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가 되면 유독 생각나는 교육생이 있다.
“선생님 제가 실명한 지 오늘로 934일 됐습니다.”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걸 매일매일 기억하고 계세요?”
“어떻게 잊겠어요, 저도 잊고 싶은데 도무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잊으려 할수록 오히려 선명히 떠오르는 그런 종류나 색깔의 일들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잊기 위해 하루하루 날짜를 곱씹어야만 했던, 그러나 잊을 수 없었던 그분의 마음을 생각하면 늘 가슴 한편이 묵직하게 아팠다.
살다 보면 잊고 싶지 않은 일들도 어느 순간 잊혀 가기도 한다고, 언젠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오는 날이 분명 있을 거라고... 그러니 굳이 기억하려고도 잊으려고도 하지 말자고... 오랜 시간 그 분과 상담을 했었다.
이맘때쯤 늘 안부 전화가 오곤 했었는데... 문득 그분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마음이 통한 걸까?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날씨가 많이 찬데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시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내가 묻고 싶은 말들을 그분이 먼저 따듯한 목소리로 건네주셨다.
저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나도 안부의 인사를 건넨 뒤 조심스레 물었다.
“그날 이후로 오늘은 며칠이 지났나요?”
그러자 그분이 대답하셨다.
“선생님, 이제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날 이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이제는 며칠이 지났는지 신기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잘하셨다고, 정말 잘 됐다고 안도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온 힘을 다해 잊지 않으려 혹은 잊으려 밝혀둔 기억의 불빛이 어느 날에는 희미해지기도 할 테니... 너무 잊으려고도 잊지 않으려고도 애쓰지 말자. 어떤 일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답이 되어 해결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