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by 거의모든것의리뷰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이 다가오면 비가 온다.


꾸준히 오는 것도 아니고, 스콜성으로 와다다다 하고 세찬 비와 그 비가 창문에 떨어지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는데 불과 몇 분 뒤,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는 듯, 잠잠한 하늘이 괜스레 야속하다. 차라리 하루 정도, 비가 내리고 나머지 날씨는 좋다면 좋을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채, 속이 왈칵 뒤집히는 수밖에.


분명히 비를 관장하는 신이 인간들의 유희에 심통이 난 것이 분명하다. 치사하게 평일에는 좋은 날씨로 연차를 쓰게 만들고 싶게 하는데, 주말에는 비를 내려 평일의 안타까움을 한층 더 짙게 만든다. 봄에, 가장 날씨가 좋을 주말에 이렇게 나쁜 날씨는 주말을 한층 더 소중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왠지 올해 하늘이 약을 올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과거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너무 과거를 미화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더위가 슬슬 공기를 데울 때쯤 내리는 비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헷갈리게 만든다. 새벽에는 춥고 낮에는 더운데, 비가 오면 쌀쌀한 것 같다. 바람막이를 항상 들고 다니고는 있지만 5월 중순까지 이렇게 입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 봄에 유난히 사람들이 잦은 감기에 고생한 것도 다 이런 오락가락한 날씨 때문에 몸이 정상적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중에 한 명이던 나는 이 날씨가 가장 몸을 취약하게 만드는 아주 악질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봄비라고 하면 뭐랄까 조금 더 낭만적이고 조금 더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뭔가 산뜻한 계절의 한가운데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함께 거세지 않게 촉촉하게 내리는 비를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요즘 내리는 비는 소나기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 습해 에어컨을 떠올리게 하고, 에어컨을 틀면 또 추워 옷을 껴입어야 하는, 하지만 더위가 함께하는 그 오묘한 짜증 남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 것을 볼 때 요즘의 비는 봄비라고 부르기엔 너무 낭만이 없다.


자연이 나를 따라주기를 바란다. 주말에 맑은 하늘을, 피크닉 날에 화창함을, 출퇴근길에 비 없는 걸음을. 하지만 자연은 우리의 계획을 따라주지 않는다. 오히려 봄비는 우리에게 통제의 환상을 내려놓으라고 속삭인다. 세상의 모든 일이 우리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매일 잊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내 계획을 방해하는 이 비가, 사실은 나를 모든 것을 통제할 수도,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모든 'J' 들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삶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문득 떠올랐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면 창가에 앉아 빗방울이 유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친구들과 운동장에 물장구를 치면서 놀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것은 하나의 작은 이벤트였다. 예측할 수 있었던 봄비에는 아침, 엄마의 우산을 챙겨가라는 소리가 함께 했고, 예측할 수 없었던 봄비에는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거나, 머리가 좀 컸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 친구와 비를 맞으며 뛰어갔었다. 그런 사건들이 삶을 오히려 풍요롭게 만들었지, 내가 예측할 수 있었던 것들은 사실 아무런 기억을 남고 있을지도 몰랐다.


오늘도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계획했던 바깥 활동이 물거품이 되어가는 순간. 주말에도 비가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오늘은 비가 왔으니, 주말엔 오지 않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동시에 요동치는 마음을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로 했다. 이 예측 불가능한, 때로는 짜증 나는 봄비를 통해 삶이 주는 작은 힌트를,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날씨가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일일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가짐뿐이라는 사실을.


5월의 봄비는 여전히 내 주말 계획을 방해하고, 옷차림을 혼란스럽게 하고, 때론 감기의 위험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원망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삶의 선물을 느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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