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지구의 이방인들 - 6
다마스커스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딱 한 채 있다(내가 여행하던 당시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시리아 상황을 떠올리면 아마 그마저도 없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예전에 대사관 관저로 쓰이던 건물을 손님용으로 개조한 이 게스트하우스는 마당 한가운데 아름다운 우물과 연못이 있는 아름다운 프랑스풍 건물이다. 아마 프랑스 식민지 시대 때 지어진 건물이 아닐까 싶다.
요르단에서부터는 가이드북이 없이 여행하는 중이다. 현지에서는 시기에 맞는 영어 가이드북을 구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정보 수집이 뭣보다 중요하다.
나는 숙소에 비치된 여행자들 노트에서 필요한 정보를 골라 따로 메모했다. 그 정보를 토대로 다마스커스 시내와 가까운 교외를 둘러보기도 했지만, 대개는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가기 싫을 만큼 아름다운 건물이기도 했고, 시리아를 깊이 여행할 생각은 없었다. 이곳은 나에게 터키로 향하는 관문 정도의 의미였으니까.
우리는 다마스커스에서 헤어질 예정이다. 나는 여기서 터키로 가고, 해원 언니와 태윤은 레바논으로 간다. 와디무사에서 만난 의사 일행의 초대에 응하기 위해서다. 나는 이미 산티아고 순례길에 완전히 꽂힌 와중이라 그 제안은 패스하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터키행 사설 버스 터미널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와 해원 언니, 그리고 태윤은 짧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렇게 기약 없는 헤어짐 후,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다마스커스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야간 버스로 온밤이 꼬박 걸렸다. 나는 90도 좌석에 앉아 무념무상의 상태로 긴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제 불편과 낯섦의 틈바구니에서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데에는 도가 텄다.
그렇게 이스탄불의 오토가르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넘었다. 도시는 아직 검푸른 침묵에 잠겨 있다. 나는 듬성듬성 도시를 밝히는 빛을 세며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지금 나는 이스탄불에 있다. 지리적으로 정확하진 않을 테지만, 동쪽 끝 한국의 우리 집과 서쪽 끝의 산티아고 순례길 그 사이의 정중앙 어딘가에 서있는 기분이다.
집을 떠나 이 지점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을 겪으며 먼 길을 왔다. 그리고 딱 그만큼의 거리가 내 앞에 놓여 있다. 게다가 나는 아주 오랜만에 다시 혼자다. 그게 왠지 아득하게 느껴져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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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떴다. 밖은 잿빛 새벽. 비가 내리고 있다.
여기는 독일의 뮌헨. 나는 유로버스 안이다.
뮌헨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터키와 그리스,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죽죽 지나왔다. 이스탄불과 아테네, 소피아(불가리아의 수도) 등의 일부 도시에서만 며칠씩 머물렀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버스 안에서 지나갔다.
터키에서 본격적인 유럽 대륙으로 출발할 때에는 기차를 탈까 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유럽 배낭여행에서 유레일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버스로 국경을 넘는 재미를 알았고, 기차보다는 버스가 훨씬 저렴하니 이번에는 버스만으로 유럽 대륙을 횡단해보기로 했다. 쓰는 언어가 다른 숱한 나라를 지나왔는데, 한 나라에서 다음 나라로 가는 버스를 구하기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유레일보다 세부 구간 연결이 훨씬 잘돼 있달까. 또 어느 나라건 국제교통수단을 운영하는 시설에서는 기본적인 영어가 통했다. 배낭여행자를 주로 상대하는 숙소 직원들은 영어에 능한(억양은 예외로 하고) 편이었으며, 정보에 빠삭하고 친절했다.
여하간 그렇게 물어 물어 여러 국경을 지나, 현재 나는 독일에 있다. 뮌헨은 이번이 두 번째다. 갓 스물을 넘겨 왔을 때에도 뮌헨은 춥고 비가 내렸다.
뮌헨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번에는 파리행 버스 티켓부터 예약했다. 그리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간이음식점 앞 벤치에 앉아 배낭에서 옷을 죄다 꺼내 겹쳐 입었다. 정말이지 분명 한여름일 텐데, 비가 내리니까 손발이 시리도록 춥다. 갑자기 터키와 그리스의 지중해 날씨가 몹시 그립다. 특히 나는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숨 막히게 아름다운 그곳의 풍경에 홀딱 반하고 말았더랬다.
유구한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든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의 양옆으로 뻗은 긴 골목 끝마다 지중해의 바다가 눈부시게 빛났다. 또 골목마다 유럽의 낭만과 아시아의 고풍이 섬세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두운 빛깔의 벽돌로 지은 건물들은 넝쿨을 흉내 낸 철제 장식이 휘감긴 소박한 발코니마다 화분을 두었다. 여닫이 창문을 활짝 연 채로 빨래를 널거나, 꽃에 물을 주는 사람들은 활기로 가득했고, 시선이 마주치거든 다정한 미소를 건넸다.
발코니의 열린 문 안에서 밖으로 하늘하늘 나부끼는 쉬폰 커튼은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가벼워, 그 자체로 한 편의 시 같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자리한 블루 모스크는 이런 풍경의 시작이자 끝을 이루는 정점이었다.
탁 트인 술탄 아흐메트 광장 한복판에 요요히 선 블루 모스크는 웅장하고 화려했다. 화려함이 지나치면 급기야 신비롭게까지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블루 모스크는 그간 내가 경험한 이슬람 문화 중에서도 가장 본격적이고 보존이 잘된 곳이기도 했고. 이스탄불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가 마침 그 근처라, 어딘가를 가려면 반드시 술탄 아흐메트 광장을 지날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새삼스럽게 얼이 나갔고, 수시로 감탄했었다.
풍경뿐이랴.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나는 이스탄불의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유독 한국인을 좋아하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었으며, 거기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은 밤마다 맥주파티를 벌였다. 파티라고 해도 손님용 작은 주방에서 손 닿는 대로 먹을 걸 만들어 골목에 앉아 먹은 것이 다다. 그래도 우린 수다를 떠느라 다들 새벽에나 자러 들어가곤 했다.
뮌헨 기차역 인근의 유스호스텔에 짐을 맡겨놓고 숙소에서 주는 무료 커피로 멍하니 이스탄불에서의 날들을 회상하고 있자니, 얼었던 몸이 녹는다. 몸이 녹자 마음도 풀려, 내가 쓸 도미토리 객실의 청소가 끝날 때까지 로비의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서유럽으로 넘어오자, 한국인이 지천이다.
오늘 밤을 묵을 유스호스텔도 외국인이 반, 동양인이 반이다.
낮 12시가 지나서야 간신히 정신이 든다. 따뜻한 침대에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거듭된 버스 여정으로 누적된 피로가 제법 풀렸다. 밖은 여태 비가 내린다. 나는 나가서 검은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와 물을 사서 다시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로비에서 만난 한국인 몇몇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스무 살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나온 어린 학생들이었다.
이튿날 저녁, 나는 또다시 파리행 버스에 올랐다. 뮌헨에서부터 이어진 빗줄기는 파리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거세어졌다. 결국 가져온 옷만으론 추위를 더 버틸 수 없어 휴게소에서 두꺼운 긴팔 티셔츠를 하나 샀다. 제일 작은 사이즈인데도 팔 길이가 한참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