면 잡아야 하는 것임을 여실히 깨닫게 해 준 순간이었다.
그래서 놓쳐버린 무지개 향을 찾는 그날까지 나는 향기여행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