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하는 보드게임은 <캐스캐디아> 이외에, <이스탄불>, <독수리 눈치싸움> 그리고 <티켓 투 라이드>로 4가지가 되었다. 각각이 워낙 유명하고, 보증이 된 게임들이라 샀다. 부모님들과도 문제없이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에, 만약에 부모님 세대와 보드게임을 하고 싶다면 상기된 네 가지 게임을 추천한다. 산 게 아깝지 않을 정도로 수도 없이 플레이하고 있다. 따로 게임을 한다거나 영화를 보고 싶어서 빠지겠다고 하면 대놓고 삐친 티를 낼 정도다. (...)
주말에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보드게임 카페를 가게 됐다. 집에서 하는 보드게임이 재미없는 건 아니지만 친구들하고 서너 시간씩 걸리는 전략게임을 하고 싶었다.
1. 오를레앙
보드게임 카페 사장님께 추천받았다. S가 합류하기 전에 우리끼리 먼저 만나서 3인 플레이를 하다가, S 합류 후 판을 엎고 4인 플레이로 재시작했다. 오를레앙은 '백 빌딩'이라고 하는 시스템을 차용한 게임이다. 백 빌딩은 각 플레이어가 가방(bag)에 토큰을 넣고, 가방에서 토큰을 꺼내면서 효과를 발동하는 게임인 거다. 이런 게임에서 유명하고 재미있는 건 <돌팔이 약장수>일 것이다.
실제로 <돌팔이 약장수>가 출시되기 이전까지는 <오를레앙>이 가장 유명한 백 빌딩 게임이었다고 한다. 무려 2014년에 출시된 게임이니까, 출시된 지 9년째가 된 거다. 덱 빌딩이든, 백 빌딩이든 실력이 100%로 적용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변수도 많고 재미도 있는 거겠지. 나는 덱 빌딩보다는 백 빌딩이 조금 더 재밌게 느껴지는데, 내가 구성한 빌드가 곧바로 적용되기 때문인 것 같다.
백 빌딩 : A만 있는 가방에 B를 넣었을 때, 다음 라운드 때 곧바로 B를 뽑을 확률이 생긴다.
덱 빌딩 : A만 있는 카드 더미에 B를 넣었을 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당분간 B 카드를 이용할 수 없다.
그러나 기껏 재화를 모아 C를 사더라도, 게임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을 확률(...) 역시 이론적으로 존재한다. <오를레앙>에서는 백에서 뽑는 토큰의 수를 늘린다거나, 배치하고 활성화는 시키지 않아서 가방 안의 토큰 수를 조절한다거나, 배치를 자동으로 해주는 기어를 설치하는 것으로 확률을 나름대로 조정할 수 있게 했다.
펼쳐져 있는 걸 보면 좀 아득해지긴 하는데, 은근히 간단하다.
<오를레앙>의 재미는 각 토큰들이 한 가지의 기능만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다. 각 플레이어는 라운드마다 가방에서 일정 개수의 토큰을 뽑아, 개인판에 배치를 한다. 이 토큰들은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여행자를 전진시킨다든지, 마을에서 추종자를 고용한다든지, 농부, 수도사, 기사 등을 영입하는 등의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배치 단계는 모두가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서로 눈치싸움도 하게 된다. 누가 내가 하려던 행동을 선수 쳐서, 눈앞에서 보상을 뺏어가는 상황도 종종 나온다. <오를레앙>은 확장판도 다양한데, 우리는 사장님의 추천으로 '교역과 음모' 확장판을 추가해 플레이했다. 아무래도 느긋하게 점수 버는 데 집중하기보단 서로 치고받고 싸우면서 끌어내리는 게 더 재미있긴 하다.
전반적으로는 무난한 느낌이 들었다. 인터액션이 강력하게 작용될 때도 있으나, 더 큰 인터액션으로 받아치는 게 가능하기도 하고. 그래서 편은 만들지 못하더라도 적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모두의 견제대상이 되는 1등을 제외하고 말이지... 백 빌딩이라는 매력적인 요소를 잘 활용했고, 룰이 엄청나게 복잡한 것도 아니며, 점수 쌓는 방법(빌드)도 다양하기 때문에 게임 자체가 주는 흥미로움이 있다.
