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은 교감선생님을 울린 신규교사의 편지
퇴임식 하루 전 교장선생님께서 던진 예고 없는 한 마디가 가볍게 톡 떨어졌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스쳐 지나가는 말이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받은 나는 천천히 교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신규교사로 교감선생님 퇴임식 편지를 낭독하게 되었다.
난생 첫 퇴임식이 얼마나 큰 행사인지,
편지 분량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밝은 분위기인지, 얼핏 쓸쓸함이 묻어나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 당시 한창 박완서 작가님 소설과 잡다한 독서로 글에 대한 근육이 막 생기려던 참이었다.
그래봐야 PT 한 번 받고 뭔가 달라진 것 같다며
팔에 힘을 주는 애송이 같았지만
퇴근 후 현실도피용으로 시작된 꾸준한 독서는 뇌를몰랑몰랑 감성적으로 만들어주었고
타이밍 좋게 부여된 글쓰기 과제는 부담과 함께
묘한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컴퓨터 자판 위에 가지런히 두 손을 올렸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처럼 소설의 5단계가 있듯이 글에는 형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편지에도간단한 단계를 지었다.
에세이에서 본 것처럼 은유를 넣기도 하고
곁가지가 많은 문장은 과감히 잘라냈다.
몇 번의 수정을 거듭하여 완성된 A4용지 한 장 분량의 편지를 프린트했다.
‘너무 길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최대한 짧고 굵게 하겠습니다’
나름 작은 위트도 있는 나만 봐야 하는 세심하고 치밀한 편지를 가방에 넣었다.
“다음으로 우리 ㅇㅇㅇ 선생님의 편지낭독이 있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혼자 너무 우뚝 솟은 건 아닌가, 하필 좌식인 샤브샤브 집이 원망스럽다 느끼는 차에 교감선생님께서 덩달아 일어나셨다.
마주 보며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감사 표현 단계‘가 끝나고
’몇 십 년 동안의 수고에 대한 존경 단계’로 넘어갔다.“긴 교직생활 동안 얼마나 오르락내리락하는 순간이 많으셨을까”
라는 문장을 뱉는데 앞에서 흡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생각한 눈물 포인트는 여기가 아니었는데…’
점잖은 교감선생님의 흐느낌은 곧 나에게로,
동료교사들에게로 번졌다.
단지 잘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써 내려간 편지에
진심이 들어갔나 보다.
관리자의 자리에서 교사들과 학생들의 그늘이 되어주신 교감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교직생활의 희로애락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그 길을 포기하지 않으신 묵묵함이.
진심 한 방울에는
눈물 한 방울이 따라온다.
30명 선생님들의 눈물은
교감선생님께서 좋은 교사이자 든든한 관리자였음을 인정하는 공감이었고 위로였다.
교감선생님의 눈물은
길었던 지난날들의 회고와 무탈히 이 순간을 지나고있음에 생각이 많아지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편지낭독 순서가 끝난 후,
선생님들의 눈물 어린 박수에 가려져 있던
교장선생님의 흐뭇한 미소를 나는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