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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여행자 Aug 06. 2023

직장인의 취미

내 월급의 20%는 학원비

2년 동안 미국 연수를 마치고 오랜만에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짐 정리를 하다 발견한 길쭉한 검정 네모 상자. 먼지가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물티슈에 세제까지 묻혀 5년의 먼지를 걷어냈다. 5년 전 구매한 해금이었다. 외국에서 생활할 일이 많으니 휴대할 수 있는 전통악기를 하나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5년 전 종로의 해금 학원에서 1년 정도 레슨을 받았었다. 정간보도 제법 읽고 가요 몇곡을 연주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배웠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해금은 낯설었다. 활 잡는 법 부터 소리를 내는 방법까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악기 값 50만원에 다달이 낸 레슨비까지. 이렇게 또 얼마되지도 않는 월급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건반이나 베이스처럼 밴드 악기가 아니어도 크로스오버로 함께 연주할 수 있으니 회사 밴드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회사 내 밴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밴드 활동을 하고 계신 직장 상사분께서는 해금도 대환영이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그렇게 용기를 얻어 유튜브를 보고 활잡는 방법부터 다시 배웠다. 몇일간 혼자 연습해보니 한두달이라도 다시 레슨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해금 학원을 등록했다. 대면레슨도 받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연주하니 해금 케이스의 먼지를 털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등록한 학원 개수가 하나 더 늘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스스로 만든 학원 뺑뺑이를 돌고 있다. 토요일 아침이 제일 바쁘다. 08:30 첼로 레슨, 10:00 필라테스, 12:20 해금레슨.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 학원 가기가 제일 싫었고 선생님이 한 곡 칠때마다 포도알갱이 색칠을 하라고 하면 연습도 안하고 포도알 색칠하기 바빴었다. 이제는 내가 원해서 내 돈으로 다니는 학원이라 그런지 어떻게든 최대한의 효과를 거둬야겠다는 생각이다. 해금도, 첼로도 제법 소리가 큰 악기들이라 집에서 연습할 땐 눈치도 좀 보이지만 예습도 복습도 철저하다.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 금요일 저녁에는 술도 마시지 않는다.   

매일 아침 회사 근처에서 하는 운동비용까지 포함하면 대략 월급의 20%를 이런저런 취미활동에 쓰고 있다. 생각해보면 악기 레슨비용과 운동비용은 수학/영어 과외처럼 고등학교 졸업때까지만 하고 그만둘 수 있는 종류의 지출도 아니다. 프로연주자가 아니니 그만두는 순간 그동안의 투자가 무색하게 실력이 급속히 쇠퇴한다. 가끔은 “이 돈으로 다달이 주식을 한다면? 적금을 붓는다면?” 생각도 해본다. 사실 비용지출은 레슨비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툰 목수가 연장탓을 한다지만 음악의 세계를 알면 알수록 연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첼로 줄을 한단계 좋은 종류로 바꾸었더니 확실히 소리가 좋아졌다. 


동생이 곧 결혼을 한다. 동생 결혼식에서 첼로 연주를 하고싶다는 생각으로 대학원 2년동안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습했다. 중요한 날인데 아마추어 누나에게 연주할 기회를 준 동생부부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 

미국 연수 시절, 공부도 운동도 요리도 악기도 못하는 게 없는 친구들을 보며 큰 울림이 있었다. 회사생활은 하얀색, 회색, 검정색 처럼 무채색일 때가 많다. 삶이라는 도화지에 여러 색깔을 입히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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