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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여행자 Aug 15. 2023

어머니 자궁 속으로의 초대 (1)

멕시코 정글에서의 테마즈칼(temazcal) 체험

시간에 쫓겨 보고서를 쓸 때면 숨을 참곤 한다는 걸 알게된 건 테마즈칼(temazcal)이라는 의식을 치르고 나서였다. 테마즈칼은 고대 메조아메리카에서 전쟁 후에 마음과 몸을 정화시키는 의식으로 활용되어왔다고 하고, 우리나라에는 멕시코 전통 습식 사우나 정도로 알려져있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러 간 멕시코 정글에서의 첫 날, 처음으로 테마즈칼을 접하게 되었다. 


대학시절의 배낭여행 낭만을 재연한답시고 보스턴에서 칸쿤까지 가장 저렴한 비행기를 예매하고, 환승을 위해 공항에서 노숙까지 한 끝에 푸에르토 모렐로스(Puerto morelos)라는 유카탄 반도의 작은 어촌마을에 도착했다. 잠도 못 자고 도착하자마자 90분간 요가수련을 하고 잠시 쉬고 있었는데, 이어서 바로 테마즈칼을 할 예정이니 가벼운 옷을 입고 오라고 했다. 요가원에서는 한 달 간의 수련 동안 매주 테마즈칼 의식을 할 것이라고 했다. 테마즈칼이 무엇인지 모르기도 했지만, 공항에서 쪽잠을 잔 탓인지 정신이 몽롱해서 테마즈칼이 뭔지 알아보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요가복을 그대로 입고 의식이 열릴 요가원 뒷뜰로 갔다. 


뒷뜰에는 다른 수련자들 대부분이 와있었는데, 레깅스를 입고온 나를 보자마자 그런 옷을 입고 의식에 참여하면 너무 힘들 것이라고 했다. 부랴부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가보니, 이글루같이 생긴 공간 앞에 모닥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35도가 넘는 습하고 더운 날씨에 불을 보면서 무슨 명상을 하려나 싶어 가만히 기다렸다. 

머지 않아 마을의 주술사라고 하는 분이 나타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작은 그릇을 가지고 다니며 한명 한명 연기를 쬐어주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주술을 외운 다음 마른 토바코 잎을 손에 쥐어주었다. 토바코 잎은 냄새를 맡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모닥불에 살짝 뿌리라고 했다. 모두가 연기를 쬔 뒤에는 북을 치고 동서남북으로 돌며 하늘, 땅, 불, 물의 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식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글루 같기도, 찜질방의 불가마 같기도 한 공간 앞에서 절을 하고 그 곳으로 한 명 한 명 들어가기 시작했다. 벽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공간에 스무명 정도가 들어가니 무릎을 세우고 앉아야만 할 정도로 비좁아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옆사람이 닿았다. 주술사가 주문을 외우고 북을 칠 때마다 밖에 있는 모닥불에 뜨겁게 달구어진 돌이 들어왔다. 

주술사는 그 뜨거운 돌에 물과 향료를 뿌렸고, 그럴 때마다 불가마 같이 생긴 좁은 공간 안은 뜨거운 습기와 열기로 가득찼다. 뜨거운 돌이 충분히 들어오자 주술사는 좁은 입구를 두꺼운 담요 안으로 덮었고, 이글루 같기도, 불가마 같기도 한 공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숨막히는 열기로 가득했다. 주술사의 목소리와 북소리만 계속 울렸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눈을 감으나 뜨나 똑같았다. 무력했다. 이렇게는 숨막혀 죽을 것 같아 주술사에게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주술을 외우고 북을 치는 데 너무 집중했던 나머지 주술사는 나가겠다는 나의 말소리를 한참이나 못들었다. 겨우 내 말을 들었을 때, 주술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참아보라고 했다. 일단 숨을 쉬라고.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당장 죽을 것 같은데 못 나가게 한다고?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주술사 말대로 숨을 쉬어보기로 했다. 노래와 북소리에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작고 길게 숨을 규칙적으로 쉬어보았다. 눈을 감으나 뜨나 어둠속에 있으니,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져보기 위해 눈도 일부러 감았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이렇게는 죽겠다 싶었다. 다른 수련자들은 다들 잘 견뎌내는 것 같았는데 나만 자꾸 나가야겠다고 하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결국 주술사의 허락을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떤 주술사들은 매우 엄격하게 중간에 나가는 것을 통제한다고 했다. 마음과 몸을 정화하려면 스스로를 이겨내는 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떻게 허락은 받아 냈지만 나가는 것도 문제였다. 천장이 낮아 일어설 수도 없는 공간에 아무것도 안 보이니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달구어진 돌에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결국 다른 수련자들이 내 발목을 잡아주어 밖으로 나왔다. 몸에 있는 모든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이 어지러웠다.  옆에 있는 해먹에 누웠고 정신을 잃다시피 잠들었다. 


(다음 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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