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너한테 맞춰주지 않아. 너가 세상에 맞춰야지".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하고 모두의 말 하나하나, 약한부분 하나하나에 현실적으로 맞춰줄 수 없음을. 나의 약한 부분, 보편적 정서나 기준에서 맞지 않는 부분들을 다수가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 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는 속앓이를 했다. 바깥에서 열몇시간을 지내는 직장인으로서 속이 안좋은 것은 곤욕스러운 일이다. 바깥 밥들이 자극적이고 맵고 기름진 것들 위주의 식단인 것을 생각하면 위장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고를 수 있는 선지는 몇 되지 않는다. 처음 떠오르는 흰죽은 내가 가장 안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밋밋하고 아무 맛 느껴지지 않고 굳이 먹고 싶지 않은(지극히 내 취향이다).
집밥이라면 달라진다. 약해진 속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로 모아 조리를 하면 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황태국이었다. 무의 흰부분을 대충 썰어내 황태와 함께 볶다가 간장 한두스푼, 소금 약간 그리고 파를 넣어 끓인다. 물을 적게 넣고 끓이면 분명 자극적인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는데 강렬하고 진한 맛이 나온다. 강렬함은 꼭 자극적인 곳에서만 오지 않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는 맛이다. 집이니까 이런 맛을 낼 수 있지. 남들이 만들어준, 남이 만든 황태국은 물을 훨씬 더 많이 넣기에 이렇게 진한 무의 맛은 안나온다.
약해진 내 속을 달래줄 수 있으면서 진한 맛을 같이 준 집에서 끓인 황태국. 젓갈 향을 좋아하지 않아서 젓갈을 안넣고 담근 우리집 김치. 유제품을 먹으면 배가 아파서 대신 오트밀크로 만든 푸딩. 집은 저마다의 약함을 감싸안아주는 공간이다. 바깥에선 나의 약점, 나의 단점으로 비춰지던 것들은 이 곳에서는 그저 나의 특이한 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휘둘리지 않고 내 인생을 내가 스스로 가다듬고 안아줄 수 있는 공간, 집.
바깥도 언젠가 그런 공간으로 작용할 수 있는 때가 올까. 아니면 그것은 사회적 한계상 결코 기대해서는 안되는 부분일까. 이러한 집이 있다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 감사할 부분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바운더리를 넓히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일까. 물리적 집 밖을 넘어선 공간에서 나의 집을 찾는 것은 욕심인 걸까.
유튜브 쇼츠로도 보실 수 있어요.
https://youtube.com/shorts/GUEadT2xJ9U?si=bitfDMGkUDThv7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