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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인간 Oct 18. 2023

노인과 바다를 읽고  태안 바다낚시를 가다

긍정과 희망과 끈기와 삶의 이유에 대하여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최근 무언가를 위해 악착같이 노력해 본 적 있나요? 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세상이 풍요로워지면서 사람들의 끈기는 조금 약해진 것 같습니다. 조금만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포기해 버리죠. 100년 전, 200년 전, 그리고 엄청 먼 옛날에는 어땠을까요? 당장에 사냥에 실패하면 굶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위해 절대 쉽게 포기할 수 없었죠. 인류는 원래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수많은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존재.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우뚝 선 존재. 여러분 모두 그런 강한 존재입니다.



같이 간 친구

 이번에 노인과 바다를 읽고 태안 이원 방조제에 낚시를 하러 갔습니다. 저 친구는 민물낚시의 달인인데, 제가 바다낚시를 가보자고 해서 같이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낚시가 거의 처음입니다. 경기도 병점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려서 태안 이원 방조제에 도착했습니다.



아름다운 섬의 바위

  도착하고 보니, 바다도 섬도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또 방조제에 낚시하러 온 사람들도 많아 풍경이 정겨웠습니다. 방조제 입구에는 컵라면, 커피를 팔았고 버너와 주전자를 비치해서 자율 계산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라면 냄새를 맡으면서, 나중에 출출해지면 와서 사 먹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낚시하러 온 지 두세 시간 동안 아기 물고기 한 마리밖에 잡지 못했습니다. 너무 아기라서 잡자마자 풀어줘 버렸죠. 그렇게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낚시 바늘이 다 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만조 때문에 길이 막혀버린 상황

  섬에서 나오는데 아주 작은 시련이 닥쳤습니다. 만조 때문에 나가는 길이 막혀버렸어요. 당시 길이 사라졌을 때는 큰일이 난 것 같고, 많이 당황했는데 나오고 나니 별일 아니더군요. 그냥 신발과 바지만 젖으면 끝나는 일이었는데, 너무 문명화된 나머지 그거조차 싫었던 거죠. 그래도 섬에서 나오긴 해야 하니, 내 안에 남은 작은 야생성을 발휘했습니다. 오프로드로 산으로도 올라가 보고(이건 좀 위험했습니다.), 바위를 잡고 물에도 들어갔죠. 그렇게 무사히 섬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허기진 우리는 집에 가는 길에 수원에서 갈비를 허겁지겁 먹고 헤어졌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나약해진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이틀 밤낮으로 망망대해 위에서 5.5m짜리 거대한 청새치와 싸웠습니다. 식사는 바다 위에서 잡은 물고기 회로 역겨움을 참으며 때웠고, 여벌옷도 없이 정오의 더위와 새벽의 추위를 견뎠습니다. 피부는 찢어졌으며, 왼손은 쥐가 나서 펴지지 않았죠. 작살이 사라졌어도 잡은 청새치를 노리는 상어를 향해 몽둥이를 내려쳤습니다. 과연 현대인이 이 고독과 불안, 괴로움, 절망, 포기의 유혹을 견딜 수 있을까요?


 노인은 언제든지 포기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84일 동안 허탕을 칠 때에도, 청새치가 미끼를 문 후에도, 잡은 고기를 상어들이 노릴 때에도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었고 누구도 노인을 욕할 수 없었죠. 하지만 쿠바의 노련한 어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청새치를 비싼 값에 팔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에는 물질적 가치가  우선적으로 (때에 따라 유일하게) 숭배되지만, 노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기를 낚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노인의 삶이었습니다.



 노인은 치열하게 고기 잡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습니다. 열악한 상황과 반복되는 시련에도 항상 긍정적이었습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고기를 잡는 데에만 집중했죠. 고통스러운 상황 따위는 그냥 인정해 버리면 그만이었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왔으니 고기 잡는 것만 생각한 거죠. 또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노인에게는 애초에 포기라는 옵션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끝까지 처절하게 시련과 맞서 싸우죠. 내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르든, 결국 청새치의 뼈만 남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끝까지 목표를 위해 싸울 뿐이죠.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숭고하고 강한 존재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 [노인과 바다]를 읽어보세요. 잊고 있던 여러분 안의 강한 DNA가 깨어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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