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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주리 Feb 13. 2023

<광해 : 왕이 된 남자>와 팩션의 정석 <올빼미>

개인적인 감상평 6

<광해 : 왕이 된 남자>

별점 : 4개

일자 : 2023.02.12

장소 : 집


<올빼미>

별점 : 4개

일자 : 2022.12.23

장소 : 롯데시네마 센트럴락




팩션은 팩트+픽션의 합성어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뼈대에,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이 살을 붙여 탄생한 창작물인 것이다. 이전에 다루었던 <핵소 고지>도 실존인물을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에 힘을 실었다.


아무래도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신뢰를 하는 편이다. 팩션 영화는 사실성을 충족한 상태, 그러니까 웬만해서는 작위적인 흐름으로 전개될 일이 없다. 각본상에서 좀 더 그럴듯한 전개를 위해 골치 아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에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상상을 더할 여유가 생길 것이다. 역사적 사실의 맥락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실패한 팩션 영화의 경우, 이러한 점에서 공분을 사는 경우가 많다.

"감독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인물을 나타낸 건데 무슨 문제 있나요?"

그럴 수 있을까? 대중은 빙다리 핫바지가 아니다. 대중이 팩션 영화에 몰입하는 이유는 명백한 사실체계가 갖춰진 상태에서, 영화 특유의 상상력이 맞물리는 재미 때문이다. 그걸 지키지 못했던 <나랏말싸미>나 <군함도>, <신기전> 같은 영화들은 오함마에 맞았지...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광해 : 왕이 된 남자>를 이제야 봤는데, 근래 봤던 <올빼미>와 시기적으로 어느 정도는 이어지기 때문에 엮어서 다룰만하다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광해와 팩션


<광해 : 왕이 된 남자>가 팩션 영화로 훌륭한가?를 따진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을 다루었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영화는 실제로 광해군일기의 기록이 15일간 없었다는 것을 모티브로 하여, 동화 '왕자와 거지'를 본뜬 영화다. 붕당정치와 권력다툼이 심화되면서 '광해'가 자신과 똑 닮은 '하선'이라는 대역을 이용해 독살의 위기에서 피하려고 한다. 엄청나게 독특한 상상은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아는 맛이다. 이병헌의 사실상 1인 3역 (광해, 하선, 광해를 연기하는 하선) 호연이 곁들여지면서 몰입감이 상당했다.


영화는 광해군의 민생정책을 대역 하선을 통해 나타낸다. 그러나 대동법이니 호패법이니 쥐뿔도 모르던 기생 출신 하선이 15일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정책을 익혀 실제로 반영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실제 대동법과 호패법은 광해군 1년, 2년에 진작에 실행되고 있던 법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명백하게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광해 : 왕이 된 남자>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점이 재밌게 작용한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양면성이 있었던 광해군의 면모에 비유한 전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 거짓말했네? 해머 가져와."

가 아니라...

"야, 어떻게 있었던 일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냐. 적당히 MSG도 뿌려야 재밌지."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말이다.


흔한 조선의 광대


그러나 역사왜곡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안고 가야 하겠다. 영화는 영화로 볼뿐인 게 아니다. 모든 역사를 꿰뚫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이게 픽션인지 팩트인지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영화 감상 전후에 역사적 사실을 공부해 보는 관객은 많지 않다... 따라서 영화가 어느 정도는 구분점을 둘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유정호의 심문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광해가 폭군이었다는 점은 영화를 보다 보면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연기의 힘인지 분장의 힘인지, 광해의 모습을 연기하는 이병헌의 얼굴은 뭔가 섬짓하다... 하선을 연기할 때는 안색이 유난히 밝고.


그나저나 이병헌은 웃으면서 우는 연기를 왜 이렇게 잘하는 걸까...


팩션 위를 활공한 캐릭터들


<광해 : 왕이 된 남자>가 천만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다. 실존 인물이었던 허균과 중전을 제외하면 모두가 가공의 인물이다. 주인공인 광대 하선부터 시작해서, 극 중 인물들을 유기적으로 이어준 매개체 사월이, 밤낮 가리지 않고 물심양면 도와주는 조 내관, 무뚝뚝하고 고리타분하지만 마음은 약한 도 부장 등의 주요 인물이 실존 인물보다 더 입체적으로 캐릭터화되어 있다.


끄흐륽, 전하아아앍.

영화에서의 웃음 코드도 대부분 이러한 인물에서부터 비롯된다. 역사적 사실에 오히려 구애받지 않는, 오리지널 캐릭터만 가능한 표현이다.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극 중 생활은 사월이라는 어리지만 똑 부러지는 캐릭터로 유연하게 풀어내고, 관객들도 느낄 수 있을 법한 '왕이 바뀐 것 아닌가'에 대한 의문을 도 부장과 조 내관을 통해 해결해 낸다.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아무래도 하선이다. 하선은 어디까지나 '왕 연기를 엄청나게 잘하는 광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로 하여금 차라리 하선이 진짜 왕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껍데기는 거짓일지언정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바라는 어진 통치자의 상과 일치하다.


올빼미와 팩션


<올빼미>는 광해가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후의 이야기이다.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귀환한 직후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올빼미>역시 대담하게 픽션을 주입했는데, 소현세자의 죽음이 학질이라고는 하나 독을 쓴 것처럼 온몸에서 피가 흘렀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것이 독살이며, 그것을 목격한 이가 있고, 그가 다름 아닌 맹인 침술사라는 설정이다.


<올빼미>가 가져다주는 재미야말로 실록에는 기록되지 않은, 실록 사이의 행간을 채우는 팩션의 묘미일 것이다. 더불어 맹인 침술사라는 참신한 설정이 몰입감을 더한다.


