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지구의 이방인들 - 7
이른 새벽 6시쯤, 버스는 파리에 도착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터미널과 연결된 지하철 역사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TGV를 운행하는 몽파르나스역으로 갈 예정이다. 오전에 출발하는 기차를 놓치지만 않으면 오늘 오후에는 생장 피드포르 마을 역에 설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의 출발지점이 드디어 손에 잡힐 만큼 현실적인 거리에 있다. 그 생각을 하자, 처음 순례길의 존재를 알게 된 이집트에서 프랑스까지 이어진 숨 가쁜 여정의 피로가 단숨에 날아간다.
몽파르나스역까지 갈 수 있는 지하철표를 사고는 지하철 노선도를 유심히 보았다. 이곳의 노선도는 핀볼 기계의 디스플레이처럼 각 역마다 작은 전구가 달려 있어 스위치를 누르면 조그만 빛이 깜빡이며 켜진다.
파리도 초행이 아니다. 첫 배낭여행의 마지막 여정지였으니까. 나의 유럽 배낭여행은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독일, 네덜란드, 체코, 이탈리아, 바티칸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끝났더랬다. 대략 5년 여 만에 다시 온 파리의 지하철역은 거의 변한 게 없다.
지하에 웅크린 낡고 거대한 지하철은 파리의 청회색 우울에 농도를 더한다. 헐거운 간이 의자도, 각양각색의 인파도, 지하도로에서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예술가마저도 그대로다. 처음 와봤던 그날의 파리로 되돌아온 것 같다.
그때 나는 숙소에서 아침으로 주는 바게트를 넉넉히 챙겨 서는 온종일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쑤시고 돌아다녔다. 미술에 흥미가 없진 않으나 종일 파고 살만큼 열정적이었던 것도 아니어서 솔직히 좀 고역이었다. 하지만 함께 배낭여행을 온 여동생을 비롯해, 같이 다니던 다른 일행들의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 봐 둘 만큼 봐 둬야 한다’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했다. 물론 결국 참다 참다 터져서 오르쉐 미술관을 가자는 동생과 싫다는 내가 대판 말다툼을 벌였다.
여행 끄트머리여서 피로는 쌓일 만큼 쌓였고, 파리에서 변태, 스토커, 강도(동생이 메고 있던 카메라를 탈취하려던 3인조 강도였는데, 당시 특공무술, 태권도, 합기도까지 섭렵한 여동생이 그린 듯한 옆차기와 현란한 한국의 쌍욕으로 쫓아 버리긴 했다. 동생은 모든 언어를 초월하여 욕을 아주 욕답게 들리도록 하는 데에 재주가 탁월하다)를 한꺼번에 모조리 만나는 바람에 도시에 대한 첫인상이 최악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는 파리를 즐겁게 탐구할 만한 의욕이 사라져 버린 뒤였다.
타국에서 벌인 여동생과의 대환장 자매 싸움은 심리적 후폭풍이 제법 컸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때 진심으로 동생을 호적에서 파버리고 싶다고(파낼 호적도 없지만은) 강렬하게 열망할 정도였다. (아니면 다시는 동생과 장기여행을 가는 일은 없으리라 다짐했다). 오해는 마시라. 여동생과 나는 굉장히 사이가 좋은 자매다. 그냥 여행 스타일이 서로 지독하게 안 맞을 뿐이지.
마침 여행 스타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후 이어진 내 배낭여행 전력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파리에 3번쯤은 다시 와야 (‘아니 파리까지 가서 루브르/오르쉐 등등을 안 갔다고?!’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그런 곳을 돌아봤을 것이다. (아예 안 가볼 확률도 지극히 높다) 나는 유명한 관광명소보다도 발길 닿는 대로 어디 이름 없는 공원이나 건들건들 쏘다니는 편을 택하는 쪽이니까.
차라리 그때 다녀와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봐라. 파리에서 며칠 있다 생장 피드포르로 가도 될 텐데, 기어이 모든 것을 패스하고 목적지를 향해 경주마처럼 내달리고 있지 않은가. 하여간 나는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밖에 안 보여서 큰일이다.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전날 밤, 일행 모두와 거닐었던 밤의 샹젤리제 거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늦은 오후부터 물감이 번지듯 점점이 번져가는 불빛들, 그 끝에 우뚝 서서 금빛으로 환히 빛나던 개선문……. 외국인인 내 눈에는 파리에 대한 낭만을 풍경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면 딱 저런 모습이리라고 생각하게 만든 광경이었다.
