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페레그리노's - 6
도미토리로 돌아가니, 새로운 사람이 두 명 더 늘어있다. 반갑게도 한국인인 데다 어린 두 남매다. 여자 쪽이 누나로 대학교 3학년이었으며, 동생은 중3의 키가 크고 다부진 몸집의 남자애다. 박진희, 박진형이 그들의 이름이다.
둘은 침대 맞은편 벽의 수납 선반 겸용 벤치에 앉아 발을 점검하고 있었는데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가서 보니 남동생의 발 상태가 엉망이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집용 밴드를 붙여주던 진희가 말했다.
“쥬비리 즈음에서 물집이 잡혔거든요. 근데 밴드를 붙인 상태에서 잘못하다가 물집 자리가 뜯겼어요. 덕분에 상처가 감염되어 곪고 통증 부위가 넓어진 것 같아요.”
나는 진형의 발을 보았다. 나보다 반 뼘쯤 더 큰 그의 발은 퉁퉁 붓고 물집이 터진 자리 고름과 피가 맺혀 참혹하다. 걷기는커녕, 가만히 있어도 고통스러워 보인다. 진희는 자기가 무리한 일정으로 걷게 만들어서 저렇게 된 것 같다며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일단은 연고를 바르고 상태를 지켜보자. 내일까지도 답이 없으면 알베르게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루쯤 더 머무를 수밖에.”
누나의 말에 진형은 울상인지 안도인지 모를 얼굴이 되었다.
쉬어야 하는 진형을 남겨두고, 우리(나, 토마스 신부님, 이수, 진희)는 다 같이 장을 보러 나갔다. 일찍 씻고 주변을 돌아다녀보겠다며 외출했다 돌아온 이수가 운 좋게 인스턴트 라면을 파는 마켓을 발견한 것이다. 우린 저녁으로 와인과 라면을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에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유명하다는 또르띠야 전문점에 들러 야채와 계란이 잔뜩 들어간 또르띠야와 에스프레소를 먹었다. 또르띠야의 맛은 오믈렛과 비슷했지만, 그보다 고소하고 부드러우며 무엇보다 두께가 엄청났다. 그리 크지도 않은데 절반쯤 먹고 나니 배가 잔뜩 불렀다. 배가 부르니 피로도 어느 정도 가시고, 돌아다녀 볼 마음이 생긴다. 새벽부터 반나절을 그렇게 걷고도 또 걸을 생각을 하다니. 이걸 회복력이 좋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시에스타에 잠긴 거리는 한산하다. 산 페르민 축제가 시작된다는 로데오 경기장과 카스티유 광장, 20세기에 들어서서 확장된 시가지와 아이스크림 가게, 그리고 헤밍웨이의 기념 흉상을 둘러보고 공원을 한참 어슬렁댄 후에야 마켓으로 향했다.
마켓에서 내일 걸으면서 먹을 바게트와 잼, 과일 그리고 오늘 저녁을 위한 라면, 와인, 달걀, 치즈까지 잔뜩 산 우리는 신이 나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부엌에선 이미 몇몇이 한창 요리 중이다. 그들은 우리가 사들고 온 라면과 먹을거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파티를 하는 거냐고 물었다. (물론 아니다)
신부님과 이수가 팔을 걷어붙였다. 그동안 나와 진희는 식전에 마시기 좋은 와인을 따서 애피타이저로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와인이 저렴해서 너무 좋아요. 테이블 와인 같은 건 원화로 천 원 고작 넘을까 말까잖아요.”
진희가 행복해하며 말한다.
“그래서 나도 물보다 많이 마시는 듯.”
우린 마주 보고 낄낄 웃었다.
신부님과 이수가 끓인 라면은 어이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팜플로나에서 라면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해서 그런지 맛이 더 기가 막혔다.
나는 라면을 먹다가 진희에게 물었다.
“진형이는 중3이면 아직 어린데, 대단하다. 어떻게 여기 오겠다고 생각했어?”
진희가 대신 대답했다.
“제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전에 완주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정말 좋았어서 또 와야지 싶었는데, 진형이가 그러더라고요. 고1 올라가기 전에, 각오를 새롭게 다질 만한 여행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딱 여기가 떠올랐죠.”
“이야. 좋은 누나네!”
문득 가족들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그래도 서울에서 살 땐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연락을 하고 정기적으로 집에 다녀가기도 했었다.
신부님이 물었다.
“동생과 여행하는 건 어떻습니까?”
“좋기도, 힘들기도 해요. 쟤가 있어서 든든하기도 한데, 어리니까 아무래도 이것저것 신경 쓰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정작 날 돌볼 새가 없더라고요.”
그 말을 들어서일까. 진희의 얼굴에서 묘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래도 표정은 밝았고, 옆에서 묵묵히 라면을 입에 밀어 넣던 진형도 누나의 말을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진 않다.
“고생이 많네.”
심심한 위로를 던지며, 우린 다시 먹던 라면에 집중했다. 우린 한참 자랄 나이인 진형을 위해 각자 조금씩의 몫(그래 봤자 달걀 넣은 라면일 뿐이지만)을 양보했다. 모자란 양만큼은 와인을 흠뻑 채워 넣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술이 부족하다며 카스티유 광장의 커다란 호프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시에스타가 지난 초저녁 광장에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카페테리아에 앉아 맥주잔을 마주하고 있다. 어느새 자리를 잡은 광장의 악사들은 아코디언이나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나는 뉘엿뉘엿 저무는 불그스레한 하늘을 보며 주변을 가득 메운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 나와 나란히 걷는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이수가 불쑥 물었다.
“누나는 글을 쓴다고 했죠?”
그가 먼저 뭔가를 물은 것은 처음이라 난 조금 놀랐다.
“응, 맞는데. 갑자기 그건 왜?”
이수는 여전히 앞을 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물었다.
“…… 먹고 살기 힘들지 않아요?”
나는 그를 빤히 보았다. 와, 이렇게 직설적으로 묻는다고? 무례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저 이 친구가 말수가 적은 이유를 좀 알겠다, 싶달까.
“당연한 걸 뭘 물어.”
“…… 그런데도 글을 쓰는 이유가 있어요?”
잠시 틈을 두고 묻는 이수의 질문에는 정말 글로 밥 벌어먹기의 고단함이 궁금하다기보다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본인의 고민이 은근히 감지된다.
“그것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으니까. 워낙 어릴 적부터 써온 데다가,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원하는 일을 좇으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고. ”
“……”
다행히(?) 이수는 여기서 더 뭔가를 묻진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끝으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말을 거는 대신, 숙소까지 묵묵히 옆에서 걷기만 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적당히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절로 눈이 감긴다. 그 멋진 부엌을 오늘 하루밖에 쓸 수 없고(공립 알베르게는 기본적으로 1박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같은 지역에서 타 알베르게로 옮기는 것은 상관없다. 사설 알베르게도 숙박일수 제한은 없다고 알고 있다), 이 쾌적한 침대에서 하룻밤 밖에 머물 수 없으며, 훌륭한 세탁기와 자판기의 예술적인 카푸치노를 뒤로 하고 내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퍽 유감스럽다. 그래도 떠난다. 이 길을 걷기로 한 것은 스스로의 결정이니까, 내겐 완수해야만 할 이유와 책임이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