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의 가장 아래부터 가장 위까지 이어주는 하나의 기둥 역할을 하는 나선형 계단이 있다. 계단의 양옆을 모두 기둥으로 사용하면서 양옆이 막혀있는 긴 원기둥으로만 보인다. 이 건물의 최상층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뷰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에 '뭐 얼마나 대단한 뷰를 가졌길래'라는 의심 반과 어쨌든 가서 인스타그램용 사진도 찍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한 번쯤은 올라가 봐야 한다는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오르기로 결정한다.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뭐가 그렇게 비싼 건지, 감당하지 못할 돈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엘리베이터를 위해 그 돈을 감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 돈이면 오늘 저녁 한 끼를 아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있고 언 듯 보기엔 별로 높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이 계단을 호기롭게 오르기 시작한다.
가끔, 아주 가끔 계단에 나있는 조그마한 창이 있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너무나 작아 그를 통해 천장을 올려다볼 수도 없고 아래를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양옆을 볼 수 있는, 아마 공기의 순환을 위한 자그마한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둥의 바깥을 봐도 별다르지 않다. 이 건물이 무슨 백화점도 아니고, 층마다 그렇게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듯 보이는 바깥 풍경만으로는 나의 위치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내려오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라도 볼 텐데, 내려오는 사람이 없는걸 보아하니 내려가는 길이 따로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다. 하긴 많아봐야 2명이 동시에 설 수 있는 좁은 나선형 기둥에 내려오는 사람까지 있다면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졌겠지만 올라가는 시간도 많이 지체될뿐더러 안전이 썩 보장될 것 같지는 않아 보여 너무나 끔찍했을지도 모른다.
오르기 시작한 지 한 20분 됐을까, 사실 얼마나 됐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20분 정도 된 거 같은데, 출발할 때 시간을 딱히 확인해 보진 않아서 그런 걸까? 슬슬 같이 올라가려고 했던 친구들이 지쳐가기 시작한다. 이미 몇몇은 출발한 지 별로 되지도 않았을 때,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 20분이 맞는다면 그래도 꽤나 오래 버틴 게 맞지만 아직 더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꽤 무겁게 다가온다.
결국 5명 중에 나를 포함한 두 명만이 계속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2명의 친구들은 조금 쉬었다가 올라온다고 한다. 쉬지 않고 가보지만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사실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 지루한 모험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도대체 이 길의 끝에 무엇을 보고 가는 건지, 어느 순간부터는 그 멋진 풍경이 목적이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관성적으로 무의식과 함께 계단을 오른다. 땀이 난지는 오래고, 물을 좀 마시고 싶은데 물을 가지고 오지도 않았다. 차라리 빨리 올라가서 물을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그 위에 물이 준비되어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렇게 힘들게 올라갔는데 진짜 별게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이쯤 되면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언젠간 끝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과 옆에서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같이 가고 있는 친구에 의지하여 일단은 계속 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시간을 확인한 후로부터 대충 20분이 흘렀으니, 3~40분은 걸어서 이 길을 올라온 것 같다. 무언가 조금 더 밝은 빛이 위쪽에 보이는 것 같다. 햇빛이 계단의 끝을 비추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마침내 탑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목적지와 다 와가니 오히려 생기를 되찾아 더 빠르게, 순간 최고 속도로 탑의 끝에 도달해서 바깥 풍경을 본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를 휘날리고 도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탑의 경관은 퍽 아름다웠다. 땀을 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아름다웠던 풍경이었다.
탑을 막 다 돌아보고 물을 사 먹기 위해 매점 같은 곳에 들어갔다. 앗, 어떻게 된 일인지 중간에 포기한 두 명의 친구들이 우리보다 먼저 올라와 있었다. 분명히 우리는 끊임없이 걸었던 것 같은데 우리보다 어떻게 빨리 올 수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우리가 구경하는 사이에 도달해서 매점에 먼저 온 건지 의문을 품은 채 물어봤더니, 알고 보니 중간에 쉬었던 그곳에 조그마한 길이 나있었는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고 한다. 쉬지 않고 열심히 올라온 것에 대한 약간의 자부심이 있었지만 사르르 녹아버렸다. 잠깐이지만 허무가 온몸을 덮쳐 내가 했던 노력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더니 길이 여러 가지였나 보다. 초기에 포기한 친구에게 엘리베이터를 탄 친구가 연락을 해보았을 때, 이미 다시 내려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서 공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보았던 넓은 공원 위의 작은 점 중 하나가 친구였음이 분명하다.
얼마나 걸릴지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까지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올라가고는 있다. 처음에는 그 목적성이 분명했다. 좋은 전망과 그를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 등을 들고 호기롭게 무언가를 시작하지만 언제 목적에 도달하느냐는 사람들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힘들게 걸어온 길을 운이 좋게 중간에 엘리베이터를 발견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했다고 해서 그것이 불행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친구는 한가한 평화를 느끼느라 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가끔 불안이 찾아올 때가 있다. 이 길이 맞는 건지, 언제 끝나는 건지, 끝에 내가 찾던 무언가가 있긴 한 건지 하는 걱정과 불안,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자기 확신이 없는 채로 남들이 좋다고 해서 가는 목적지가 맞는 걸까 하는 불안. 그래도 일단은 가봐야 할 것 같다. 끝에 뭐가 있는지 확인은 해봐야 하니까 별게 없더라도, 적어도 다른 사람한테 별거 없었다고 불쌍한 피해자를 남기지 않기 위한 별점 테러는 남길 수 있지 않을까?
ps.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아주 부자로 보이는 옷차림의 한 커플이 있었다. 여자가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것을 보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음에 분명한 그들은 "뭐 별것도 없구먼 더럽게 비싸네"라고 했다. 내가 본 전망은 좋았는데 내가 흘린 땀이 전망을 좋게 만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