변함없는 파리의 풍경을 재료 삼아 옛 여행을 더듬는 사이, 지하철은 착실히 몽파르나스역에 섰다. 나는 순조롭게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와 기차역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역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 어디론가 떠나거나, 어딘가에서 떠나오고 있었다. 나는 티켓 판매기에서 생장 피드포르역까지 가는 TGV 표를 끊었다. 매표소 직원에게 직접 물어도 되겠지만, 프랑스 특유의 강한 억양 때문에 상대의 영어를 거의 못 알아들을 게 뻔했다.
오늘, 원하는 시각에 출발하는 TGV 일반석은 매진된 상태여서 하는 수 없이 2등석을 예매했다. 티켓 값이 어지간한 저가 항공사 비행기 값에 육박한다.
출발 시각은 오전 11시. 앞으로 2시간 정도 여유가 남아있다. 표까지 무사히 손에 쥐고 떠날 일만 남자, 갑자기 극심한 허기가 찾아온다. 그래서 문을 연 역사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야채와 치즈, 얇게 저민 햄으로 속을 채운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서 좁고 높은 스툴에 앉았다. 전에도 느꼈고 이번에도 느끼지만, 프랑스는 정말이지 아무 데나 들어가서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다. 물론 프랑스인들은 절대 그렇다고 느끼지 않겠지만 말이다.
순식간에 샌드위치를 반이나 먹어치우고서야 겨우 커피를 홀짝일 여유가 생겨 주위를 둘러보았다. 간혹 둘 정도가 한 테이블에 앉아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나눌 뿐, 대부분 혼자 앉아 저만의 아침을 만끽하는 중이다. 내 옆자리에는 온몸에 ‘파리지앵’이라고 써붙인 듯한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멀끔한 직장인인 그녀와 거꾸로 봐도 허름한 배낭여행자인 내 모양새가 새삼 비교된다.
내 몸의 계절감이 혼란을 일으킬 정도로 다양한 기후의 나라들을 빠르게 거쳐오느라, 지금 내 옷차림은 국적도 의미도 불명인 상태다. 윗옷은 요르단에서 해원 언니와 헤어질 때 받은 이집트(…) 풍에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충 사입은 기성복 티셔츠를 겹쳐 입었다. 바지는 네팔에서 사입은 것으로 어쩐지 디즈니 만화영화 알라딘을 연상케 한다. 거기다 버스에서 구를 대로 구른 배낭도 지저분하지는 않지만 딱히 멀쩡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평범한 일상을 시작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꼴로 멀거니 앉아 있자니, 새삼 내가 얼마나 일상에서 멀리 비껴 나 있는지가 실감 난다. 여행을 업으로 삼고 평생 길을 집 삼을 게 아니라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 멈춰뒀던 일들을 재개할 생각이니까 그 실감은 더욱 현실적이다.
어쩐지 심란해져, 기차가 어서 출발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역사의 전광판 시계를 보았다. 10시 45분이다. 내가 탈 기차는 오전 11시. 탑승은 15분 전부터라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한다. 과연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카페를 나오자, 아까의 심란했던 기분은 이미 가시고 없다.
미래의 일은 미래의 일.
지금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내가 찾아갈 플랫폼은 9번이다. 기둥에 설치된 플랫폼 넘버를 보며 9번 숫자를 찾았다. TGV는 이미 정차해 있다.
나는 지정된 객차를 찾아 열차 입구에 올라섰다. 내 좌석은 입구 바로 앞의 마주 보는 네 좌석 중 하나다. 세 좌석은 이미 승객이 차 있다.
배낭을 짐칸에 올리고서 좌석에 앉았다. 앉자마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름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꽤 아슬아슬했던 걸까? ‘빨리빨리’의 한국인이지만 오랜 여행을 하다 보니 장기 여행자 특유의 느긋함이 어느새 몸에 뱄나 보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는 동안, 기차는 성실히 달려 생장 피드포르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