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그다음 날

by 거의모든것의리뷰

정말 신기한 게, 격한 운동을 하거나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게 되면 그 당시에는 사용할만하다고 느끼다가 다음날이 되면 통증이 밀려온다. 어제 사용한 근육의 위치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는 그 고통은 근육이 성장하는 과정의 성장통인지, 안 쓰던 근육의 진심 어린 투정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 고통만큼은 확실하다. 운동을 하는 중간에는 힘들 때까지 하지, 그 순간에 아프지는 않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에서 감정이 마무리된다. 하지만 다음날, 어떤 운동을 했는지에 따라 근육이 참아왔던 비명을 내지른다. 특히 잠을 한번 잔 이후로 그 비명이 들려온다는 점은 근육은 도 새벽감성을 느끼는지 활동을 할 때까지는 끙끙 앓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긴장이 풀리면 그제야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낸다. 마치 회사에서 신나게 갈굼을 당한 뒤 아무 말도 못 하던 사람이 저녁에 술을 먹고, 퇴근을 하고 나서야 그 울분을 친구들에게 썰로 풀어내듯이 근육도 사회생활을 한다.


헬스뿐만이 아니다. 모든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오랜만에 하면 고통을 수반한다. 배드민턴 같은 운동은 팔에서부터 골반, 허리까지 몸의 중심을 잡아 비틀었다고 말한다. 스키는 다리 특히 허벅지를 중심으로 긴장한 모든 근육들로 뻗어나간다. 그중의 가장 자극이 약한 활동은 수영이었다. 자유수영을 한다 하더라도 다음날까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은 특별히 느껴지지 않았다. 이래서 재활운동으로 수영을 선택하는 건가 싶다.


반대로 제일은 웨이크보드였다. 웨이크 보드를 통해 근육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시간에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고, 얼마나 쓰지 않았던 근육에 강한 자극을 주었는지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웨이크 보드를 즐긴 다음날, 온몸의 근육이 "뭐 하는 거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다음날에도, 다다음날에도 그 고통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은 단 10분씩 2번 탔을 뿐인데 관계가 없었다. 평화롭던 몸을 난도질한 것에 대한 고통의 크기는 나름 한 달에 한 번은 꾸준히 갔는데도 불구하고 혁신적으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 나름대로 고통이 감소하고 근육이 강화되면서 그 정도로 고통을 받지 않는데, 웨이크보드는 달랐다. 기계에 몸을 실어 움직이면서 끊임없는 긴장을 해서 그런 거였을 것 같은데... 웨이크보드를 타고 먹는 밥이 유난히 맛있던 게, 너무 힘들어서라고 하자.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근육이 찢어지고 더 많은 근육을 형성하기 위해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통증을 느낀다. 비단 근육뿐만이 아니라 모든 활동에서 고통을 통해, 고통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견뎌낸 이후에야, 성취를 할 수 있다. 종종 유튜브에 보이는 김종국 님이나 헬스를 하며 맛있다라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변태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그 고통이 성장의 요건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통 자체보다 그다음의 결과에 집중하면서 또 무언가를 계속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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