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할 때, 여행을 할 때, 스케줄을 짤 때의 나는 누가 봐도 파워 J이다. 해야 하는 일들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하나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었을 때의 쾌감을 즐긴다. 조금의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멍하니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시간을 쪼개서 쓴다.
그런데 덕질을 할 때는 이상하리만치 P의 성향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싕지순례(최애가 갔던 식당이나 뮤직비디오 촬영장 등을 방문하는 일. 최애의 별명 중 하나가 '싕'이어서 우리는 성지순례를 싕지순례로 바꿔 부르곤 한다)를 가기 위해 갑작스레 숙소를 잡아 전북 김제까지 3시간 반을 운전해서 딸들과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고, 추석 연휴 마지막날 있었던 공연을 보기 위해 경북 영주까지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초행길에 나선 적도 있다. (물론 운영진으로 생일 카페나 서포트를 준비할 땐 파워 J로 돌아오지만..)
그렇게 조금씩 P로 변했던 모습 덕분에 삶의 여유나 기쁨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졌던 교사라는 꿈과 목표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려온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됐지만, 계획된 대로만 살아오던 날들의 나에게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지금의 나는 자꾸만 주변을 돌아본다. 그리고 내 주변에 흩어져있는 작은 행복의 조각들을 모아 글을 쓴다. 계획적이지 않게, 그저 행복이 느껴질 때마다 조금씩. 내게 주어질, 계획되지 않은 행복을 무작정 기다리다 보면 무정형의 행복들이 툭하고 떨어진다. 비 온 뒤 나뭇잎에 맺혀있다가 떨어지는 빗방울들처럼.