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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꽃향기 Nov 20. 2024

퍼즐을 맞춰 보아요.

몸과 마음에 깊이 새기다.


새 학년도를 맞이할 때마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 심각한 고민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교실 환경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이다.  머릿속으로 대략 그림이 그려져야 3월 초 미술 시간이나 창체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




학교마다 환경에 차이가 있다. 운이 좋으면 게시판이 하나뿐인 교실을 만나게 되는데 아이들의 작품을 한 점씩만 게시하면  끝이 난다. 그리고 미술시간마다 작품을 바꿔주면 된다.  때때로 게시할 공간이 너무 없어서 아쉬울 때도 있다.



대부분의 교실은 게시판이  세 구역으로 나뉜다. 양쪽 두 개의 판은 8절 도화지 크기의 작품을 재적수에 맞게 붙이면 끝난다. 문제는 가운데 게시판, 그리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이 공간을 어설프게 꾸몄다간  뒤쪽을 바라볼 때마다 심난해진다.



머리를 굴리고 굴리다가 만들기 작품을 붙이기도 한다.  독서 사다리, 학급 안내판, 종이접기,  기타 등등 게시할 수 있는 작품의 종류는 다양하다.  처음엔 공간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좀 특별한 그리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계절의 흐름을 타지 않아 교체 고민을 따로 해도 되지 않으면서  우리 반만의 특별한 그 무언가를.  금손 교사들의 아이디어를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틈틈이 검색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았다. 그 와중에 만난 신세계, 바로 사진 분할 프로그램이었다.



3월의 첫날,  단체 사진을 찍어본다. 으쌰 으쌰 힘을 내 보자고, 우리는 하나라는 다섯 글자를 마음에 품어보자고 마르고 닳도록 의미를 부여한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있는 사진은 바로 컴퓨터 바탕 화면에 깔린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지만, 나 역시 진정한 참 교사가 된 것 같아 흡족해진다. 컴퓨터 화면을 전환할 때마다 나오는 자신의 모습에 탄성을 지를 때도 있다. 물론 일주일 정도 지나면 감동은 끝나 버리고  익숙해지지만. 이 멋진 단체 사진을 그냥 두기가 아까웠다. 분할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 '꿩도 먹고 알도 먹고'를 실천했다.



분할 프로그램에 사진을 한 장 띄운다.  편집 기능을 확인해 본다.  사진을 수채화 느낌, 혹은 색연필화 느낌으로 바꿔 준다.  학년 수준에 맞게 농도를 조절한다. 저학년은 진하게, 고학년은 연하게, 단계를 적절히 선택한다.




그리고 사진을 아이들의 재적수에 맞게 조각낸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역할을 토스한다. 분할한 사진을 뒤죽박죽 칠판에 붙여 놓고 무작위로 나눠 준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의 얼굴이 나온 조각이 있는지 찾아 달라는 민원이 접수된다. 학기 초에는 이 과정이 꽤 유익하다.  간혹 -극소수의- 부끄러움이 많고 말수가 적은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스스로 나에게 다가온다. 함께 찾아보고, 살펴보며 선택권을 넘겨준다.




미술 활동에 자신감이 없는 친구들은 가장자리 영역을 선택하기도 한다. 자칫  협동 작품을 망쳐 버릴까 봐 부담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무작위 배부를 시도하지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조각을 고르며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어 간다.




그렇게 조각을 하나씩 가져가면 본격적으로 색 입히기 작업이 시작된다. 또다시 예상치 못한 민원이 접수된다.

"선생님, 쟤가 제 얼굴 주황색으로 칠해 놨어요."

"선생님, 망했어요. 다시 주세요."

"선생님, 이거 사진 보여 주세요. 무슨 색인지 모르겠어요."

생각지 못했던 반응과 요구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해가 갈수록 선물 같은 스킬이 쌓여간다.



출력은 2부씩 해 둔다. 보통 다시 달라고 하는 아이들은 다섯 명 내외다.  교실에 칼라 프린터가 있다면야 바로 출력해 주겠지만, 그리 풍족한 환경은 아니기에 미리 대비해 둔다. 여유분의 출력물은 본래 목적대로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이면지로서의 몫을 해낸다.



색을 다 칠하고 나면 칠판에 자석을 이용해 붙여 본다. 색칠공부는 자연스럽게 퍼즐 놀이로 업그레이드된다.  컴퓨터 화면에 사진을 띄워 놓기도 한다.  아이들은 사진 원본을 확인하며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간다. 이번에는 친구들과 소통이 시작된다. 굳이 안내를 하지 않아도 퍼즐 조각을 처음으로 가지고 나온 아이는 다음 퍼즐 놀이 참여자를 기다린다.  참여자 두 명은 이리저리 퍼즐의 조각을 놓아 본다.  그리고 두 아이는 자연스럽게 다음 참여자를 기다린다. 그렇게 퍼즐의 조각을 맞추다 보면 제2차 민원이 접수되기도 하는데 서로 이해하기도 하고, 심각할 경우엔 비상용 출력물로 수습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 모든 상황들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게시판을 채울 생각뿐이었다. 생각 하나가 아이들끼리의  소통으로 이어졌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줬다.




그렇게 퍼즐 놀이는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 간다. 아이들은 완성된 그림을 보고 뿌듯해한다. 퍼즐 놀이를 끝냈다는 안도감뿐 아니라 조각조각 나뉜 친구들의 마음이 하나를 향해 있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갈등 상황을 극복하며 다시 한 장의 사진으로  되돌려 놨다는 것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성취감을 얻었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교실 뒤편 게시판은 알차게 채워진다.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사진은 꽤 자주 바뀐다. 사진 속 아이들의 옷차림을 계절에 맞춰주고 싶어서, 하루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똑같은 활동이라도 해마다 분위기는 다르다. 학년에 따라,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조각난 그림에 색을 입히고 다시 모을 뿐인데, 대화의 물꼬가 되기도 하고, 갈등의 장이 되기도 한다.  '괜찮아, 잘했어, 멋지다'의 다정한 말로 우정이 피어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여러 학년을 맡으면서, 여러 성향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익어간다.




어느덧 11월 말이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에너지는 점점 더 넘쳐난다.  나와 아이들의 에너지가 균형을 이룰 때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아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사이 잠깐 있었을까? 어느 정도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고,  눈빛만 봐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시기가. 내가 지쳐가는 만큼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겠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나는 조금 더 다져졌겠지.  3월과는 다르게 부쩍 커버린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쌓고 있겠지.



내가 참 좋아하는 퍼즐 맞추기 활동을 통해 나의 아이들이 가슴 깊은 곳에 단단함을 품었기를. 각각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모여야 할 때는 한걸음 물러날 줄 알며, 때로는 달콤하게 한두 마디를 건네며  서로서로 조화를 이뤄 가기를.  어떤 관계든 갈등 상황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해결 방법을 찾아가기를. 혼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무언가를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겼기를.




 올해가 가기 전에, 아니 2024학년도가 마무리되기 전에  지금보다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하나 된 마음을 품고, 퍼즐을 한 번 더 맞춰 보리라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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