극 중 류준열이 연기한 경수는 주맹증이라는 독특한 병을 앓고 있다. 빛이 많은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어두워지는 밤에는 앞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는 맹인이면서 볼 수 있고, 보았으면서 못 본 척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감시자. 제목 그대로 올빼미다.


유해진이 왕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던 <올빼미>


맹인 캐릭터


맹인 캐릭터가 주요 인물로 나오는 영화는 거의 못 봤다. 기껏해야 <맨 인 더 다크> 정도. 스릴러 영화에서 시각장애는 엄청나게 활용성이 낮으면서... 매력적인 캐릭터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뭘 혼자서 하기가 쉽지 않다. 시각장애가 아무래도 다른 장애보다 좀 더 치명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런 점에서 오히려 스릴러적인 요소를 충족한다.


<올빼미>에서는 경수의 시점을 굉장히 잘 표현했다. 보였다가, 흐릿했다가, 안보였다가 하는 장면전환이 몰입감을 한층 높인다.


보통 맹인 캐릭터에 대한 클리셰 혹은 선입견은 대충 이렇다.

1. 시각을 제외한 다른 기관이 월등히 발달해서 큰 불편함 없이 살고 있다.

2. 시야를 방해하는 기술이나 시각을 발동 조건으로 한 기술이 일체 무효화된다.

-소리를 통한 공격에는 매우 취약하다.

3. 초감각이 발달하여 '마음의 눈'과 같은 대체 시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PS. 안대를 두른 검사를 만나면 도망쳐라.

눈... 감지 않았다면 좋았을 터인데.

시각장애. 캐릭터적으로 보면 너무너무 무섭다만...


경수도 극 중에서 청각이 발달하여 환자를 남다르게 살피는 면모를 보인다. 실제 시각장애인이 타 감각이 더 뛰어나게 변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부단한 노력이 빛을 발한 형태일 것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청각이 뛰어날 것이라는 등의 편견을 가지는 것은 지양해야 하겠다.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하기


<올빼미>의 메세지는,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척하는 게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사회에서 '보았다'고 말하는 맹인의 목소리는 얼마나 울림이 큰가.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척을 하는 경수에게 소현세자는 오히려 확대경을 선물한다. 세상을 더욱 또렷하게 바라보라는 말이다. 그 뒤에 경수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는 건 말 그대로 필연적이다.


<올빼미>는 단순한 사극 스릴러가 아니다. 수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영화다.


경수는 하층민이지만, 능력만큼은 출중한 침술사다. 그의 침술은 너무 훌륭해서 때론 무기가 된다. 침술을 받는 자들이 하나같이 권력을 쥔 자들인데, 어느 부분에서는 경수에게 목숨을 맡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경수는 왕을 마비시키거나, 심지어는 죽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하층민의 근거 없는 도발이 아닌 것은 관객 누구나가 다 알고 있다. 비약은 있겠지만 이것을 지금의 사회에 비유한다면, 하층민인 경수에겐 왕을 바꿀 힘이 있다. 즉, 서민에게서 권력이 나온다는 메타포일 것이다.


경수는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조는 내내 시달린다. 권력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내 경수가 킹 슬레이어가 되며 극이 마무리되는 이유는, '그게 단지 사이다여서'가 아니다. 부패한 왕을 하층민이 처단하는 결말로서 메세지를 던지는 것이다.


경수가 주맹증 침술사로 등장하는 이유 또한 스릴러적인 요소를 위한 것이 아닐 테다. 어두운 밤이더라도 똑바로 볼 수 있는 올빼미. 극 중 권력자들은 밤이라 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경수는 이들의 추악함을 똑똑히 목격했고, 본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경수가 궁에 들어간 이유는 침술이 뛰어난 이유도 있었겠지만 진실은 '쉽게 속일 수 있을 것 같아서'일 것이다.


소현세자의 암살은 계획된 것이었으니, 경수의 등용 역시 그것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보지 못할 자고, 보았어도 못 본 척할 자로서 적임자였던 것이다. 다만 이들이 간과한 것은 경수가 올빼미라는 점일 테다. 패배하여 허탈하게 걷는 경수의 모습은 더없이 약해 보이지만, '제가 다 보았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인조를 비롯한 권력자들에게는 비수와 같다.


세상이 잘못되었을 때, 우리는 보통 암흑기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어두컴컴한 때에도 올빼미는 볼 수 있다. 소현세자가 실제 그런 인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중요한 건 극 중에서 소현세자의 태도로 비유되는 어진 임금의 상이다. 보았어도 못 본 척하는 백성에게 확대경을 선물하는 행위는, 백성이 눈 가리지 않고 똑바로 세상을 바라보길 원하는 권력자로서의 올바른 태도다.


그리고 이 메세지는 어쩐지 요즘에서 더 와닿는 것 같다.


제가 다 보았다고요!



팩션 영화가 가져야 할 태도


사극 영화들은 웬만해서는 팩션일 수밖에 없다.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으니까. 적혀있는 몇 줄의 글만 읽고 정황상 추측하고 상상할 뿐이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관객으로서 영화에게 바라는 단 하나는 아무래도 즐거움이다.


아무리 사실적으로 나타냈더라도 즐겁지 않으면 꽝이고, 아무리 거짓말이어도 즐거우면 장땡 아닐까. (막 나가라는 소리는 아니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관객은 아마 역사적 맥락을 최소 충족한 상태에서의 유쾌한 상상력에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이순신을 예로 들면 '영웅적인 면모 뒤에 가려진 인간적이고 솔직한 남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팩션 영화의 힘이다. 상상해 보랬더니 이순신을 매국노로 만들거나 겁쟁이로 만들면 해머 맞는 거다. 관객은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고, 생각보다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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