다만 보드게임을 하는 데 필요한 건 지능이 아니라, 넓은 책상과 체력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어마어마한 플레이타임(초회 플레이라 그런지 세 시간 넘게 소요됐다.)과 게임판의 크기 압박(개인판, 공용판, 확장판에다가 추가로 확장되는 판도 있다),준비/마무리 과정이 귀찮다는 게 크게 느껴지긴 한다. 그러나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니까. 적당히 실력과 운을 겸비한 백 빌딩 게임을 해보고 싶다면 <오를레앙>도 좋은 선택이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징크스가 있는데, 'S가 처음 하는 게임은 항상 이긴다'는 것이었다. 게임 이해도가 좋은 건지, 모두가 처음 보는 게임을 했을 때 S는 매서울 정도로 강하다. 그런데 이번엔 3인 플레이를 하다가 엎고 4인 플레이를 해서였는지, 난데없이 내가 1등을 했다. 내 기억상으로 첫판 1등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 똑똑이들 사이에서 1등 하는 남자.
2. Y의 장례식
<Y의 장례식>은 머더 미스테리 류의 게임이다. 예전에 JTBC에서 방영했던 <크라임씬>처럼, 각 플레이어가 이야기 속의 인물이 되어 연기를 하며 살인자를 찾는 거다. 두뇌싸움도 두뇌싸움이지만, 연기력과 순발력 등이 필수로 갖춰져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나는 좀 젬병이다. 거짓말 치거나 당황하는 게 너무 티가 나기 때문이다. 표정도 잘 못 숨기고. 눈치가 좀 빠른 이들이랑 같이 게임을 하게 되면 금방 탄로가 나겠지.
이전에 같은 장르의 게임인 <서스펙트 게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항상 새로운 시나리오를 할 때마다 '범인만 아니게 해 주세요'하며 빌었다. 마피아 게임 같은 걸 해도 난 마피아보다는 선량한 시민이 더 좋다... 죄는 짓고 살지 말아야지. 나같이 허술하고 덤벙대는 사람들만 죄를 지을 수 있었다면 우리나라 범죄율은 현격히 낮았을 것이다.
증거품 수집 방식이 독특하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자세한 리뷰는 할 수 없지만, 머더 미스테리 류의 게임을 처음 해본다면 다른 게임들보다 <Y의 장례식>이 좋은 선택일 수 있겠다. 다른 게임들보다 조금 더 본인의 룰을 이해하기가 쉬운 것 같다. 어떤 게임을 하든 '누가 어떤 역할을 잘 소화하느냐'에 따라 재미는 갈리겠지만...
그리고 약간 전통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규칙이 있는데, '머더 미스테리' 게임에서 등장하는 피해자는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긴 하다. 피해자가 보통 정말 나쁜 사람이다. 죽어도 싸다. 그러니까 그런 일은 없겠지만 살인자를 연기한다고 해서 죄책감 같은 걸 가질 필요는 없겠다.
그래도 살인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넘어가자.
3. 쿼리도
<쿼리도>는 멘사에서 추천해 준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게임들의 특징이라고 하면 룰을 이해하는 건 쉽고 게임을 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1대 1의 경우에는 머리만 잘 쓰면 실력으로 이기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4명이서 하게 된다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패배해 있기도 한다.
쿼리도 억까 당하는 방법 : 여러 명이서 한다.
쿼리도의 게임판은 9X9의 격자로 나뉘어 있다. 각 플레이어가 자신의 앞쪽을 진영으로 삼는다. 1대 1의 경우 마주 보고 앉으면 되고 4인의 경우 변에 따라 앉으면 된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말을 한 칸 움직이거나 장애물 플레이트를 놓는다. 말은 전후좌우 한 칸씩만 움직일 수 있고, 플레이트는 한 번 설치하면 움직일 수 없다. 상대방의 말과 딱 붙어 마주할 경우, 상대방의 말을 뛰어넘어 전진하는 게 가능하다. 차례를 반복해서, 상대방의 진영(4인은 맞은편 진영)에 말이 도달하면 승리한다.
이동을 할 것이냐, 견제를 할 것이냐. 상대방이 쉽사리 전진하지 못하도록 플레이트로 미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고. 반대로 길을 완전히 막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내게 놓이려는 미로를 파훼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를 앞서 보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임이다. 나같이 한 치 앞도 잘 못 보는 불나방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게임이다.
실제로 H, S, Y와 4인 플레이를 했을 때, 두 번 연속으로 꼴찌를 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앞서 나가고 있다가, 왜인지 모르게 순식간에 꼴찌가 되었다. 이건 좀 억울했을 지도... 역시 보드게임은 지능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